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흑(1)
스탕달 / 이규식 / 문학동네 / 360쪽
(2014. 08. 02.)


 

 

  그는 자신이 받아들여진 상류사회에 대하여 증오와 혐오감밖에 느끼지 않았다. 사실 테이블의 끄트머리 자리 하나 차지 했다는 것이 아마 그의 증오와 혐오감을 설명해주는지도 몰랐다.  때로 화려한 만찬이 열리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하여 증오를 간신히 억제하고 했다. 어쩌면 저렇게 청렴을 자랑해댄단 말인가! 그는 소리쳤다. 저런 게 유일한 미덕이라고 하겠찌. 그런데 빈민의 복지를 담당하면서부터 재산을 두 배, 세 배로 늘린 자에 대한 정중한 태도와 치사스러운 존경이라니! 저 작자는 다름 사람들보다 몇 곱절 더 비참한 저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 마련한 돈까지 들어벅고 있는 게 틀림없어!
(P.58)

 

 

  돈 있는 자들이란 다 그렇지 뭐. 모욕을 주고서 그런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면서 모든 걸 보상할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이야!
(P.66)

 

 

  쥘리앵은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 8월의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위 아래 풀밭에서 매미들이 울어젖혔고, 그 소리가 멎을 때면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했다. 그는 발 아래의 넓은 땅을 굽어보았다. 그의 머리 위 큰 바위에서 날아오른 새 한마리가 때때로 소리 없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쥘리앵의 시선은 기계적으로 그 맹금의 뒤를 쫓았다. 새의 유유하고 힘찬 동작에 탄복했다. 그는 그 힘이 부러웠고 그 고독이 부러웠다.
  그것인 나폴레옹의 운명이었다. 언제 그것이 쥘리앵 자신의 운명이 될 것인가?
(P.101)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인간은 어리석은 인간이다. 돌은 무거우니까 밑으로 떨어진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언제부터 돈 때문에 영혼을 파는 습관을 들였단 말인가? 저들과 나 자신에게서 존경받으려면 남들의 부유함과 거래하는 것은 내 가난 뿐이고 내 영혼은 그들의 불손으로부터 수천 리와 떨어진 곳, 그들의 사소한 경멸이나 호의의 표시가 당도하기에는 너무 높은 창공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P.110)

 

 

  그는 자신이 자아낸 흥분이나 그 흥분의 강도를 높여주는 회한에 주의를 기울이는 대신에 '의무'에 대한 관념에 줄곧 사로잡혔다. 자신이 따르기로 마음먹은 이상적인 모델에서 벗어나면 끔찍한 후회를 겪고 영원한 웃음거리가 될까봐 두려우하고 있었다. 요컨대 쥘리앵을 뛰어난 존재로 만드는 점이 바로 자기 발 아래에 놓인 행복을 맛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흡사 매혹적인 살결을 지닌 열여섯 살 처녀가 무도회에 가려고 연지를 바르는 것처럼 미친 짓이었다.
(P.135)

 


  이 세상의 헛된 화려함의 결과란 바로 그런 것일세. 자네는 분명 웃는 낯에만 익숙할 거야. 그야말로 거짓투성이 연극이지. 이보게, 진실은 엄격한 것이라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사명 또한 엄격하지 않을까? 자네의 양심이 '외면의 헛된 우아함을 향한 지나친 감수성' 이라는 약점을 경계하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네.
(P.272)

 

 

  나는 지상에 혼자뿐이다. 아무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모든 출세한 인간들은 내게는 어림도 없는 뻔뻔함과 냉혹함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나의 유순하고 착한 천성 때문에 나를 미워한다. 아! 머지않아 나는 배고픔 때문에 또는 그처럼 냉혹한 인간들을 봐야 하는 슬픔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P.275)

 

 

  쥘리앵은 생각했다. 나는 베리에르에서 얼마나 터무니없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던가! 나는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만 삶을 준비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이제 나는 세상에 나왔다. 진정한 적들에 둘려싸여 내 역할이 끝날 때까지 그것을 찾아야 하는 세상 말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매순간 이렇듯 위선 속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어려움인가!
(P.282)

 

 

  인간의 의지는 강하다. 나는 도처에서 그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그와 같은 혐오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까? 위인들의 임무는 쉬웠다. 위험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위인들은 그 위험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 그 누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추악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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