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익만점 수기
심재천 / 웅진지식하우스 / 298쪽
(2013. 12. 18.)



 

  지금까지 내 토익 최고점은 590점이다 - 리스닝 290점, 리딩 300점.
  이 점수로는 한국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여자들한텐 인기가 없고, 취직도 안된다. 대학을 4년씩이나 다녔는데도 나는 리스닝이 무섭다. 리스닝 1번 문제부터 패닉에 빠져버리니까 리딩도 죽을 쑨다.
  토익 만점은 990점. 거기에 비교하면, 590점은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한 점수다. 반타작을 조금 넘긴 수준. 만점을 받으려면 400점을 더 보태야 한다. 앞이 캄캄한 일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만점을 받은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토익 만점은 뭐, '나 눈 두 개 달렸소'하는 것과 같지."
  겸손도 아니었고, 농담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찡 울렸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p. 17)

 


  "미안하지만, 거기에 있으면 내 영어가 늘지 않아."
  내가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 너처럼 영어를 잘하는 어학연수생을 본 적이 없어."
  "아냐, 부족해. 많이 부족해."
  "한국이란 나라가 정말 궁금하군."
  스티브는 말했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는 스티브를 세워두고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시티브 덕분에 토익 실전문제집에서 805점이란 점수를 맞을 수 있었다. 또, 스티브는 내게 콘플레이크를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타월도 마음대로 쓰게 해줬다. '앉아 쏴'를 강요하거나 변기 뚫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인질 신분에서 매니저, 파트너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는 기쁨도 주었다. 스티브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를 매정하게 돌려 보내서 마음이 무거웠다.
(p. 207)

 

 

  외출한 김에 교보문고에 갔다. 광화문은 그새 많이 변해 있었다.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못 보던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앞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버티고 서 있다. 거대한 남자가 둘이나 있으니, 거리가 영 우중충했다. 홀아비 냄새가 난다. 차라리 인어공주를 세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p.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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