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
강수돌 글 / 박정섭 그림 / 너머학교 / 128쪽
(2014. 06. 18.)
우리가 가진 말들, 우리가 가진 개념들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세계입니다. 또 그것이 우리 삶과 세계의 한계이지요. 따라서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일은 항상 우리 말과 개념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하고 또 그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깨우침과 우리의 배움이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서 나타납니다.
(P. 6)
사람들이 잘 살려면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흔히 하죠? 그런데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게 과연 어떤 뜻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기업이 많은 이윤을 남기고 생산을 많이 하며, 주가가 오르는 것일까요? 가게마다 사람이 많고 장사가 잘 되는 것일까요?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소비나 저축을 많이 하는 것일까요?
(P. 23)
"과거엔 유리잔이 흘러넘치면 가난한 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 차면 마술처럼 잔이 더 커져 버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신 말씀이에요. 정말 정확한 비판 아닌가요?
'트리클다운 효과'와 대비해서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또 다른 용어가 있어요. '펌핑업 효과'라고 하지요.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서 샘물을 뽑아 올리던 펌프처럼 아래쪽 물을 위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아요. 2004년 이후 우리나라 부자의 생성 속도가 세계 1위를 달릴 때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는 보고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 주지 않나요?
(P. 34)
원래 경제란 말은 한자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예요. 중국 수나라 때 왕통이라는 사람이 쓴 <문중자>라는 책에 나오지요.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 즉 세상을 잘 경영해서 사람들이 잘 먹고살도록 만든다, 이런 뜻이랍니다. 더 쉽게 말하면 경제란 백성(국민)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일이에요. 아주 옛날부터 경국(나라를 다스리다), 제세(세상을 구제하다.), 제민(백성을 구제하다.)등의 말이 쓰였어요. 모두가 '세상의 평화로운 살림살이'를 뜻한 말이었어요.
(P. 57)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돈벌이만 중시하는 기업들이 경영 효율화를 위해 구조 조정을 한닶히고 사람들마저 마치 쓰레기처럼 버린다는 거예요. 이게 반복되면서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외적인 사람이 되고, 반면에 비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정상인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P. 92)
나 자신과 세상의 참모습을 숨김없이 파악하려면 '진실에 대한 두려움'부터 없애야 해요. 사실, 진실을 알기가 두렵기도 해요. 왜냐하면, 진실을 알고 나면 나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나 자신도 이미 잘못된 체제에 적응해 살고 있고 은연중에 이미 기득권층이 되어 버렸거나 그렇게 되고자 발버둥 치며 살고 있으니까요.
(P. 93)
아, 세상살이는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탐욕이나 환상을 과감히 버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동시에 우리 주변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꼬였던 문제가 하나씩 풀리거든요.
이 모든 문제의 근본 뿌리는 우리가 본심을 잃고 '나 혼자'만 잘 살려고 탐욕에 빠져 인간적인 공동체의 그물망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쓰레기 같은 존재는 하나도 없지요. 모두 탐욕이 만들어 낸 부산물에 불과해요. 그러니 우리가 끈끈한 정이 흘러넘치는 인간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관계들, 우애와 환대, 연대와 협동, 소통과 공감 등을 회복하기만 하면 그렇게도 꼬였던 문제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하지 않겠어요?
(P. 95)
소비로 돈을 많이 쓸수록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해요. 다시 말해, 소비 중독이 일중독을 조장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일중독과 소비 중독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처럼 맞물려 서로서로 부추기고 있어요. 그 사이에 자본가는 계속 돈을 벌 수 있지만, 노동자나 소비자는 갈수록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되죠.
(P. 100)
이제 '잘 산다는 것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관한 긴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군요. 어때요? 잘 사는 것이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란 말,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나요? 굳이 이것을 부자라는 말로 표현하자면, 돈이나 권력이 많은 물질적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소박하고 따뜻하다는 뜻에서 내면의 부자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진정 잘 살기 위해서는 여태껏 사람들 대부분이 믿어 온 잘못된 가치관을 훌훌 털어 내고 우리 내면이 깊은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경청하고 제대로 느끼면서 거기에 충실하며 살아야겠죠.
(P.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