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서전(하)
니코스 카잔차키스 / 안정효 / 열린책들 / 737쪽
(2013. 12. 15.)
어느 날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독서에 몰두했던 나에게 한 소녀가 다가왔다. 그녀는 어떤 남자의 사진이 실린 책을 손에 들었는데, 밑에 적힌 이름이 보이지 않게끔 손으로 가린 채였다. 허리를 굽히고 경이에 찬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녀는 사진을 가리켰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머리를 저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이건 당신이에요 - 아주 똑같아요! 이마와 짙은 눈썹, 푹 들어간 눈을 봐요. 이 사람은 큼직한 콧수염이 축 늘어졌는데 당신은 수염이 없다는 점만 달라요."
나는 깜짝 놀라서 사진을 보았다.
"그럼, 이 사람이 누구죠?" 이름을 보려고 소녀의 손을 밀어내려 하며 내가 물었다.
"보면 몰라요? 이 사람 처음 보세요? 니체예요!"
니체라니! 얘기는 들었지만 나는 아직 그가 쓴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었다.
"『비극의 탄생』이나『차라투스트라』도 안 읽어 봤어요? 영원회귀나 초인에 대해서도요?"
"하나도 못 읽었어요, 하나도." 나는 창피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잠시 후에 그녀는 『차라투스트라』를 가지고 돌아왔다.
"여기 보세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두뇌가 있기나 한지, 그리고 그 두뇌가 굶주렸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당신의 두뇌를 위한 견실하고 용맹한 양식이에요!"
(p. 435)
나의 젊은 시절 중 가장 중대하고, 가장 굶주린 순간에 니체는 나에게 견실하고 용맹한 자양분을 주었다. 나는 푸짐하게 기름을 발랐고, 인간이 스스로 몰락한 상태와 인간에 의해 몰락한 그리스도의 상태에 대해서 너무나 답답함을 느꼈다.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유일하게 확신하는) 현세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상과 벌을 심어 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나는 격분해서 소리쳤다. 현재의 삶에서는 하찮은 것을 내놓으면서 내세에서의 불멸이라는 재산을 주도록 알량하게 계산하는 주님의 계획서 같은 종교는 얼마나 약삭빠른가! 얼마나 단순한고, 얼마나 간악하며, 얼마나 인색한가! 그렇다.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유로울 리가 없다. 희망의 술집이나 공포의 지하 술 창고에서 취하는 우리들은 부끄러운 존재이다. 이것은 깨닫지 못하며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던가! 격렬한 선지자가 나타나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했다는 사실은 필연이었다.!
(p. 455)
인간의 마음은 어둡고 굴북할 줄 모르는 신비이다. 그것은 영원히 입을 벌리기만 하는 구멍 뚫린 독이니, 지상의 모든 강물을 부어 넣어도 그냥 비어 목이 마르다. 가장 큰 희망도 그것을 채우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장 큰 절망으로는 채워질 수 있을까?
(p. 474)
끝없이 펼쳐진 러시아의 대지처럼 나의 작은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나도 역시 의식했다. 내 인생이 마침내 목적의 단일성을 위하게 되리라고, 수많은 형태의 노예 생활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리라고, 두려움과 거짓과 싸워 이기리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과 거짓과 싸워 이기도록 내가 도와주리라고 나는 맹세했다. 인간은 너무나 오랫동안 불의를 저질러 왔으며,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리라. 대지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깨끗한 공기와 장난감과 교육을, 여자들에게는 자유와 따뜻한 정을, 남자들에게는 친절과 예우를, 그리고 꼬리를 치는 쇠약한 말과 같은 인간의 마음에게는 한 알의 밀알을 우리들이 마련해 줘야 한다.
이것이 러시아의 목소리라고 나는 자신에게 말했으며, 나는 죽을 때까지 그것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p. 561)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배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건,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첫 번째 인물은 - 내가 생각하기에는 -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이었으며,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얻지 못했던 나를 괴롭히는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힌두교에서는 이른바 구루라고 일컫고, 아토스 산의 수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쓰는 사람이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바가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마치 만물을 항상 처음 보듯 대기와 바다와 불과 여인과 빵 따위의 영구한 일상적 요소에 처녀성을 부여하게끔 해주며 아침미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신선한 마음과 분명한 행동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라한 한 조각의 삶을 안전하게 더듬거리며 살아가기 위해 하찮은 겁쟁이 인간이 주변에 세워 놓은 도덕이나, 종교나, 고향 따위의 모든 울타리를 때려 부수려고 조르바의 나이 먹은 마음에서 회생의 힘을 분출해야 하던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었다.
(p. 619)
글을 더 많이 쓰면 쓸수록 나는 작품에서 내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달았다. 진실한 작가와는 달리 나는 구원을 추구하며 고통스럽게 투쟁하는 인간이엇, 미사여구를 지어내거나 멋진 운을 맞추려는 데서는 기쁨을 얻지 못했으며, 나 자신의 내적인 암흑으러부터 해방되어 암흑을 빛으로 바꿔 놓고, 내면에서 고함치는 무서운 조상을 인간으로 바꿔 놓고 싶었다. 나는 모든 역경을 이겨 내는 인간 영혼의 능력을 보며 용기를 얻으려 했고, 그런 까닭에 가장 숭고하고 힘든 시련을 성공적으로 치러 낸 위대한 인물들을 소생시키기를 원했다. 어렸을 적에 내 눈앞에서 벌어졌던 바로 그런 싸움이 아직도 끊임없이 내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또한 쉴 새 없이 전 세계에서도 터져 나온다는 현실, 나는 그것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내 모든 작품에서는 두 명의 투쟁자가 항상 주인공이었다. 내가 글을 썼다면, 투쟁을 돕는 유일한 수단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크레타와 터키, 선과 악, 빛과 암흑은 내 아픔 속에서 한없이 싸웠고,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의식하게 된 내 글쓰기의 목적은 크레타와, 선과, 빛을 최선을 다해 도와서 이기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내 작품의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p. 628)
나는 이곳 마을 학교의 교장입니다. 이곳에서 마그네시아 광산을 운영하던 알렉시스 조르바가 지난 일요일 저녁 6시에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알려 드리려고 편지를 씁니다. 그는 임종의 고통을 겪는 중에 나를 불러 말했습니다. "이리 와요. 선생님, 내 친구 한 사람이 그리스에서 살아요. 내가 죽은 다음에 그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죽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정신이 멀쩡했고, 끝까지 그를 생각했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한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그가 잘 지내기를 바라며, 이제는 정신 좀 차리라는 얘기도 하세요. 그리고 혹시 어느 신부가 와서 고해시키고 영성체를 주려고 하면, 저주나 내리고 꺼져 버리라고 해요! 나는 살아가며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사실은 별로 한 것이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죠. 안녕히 주무세요!
(p. 635)
언젠가 올리브나무에서 유충을 떼어 손바닥에 놓았던 기억이 난다. 투명한 꺼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보였다. 그것이 움직였다. 비밀스러운 과정은 틀림없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 미래의 나비는 아직 갇힌 채로 껍질을 뚫고 햇빛으로 나올 성스러운 시간을 조용히 떨며 기다렸다. 그 나비는 서두르지 않았다. 신의 영원한 법칙과, 따스한 공기와, 빛을 자신 있게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조급했다. 어서 빨리 기적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기를 바랐고, 육체가 무덤에서 나와 어떻게 영혼이 되는지 보고 싶었다.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유충에 따스한 입김을 불어 주기 시작했고...... 보라! 유충의 등이 저절로 찢어지더니 껍질 전체가 꼭대기에서 밑까지 서서히 갈라지고, 날개가 비틀리고 다리는 배에 달라붙어 한 덩어리로 뭉친 채 아직 덜 자란 연둣빛 나비가 나타났다. 그것은 얌전히 꼼지락거리며 따스하고 끊임없이 불어 주는 내 입김을 받아 점점 더 살아났다. 움트는 포플러 잎사귀처럼 파리한 한쪽 날개가 몸에서 저절로 떨어지더니, 길게 펼치려고 경련을 일으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날개는 반쯤 펼쳐진 채로 쭈그러졌다. 곧 다른 쪽 날개도 움직여서 펼쳐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반쯤만 펴진 채로 떨렸다. 인간의 뻔뻔스러움을 지닌 나는 모을 쭈그리고 계속해서 따스한 입김을 '찌그러진 날개에 불어 주었지만, 이제는 돌멩이처럼 뻣뻣하고 맥없이 축 늘어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속이 뒤집혀다.내가 서둘렀기 때문에, 영원한 법칙을 감히 어겼기 때문에, 나는 나비를 죽였다. 내 손에는 시체만 남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비의 시체는 그 후 줄곧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눌렀다.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작품은 북활실하고 불완전하지만, 신의 작품은 결점이 없고 확실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영원한 법칙을 다시는 어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마음 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마침내 오리라.
(p. 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