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흑(2)
스탕달 / 이규식 / 문학동네 / 472쪽
(2014. 08. 06.)
'항상 남이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라.'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유일한 종교입니다. 열광해서도 안 되고 거짓으로 꾸며도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늘 당신에게 열광과 허식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P.89)
음모는 사회의변덕으로 얻은 모든 지위를 소멸시킬 수 있다. 반면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드는 사람은 대번에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패망한 쪽은 정신마저도 권위를 잃어버리고 만다.
(P.122)
우리가 시도하는 순간에 극단적이지 않은 위대한 행동이 어디 있겠어? 상식적인 사람들에게 가능해 보이는 것은 그것이 완성될 때인 거야. 그래, 모든 기적을 거느리고 있는 사랑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될거야. 나는 나를 타오르게 하는 불꽃에서 그것을 느껴. 하늘은 내게 그런 은총을 주실 거야. 단 한 명에게 모든 혜택을 모아주신 것이 헛일은 아닐 거야. 내 행복은 나에게 합당해. 내 하루하루의 행복은 차갑게 식은 전날의 행복과는 같지 않을 거야. 사회적 신분으로 볼 때 나와 너무나 거리가 먼 남자를 감히 사랑한다는 것에는 이미 위대함과 대담함이 있어. 그런데 그가 계속해서 내 사랑을 받을 만한 남자일까? 그에게서 처음으로 나약함을 보게 될 때 나는 그를 버릴 거야. 나 같은 신분의 처녀가, 그리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사 같은 성격을 타고난 처녀가 바보처럼 굴 수는 없어.
(P.144)
그런데 독자여, 소설이란 큰 길을 어슬렁거리는 거울이다. 때로는 당신 눈앞에 창공을 비춰줄 것이고, 때로는 도로에 파인 웅덩이의 진흙을 비춰줄 것이다. 그런데 채롱에 거울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다니! 그의 거울이 진흙을 비추는데 당신은 거울을 탓하는 것이다! 차라리 웅덩이가 파인 큰길을, 아니. 그보다는 물이 괴어 웅덩이가 파이도록 방치한 도로 감시인을 비난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P.213)
겁이 없고 당당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한 걸음 차이일 뿐이다. 이 경우에는 무섭게 화내는 것이 강렬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
(P.227)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야심적으로 살피는 삶의 방식이 가져다주는 권태, 그런 것이 가져다주는 성공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실제적인 기쁨이 없는 법이다.
(P.304)
내가 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끔찍하게 모욕을 당했기에 죽였으며, 그러기에 죽어 마땅하가. 그게 전부다. 나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결산을 하고 죽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무도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단두대에서 죽는다는 것 말고 나의 죽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정말이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베리에르 부르주아들이 보기에 치욕으로는 충분하다. 그러나 지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보다 더 멸시할 일도 없다! 그들에게 존경할 만한 인물로 보일 한 가지 방법이 내게 남아 있다. 사형장으로 가면서 사람들에게 금화르 던져주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에게는 나에 대한 기억이 금화라는 관념과연관되어 번쩍번쩍 빛날 것이다.
(P.367)
'자연법'이라는 건 없다. 그 말은 요전날 나를 몰아세운 차장검사에게나 어울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어리석은 말일 뿐이지. 그 인간의 조상도 루이 14세의 몰수재산 덕에 부자가 되었을 거야. 그런 짓을 할 경우 벌을 부어 막는 법이 있을 때에야 법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것이다. 법이 존재하기 전에는 사자의 힘이나 춥고 배고픈 존재의 욕망, 요컨대 '욕망'만이 자연스럽다. 그렇다. 존경받는 사람들이란 다행히도 현행범으로 붙잡히지 않은 사기꾼들일 뿐이다. 사회가 내 뒤를 쫓으러 보낸 고발자도 수치스러운 짓으로 부자가 되었을 뿐이다. 나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사형이다. 하지만 그 행위만 제외하면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발르노 같은 인간은 나보다 백배는 더 사회에 유해한 인간이다.
(P.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