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장하준 / 김희정 / 부키 / 368쪽
(2014. 11. 09.)
이 책이 반자본주의 성명서는 아니다.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 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의 성적표가 말해 주듯 최선의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음을 보여 준다.
(P.14)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날마다 전문적인 지식 없이 온갖 종류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주요 원칙과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상세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씌워 놓은 장밋빛 색안경을 벗어 달라는 것이다. 이 색안경을 쓰고 보면 온 세상이 단순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안경을 벗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 보자.
(P.15)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가 있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 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도 없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 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 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P.19)
일반적으로 '성장을 촉진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성장 감소를 부르는 빈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의미를 양분해서 말을 하는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가속화사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트리클다운 이론의 첫 번째 단계는 설득력이 없다. 또 두 번째 단계, 즉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현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리클다운 현상이 조금식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시장에 맡겨 두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P.184)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그곳에 사는 개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야말로 기업가적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들이다. 부자나라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집단적 기업가 정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P.219)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각각의 개인(과 기업)들은 다른 누구와 소통없이 제각기 따로따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만, 이런 각각의 결정들은 누가 일부러 나서서 조정하지 않아도 서로 조화를 이룬다고 본다. 그들은 바로 이것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 자유 시장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어법에 따르면, 어떤 한 경제 주체가 '합리적'이라는 의미는 그가 자기 개인의 현 상황과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P.224)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교육을 확장하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교육과 국민 생산성 사이의 연관성이 약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과도한 열의는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산적인 기업과 그런 기업을 지원할 제도를 확립하는 데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P.250)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훌륭한 성과를 올린 사람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276)
좋은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좋은 경재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제를 가장 잘 운영한 경제 관료들은 대부분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었다.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