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오노레 드 발자크 / 박영근 / 민음사 / 420쪽
(2014.10.26.)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그것 때문일까? 이 문제는 사회적 불공정성과 많은 연관을 지닌다. 어쩌면 진정한 겸손이나 무기력 또는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계속 참으라고 하는 게 인간 본성일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가장 허약하고 어린 부랑아조차도 얼음이 얼 때는 모든 집의 초인종을 눌러보거나, 몸을 추켜올려서 새로운 기념비 위에 자기 이름을  쓰려고 한다.
(P.26)

 


  속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밈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째째하니까 남들도 째째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
(P.35)

 

 

  인간의 마음속에 선천적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약자를 항상 보호하고 싶은 자존심이 아닐까? 여기에 사랑을 합쳐보라. 즉 순순한 영혼이 쾌락의 근원에 대하여 일으키는 열렬한 감사의 뜻을 여기에 포함시켜 본다면, 우리는 수없이 정신적으로 불가 사의한 점들을 이해하게 된다.
(P.123)

 

 

  사상은 틀림없이 그것의 구성력에 비례해서 밖으로 투사된다. 그래서 박격포에서 발사되는 포탄을 유도하는 수학적 법칙과 비교될 수 있는 법칙에 의해, 이 사상은 뇌가 유도하는 곳을 엄습하게 된다. 이것의 효과는 다양하다. 사상의 탄환을 맞아 파괴되는, 심성이 부드러운 사람들이 있다. 또한 성벽에 부딪히는 탄환처럼, 다른 사람의 의지를 누그러뜨리고 약화시키는, 철벽 같은 두개골과 견실한 골격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마치 각면보의 무른 흙에서 속도가 느려지는 포탄처럼, 다른 사람의 사상을 소멸시키는, 무기력하고 힘없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P.135)

 

 

  세상만사를 궁리한 끝에 취할 길이란 두 가지밖에 없네. 어리석게 복종하든지, 아니면 반항뿐이지.
(P.143)

 

 

  어떤 종류의 남자들을 찾고 있는가를 여자들에게 물어보게. 야심가를 찾는다고 말할 걸세. 야심가란 다른 사람보다도 튼튼한 허리와 철분이 풍부한 피와 뜨거운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리고 여자들이란 자기가 튼튼하다고 느낄 때, 매우 행복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법이거든. 따라서 여자들은 힘이 센 남자를 더 좋아하는 걸세. 설사 그 남자에게 꺾일 위험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이네.
(P.144)

 

 

  내가 자네한테 해줘야할 충고가 또 있다면 자네 의견이나 얘기에 너무 고집 부리지 말라는 것일세. 다른 사람들이 자네가 고집을 꺾길 바란다면 팔아버리게. 자기 견해를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란 항상 외곬에 빠진 사람이고, 자신이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바보일세. 원칙이란 결코 없네. 단지 사건들만 존재한다네. 법률이란 없네. 오로지 상황만이 있을 뿐이지. 뛰어난 사람은 사건과 상황에 순응해서 그것을 조종하는 법이야. 확고한 원칙과 법이 존재한다면, 국민들은 셔츠를 갈아입듯이 원칙과 법칙을 바꾸지는 못할 걸세. 한 개인이 국민 전체보다 더 현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네.
(P.154)

 

 

  젊은 시절에는 양심이 부당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양심의 거울을 감히 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이 양심의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여기에 인생의 두 가지 국면 사이에 나타나는 모든 차이점이 깃들여 있다.
(P.160)

 

 

  내 인생, 바로 내 인생은 내 두 딸에게 달려 있소. 그애들이 행복하다면, 내 새끼들이우아하게 옷을 입는다면, 그애들이 융단 위를 걸어다니기만 한다면, 내가 무슨 옷을 입건 내가 누운 곳이 어디이건 무슨 상관이 있겠소? 그애들이 따뜻하면 나는 춥지 않소. 그애들이 웃으면 나는 결코 슬프지 않소. 그애들이 슬퍼할 때에만 나는 슬프다오. 당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당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저애는 내가 낳았지!>라고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어린 것들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요. 그애들은 당신 피에서 피어난 가냘픈 꽃들이오. 어린애들 피부에 당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애들이 움직일 때 당신도 움직이고 있다고 믿게 될 것이오. 그애들 목소리가 도처에서 내게 들려오는 것 같소. 그애들 눈초리가 슬퍼 보이면, 내 피가 얼어붙는 것 같소. 그애들 눈초리가 슬퍼 보이면, 내 피가 얼어붙는 것 같소. 앞으로 당신도 당신 행복보다 자식들 행복에 대해 더 즐거워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될 거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소. 몸의 도처에서 기쁨을 내뿜는 내적인 움직임 말이오. 결국 나는 세 배의 삶을 사는 거요.
(P.181)

 

 

  명백한 죄는 가정 환경에서 비롯한 성격 차이와 다양한 이해 관계 및 처지 때문에 모습을 수없이 바꾸면서 용서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형식상 요지부동한 사회 규범은 흔히 이런 경우에 유죄를 선언하는 법이다.
(P.350)

 

 

  그는 마지막 힘을 내어 두 손을 펴서 침대 양쪽에 있는 두 학생의 머리에 부딪히자 두 사람 머리털을 억세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아! 내 천사들아!>하고 힘없이 부르짖었다. 이것이 언어의 날개를 타고 날아간 영혼이 중얼거린 두 마디 말이자 강한 속삭임이었다.
  "불쌍한 노인이지"
  실비가 말했다. 그녀는 거짓말 중에서 가장 무섭고 가장 무의식적인 거짓말이 마지막으로 격앙시킨 최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 절규에 감격했다.
  이 아버지의 마지막 탄식은 기쁨의 탄식임에 틀림없다. 이 탄식은 그의 일생 전부를 표현했다.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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