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 송은주 / 민음사 / 496쪽
(2014. 04. 24.)

 


 

  지구는 항상 똑같은 크기인데 죽은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이러다가 언젠가는 매장할 자리도 없어질지 모른다. 작년 내 아홉 번째 생일에 할머니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구독 신청 해주셨다. 할머니는 그 잡지를 "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고 부르신다. 또 블레이저코트도 주셨는데, 나는 흰색 옷만 입기 때문에 그 옷도 흰색이었다. 옷이 어찌나 큰지 앞으로도 한참은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는 또 할아버지의 카메라도 주셨다.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카메라가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떠나시면서 왜 카메라는 갖고 가지 않으셨는지 여쭤보았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마 네게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지." "하지만 제가 태어나기 삼십 년도 더 전이었는걸요." "그래도." 어쨌거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읽은 기사 중에 흥미진진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죽은 사람의 수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는 글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죄다 햄릿을 연기하려 한다면 해골이 모자란다는 얘기다!
(P. 18)

 

 

  제일 높은 선반 위에 예쁜 파란색 꽃병이 놓여 있었다. 예쁜 파란색 꽃병이 왜 저 위에 있는 거지? 손이 닿질 않아서, 턱시도가 걸쳐져 있는 의자를 옮겨 왔다. 그 다음에는 내 방에 가서 셰익스피어 선집을 가져왔다. 내가 요릭 역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할머니가 사주신 것이었다. 4대 비극을 한꺼번에 갖고 와서 쌓으니 충분한 높이가 되었다. 나는 그 위에 올라서서 꽃병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가락 끝이 꽃병에 닿는 순간 비극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턱시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춤을 추더니 다음 순간 나와 꽃병을 비롯해 모든 것이 바닥에 쏟아졌고, 꽃병은 산산조각 났다. "내가 안 그랬어!" 나는 고함을 질렀지만, 엄마와 론 아저씨는 음악을 귀청이 터지도록 크게 틀어놓고 깔깔대며 웃느라고 내 목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나는 내 침낭 속으로 들어가 지퍼를 올렸다. 아파서가 아니라, 뭔가를 깨뜨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신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상처를 냈다.
(P. 61)

 

 

  나는 전부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유리 파편 속에 무선 인터넷 카드만 한 조그만 봉투가 있었다. 대체 뭐지? 봉투를 열어보니 속에 열쇠가 들어 있었다. 뭐지, 대체 뭐야? 기묘하게 생긴 열쇠였다. 보통 열쇠보다 훨씬 더 두껍고 짧은 것으로 보아, 엄청나게 중요한 것의 열쇠임이 틀림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아빠 서재의 맨꼭대기 선반 위에, 파란 꽃병 속에, 작은 봉투 안에, 두껍고 작은 열쇠라니.
(P. 62)

 

 

  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람이 잠들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7분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거대한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시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구와 도시들을 위한 호주머니, 우주를 다 감쌀 호주머니가 필요하다.
8분 32초......
  하지만 그렇게 큰 호주머니는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발명은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전 우주를 등에 짊어진 거북이 같은 기분이 되었다.
(P. 104)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있거나, 왔으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라. 아니면 그건 공원이 움직이던 날 밤 꾸었던 꿈의 나머지 조각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그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고, 그 아이들이 바랐던 것을 바라는지도 몰라."
(P. 308)

 

 

  그가 이렇게 적었다. "마지막 메시지에서는 목소리가 침착하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읽었는데요, 동물은 자기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 공포에 질려서 미친 듯이 난리를 친대요. 하지만 곧 죽는다는 걸 알게 되면 아주 아주 침착해진대요." "어쩌면 아빠는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는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설명은 못 되었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해요."
  그는 종이를 뒤적여 이 말을 가리켰다. "왜?"
  "그래야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테니까요. 전 항상 상상을 하거든요."
(P. 356)

 

 

  나의 영웅인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바로 이렇다. 우리는 우리가 열 수 없는 닫힌 상자 앞에 서 있다."
  광대무변한 우주 대부분이 암흑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가 결코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맛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깨지기 쉬운 균형을 좌우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를 조우합니다. 무엇이 진짜일까요? 무엇이 진짜가 아닐까요? 아쩌면 이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할, 옳지 않은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삶을 좌우할까요?
  내가 삶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의 발명을 결코 멈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당신은 아예 발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P.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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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은 소통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정작 말로 표현하지는 못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에게 정말 해야 할 말은 하기 힘든 법이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늘 말하기를 미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그 말을 할 틈을 우리에게 주지 않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소설은 역사적인 폭력이 남기는 상흔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은,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P.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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