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3)
조정래 / 해냄 / 420쪽
(2014. 07. 22.)
오래전부터 서양에서 일본을 '동양 속의 서양'이라고 한 것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일본사람들이 서양을 선호하다 못해 흠모하고, 흠모하다 못해 스스로를 서양인이라고 착각하는 만큼 같은 동양인은 경멸하고 천시했다. 그러니 중국과 한국에 대해 저지른 잘못을 사죄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중국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딱하게도 자꾸 사죄하라고 분해하고 있었다. 일본사람들의 그런 정신착란 증세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사죄도 영원히 하지 않을 것이다.
(P.41)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영어를 미국사람처럼 잘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 조그맣고, 1인당 GDP도 2만 달러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는 나라에서 사교육비를 매해 20조 원 이상 쏟아붓는다고 그들의 매스컴이 보도하고 있다. 그거야 자식 교육에 광적인 한국 부모들의 사적 욕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자. 그런데 황당한 일은 영어 교육 강화를 위해 나라에서 역사 시간을 일주일에 1시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그들이 간절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세계의 선진국들은 일주일에 역사 시간이 3~4시간이고, 역사 시간을 줄이는 일은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저지르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그 용감무쌍한 결단력이 세계 1위, 금메달 감이 아닐 수 없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조지 산타야나의 이 유명한 말을 한국 정부만 모르는 것일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짓밟힌 굴욕의 시대를 살았으니 역사 시간을 몇 시간으로 해야 할까. 프랑스 입장에서 볼 때는, 정부가 그런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는 데도 역사학계나 지식인들이 침묵 속에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 참 야릇하고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P.43)
"아빠, 우리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에 가면 꼭 빼먹지 않고 들리는 필수 코스가 있어요. 그것이 어딘지 아세요? 이화여자대학교예요. 거기 이화가 그려진 벽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거예요. 아시죠, 무슨 뜻인지."
딸내미가 주말에 다니러 왔다가 해준 말이었다.
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梨花'는 '돈이 벌리다' '돈이 불어나다'라는 뜻의 '利貨'와 그 발음이 너무나 흡사해서 중국사람들은 배꽃을 '돈꽃' '부자되는 꽃'으로 믿어왔던 것이다.
(P.141)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이 한국에 처음 번역된 것이 1985년경입니다. 한국사람들은 그 책을 통해서 비로소 마오쩌둥이라는 사라과 중국공산당과 공군과 대장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30~40년 앞서 서양사람들도 역시 그랬고. 다시 말하면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을 객관적으로 전 세게에 알린 사람이 에드거 스노였습니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나에 대한 전기는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만족을 표할 정도였습니다.
(P.180)
우리 한국사람들은 자기 주량의 120퍼센트를 마셔대지만 중국사람들은 80퍼센트 정도만 마셔요. 그러니까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지 않고, 실수를 하는 일도 없소. 한국사람들은 예사로 추태 부리고 실수하고 그러잖소. 앞으로 중국사람 기준에 맞추도록 하시오. 영업에서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의 한 가지지만, 술은 상대방을 취하게 하려고 사는 것이지 내가 취하려고 사는 게 아니오.
(P.270)
중국이 수천 년 동안 차지하려고 애썼지만 실패한 두 나라가 한국과 베트남이에요. 그래서 중국을 대국으로 인정하고 서로 사이좋게 살며 특산물을 교역하지고 해서 만든 제도가 조공이에요. 그리고 속국이란 신식 말로 하면 식민지인데, 식민지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완전히 지배해서 모든 권한을 다 뺏어버리는 걸 말해요. 그런데 한국과 베트남은 중국에 모든 권한을 뺏기고 지배당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들 스스로 군대를 가지고 나라를 지켰고, 딴 나라와 외교 활동을 펼쳤고, 자기들 법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한 당당한 독립국가였어요. 다만 운명적으로 영토가 작고, 인구가 적어서 인접한 큰 나라한테 괴롭힘을 당한 것뿐이죠. 우리 중국은 스스로 대국이라고 뻐기고 싶어서 계속 속국이라는 말을 써왔는데, 그건 '우린 주변의 작은 나라나 괴롭히는 못된 짓을 해왔다'고 스스로 입증하는 것밖에 안 된다구요.
(P.347)
'아이들이 전학을 하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세계적인 교육자 페스탈로치의 일갈이었다. 전학 가서 새로 적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었다. 그건 '절대 전학시키지 마!' 하는 말을 격조 있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P.369)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계속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건 독일 나치스의 선정장관 괴벨스가 한 말이오. 중국 인민들도 당의 끝없이 되풀이되는 정치선전 속에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오. 그리고 중국의 부모들이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가르치고 당부하는 두 가지 말이 있소. '머리를 내미는 세가 총 맞는다.' 또, '뭐든다 네 맘대로 해도 되지만, 공산당과 적이 되는 일은 하지 말아라.' 그리고 당에 도전하거나 거약하게 되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되는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중국 인민들은 살아왔소.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 파룬궁 검거와 금지 사태등을 거치며 중국 인민들은 침묵이 금인 것을 체득하고 익힌 것이오.
(P.383)
일자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스티브 잡스를 만찬에 초대했소. 오바마는, 전량을 외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해 일자리를 늘릴 수 없겠느냐고 얘기를 꺼냈소. 잡스는 한마디로 'NO'라고 했소. 왜냐하면 경쟁이 치열한 세게적 상황에서 디자인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 중국에서는 자정에라도 수천 명을 불러내 일을 시킬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한 사람도 불러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소. 이런 노동환경의 차이가 바로 미국이 어째해 볼 수 없는 중국의 힘이오.
(P.394)
세계 여러 나라들이 중국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소. 지금 중국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이 세계 무대에 올라서 있소. 그들이 어떤 연기를 펼치며 어떤 연극을 만들어갈지, 그게 21세기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오. 그들도 고민이 많겠지만, 그들이 가야 할 현명한 길은 이미 제시되어 있소. 작년엔가 중국의 최고령 문필가, 106세의 저우유광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 글을 썼소. 그분은 한마디로 '지구촌 시대가 된 지금,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세계의 일원'이 돼야 한다'고 갈파했소. 그러나 정치인들이 얼마나 그말을 귀담아들을지 알 수가 없소. IMF의 예견이 맞게 되면 오바마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거요. 우리는 그걸 구경하며 중국이 어느 길로 가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소.
(P.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