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가토 슈이치 / 이규원 / 사월의 책 / 208쪽
(2014.10.09.)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까.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수 있는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통하는 기준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때와 장소, 남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법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을 매혹시킬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프러포즈에는 예로부터 온갖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어 왔다.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반론이 성립할 수 없지만,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반론이 가능하다. '독서술'이 바로 그것이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이쪽의 접근법도 달라져야 할 것이고, 이쪽의 소망에 맞게 수단도 궁리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P.8)

 

 

  이 책은 말하자면 내가 책과 함께할 때 취해 온 이런저런 방법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한 것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란 논지가 명확한 글일 테고, 논지가 명확한 글이란 옛사람들도 말했듯이 '숙고'의 결과일 것이다.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런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P.9)

 

 

  매끈매끈 부드럽게 누구에게나 편리한 비누는 있을 수 있지만, 둥글둥글 원만하고 누구에게나 편리한 사싱이라는 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비누와 사상의차이점이다.
(P.58)

 

 

  책을 천천히 읽는 것은 중요하다. 첫째, 그렇게 함으로써 수많은 책 중에서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을 발굴하는 수고를 크게 덜 수 있다. <겐지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썼다면 그렇게 시간을 쓰는 동안에는 이번 달 신간 소설 중에 뭐가 재미있을까 하고 초조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 소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나면 다른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 나갈 때 속도가 한결 빨라진다.
  그러나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책만 천천히 읽고 다른 책들에는 곁눈도 주지 않고 유유히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을 읽을 필요를 느껴서 독서를 시작했다면 그 책들은 십중 팔구 빨리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빨리 읽기 위한 궁리는 단순히 한 권의 책을 미리 천천히 읽어 둔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P.64)

 

 

  '날림 읽기'는 어떨까? 물론 이것도 엄연히 독서법 가운데 하나이다. 먼저 목차를 읽는다. 그리고 서론과 결론을 주의 깊게 읽어서 대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중간 부분은 날림 읽기로 지나간다. 그러다가 특별히 재미있을 것 같은 장이 있으면 그곳만 꼼꼼히 읽는다. 가령 500쪽짜리 책 두세 권을 '이번 주말까지 읽고 서평을 써주시오.'라는 의로를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라도 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꼭 무책임한 서평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책에 따라서는 그런 방법으로 충분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P.76)

 

 

  책을 많이 읽으려면 한 권을 마치고 다음 책을 시작할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이 좋다. 아니, 이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사람은 인기 작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일본의 인기 작가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정도가 아니라 동시에 쓰기까지 한다. 전혀 다른 책들을 한 사람의 저자가 동시에 쓸 수는 없지만, 한 명의 독자가 동시에 읽을 수는 있다. 동시에 읽는 책이 서로 많이 다른 책일수록 읽는 사람의 흥미는 계속 신선하게 유지될 것이다. 제한된 날짜, 가령 한 달 안에 많은 페이지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런 독서법이 필요하다.
(P.84)

 

 

  한 번에 끝까지 읽어 내느 것이 어려운 책이라면 하루에 조금씩 읽을 궁리가 필요하다. 꼭 화장실이 아니라도 좋다. 가령 아침 먹기 전 30분도 괜찮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체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매일 30분씩 적당한 책을 잡는 사람이 있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조금 더 빨리 마칠 수 있는 책을 몇 권 함께 읽어 나가면 된다.
(P.86)

 

 

  세상에는 어려운 책이 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책을 읽고, 읽는 책을 늘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간단하다. 이는 간단하지만 아마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즉 자신이 알 수 없는 책은 일체 읽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늘 책을 읽을 수 있고, 읽는 책들을 늘 이해할 수 있다. 페이지를 조금 넘겨보거나 조금 읽어 보고 아무래도 모르겠다 싶은 책은 읽지 않기로 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책 한 권을 모르는 것이 당신 잘못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책의 잘못도 아니다. 이 점을 이해해 두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만 충분히 이해해 두면 공연한 노력, 공연한 허영심, 또는 공연한 열듬감을 줄이고 시간 낭비를 없앨 수 있다.
(P.168)

 

 

  책을 이해하고 못하고 하는 이유가 늘 책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독자 쪽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러셀을 읽고도 '어렵네, 잘 모르겠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문답을 읽고도 쉽게 이해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려운 책을 읽고, 아니 꼭 어려운 책이 아니라도 책을 잘 읽고 잘 이해하기 위한 궁리는 독자들도 해야 한다. 그 독자 측의 조건은 첫째는 언어, 둘째는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장을 이용한 표현은 저자의 어떤 경험을 언어의 조합으로 번역하여 남에게 전하고자 하는 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독자 측에서 보자면 언어의 조합, 즉 문장을 통해 저자의 경험을 아는 것이다.
  언어가 의미하는 바를 알 뿐 아니라 언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많든 적든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알고 있지 않다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에 언어 혹은 상징이 있고, 다른 한편에 경험 혹은 상징되는 것이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떠받치는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P.176)

 

 

  독서 자체에는 어떤 종류의 즐거움이 있을까. 그것은 사람에 따라 책에 따라 다를 것이다, 공통된 즐거움을 말하라면 지적 호기심을 거의 무제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분야에서나 책은 수없이 많아서, 고구마 줄기를 당기듯 한 권 또 한 권 집어 들면서 얼마든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세상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한없이 많음므로 대상을 옮겨가며 호기심의 영역을 넓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무한하다.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심리처럼 알 수 없는 것도 없다. 인생은 짧고 재미있는 책은 많다. 하루 한 권을 읽어도 일 년에 365권. 그러기를 수십 년 계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평생에 1만 권을 읽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 봐야 150만 권이 넘는 도쿄도립중앙도서관 장서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미있는 책을 다 읽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다.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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