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신화읽는 시간
구본형 / 와이즈베리 / 336쪽
(2013. 11. 28.)

 

 

 

  신화는 인간을 벗긴다.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원시를 보여 준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날것들을 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야기다. 동시에 인간의 미덕과 통찰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이며, 성장을 통해 벌거벗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신화를 읽을 때 우리는 그 독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신화라는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다. 만일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전혀 다른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신화는 원시적 인간이 꾸며낸 어리석은 이야기를 지나지 기초적인 독법을 이해해야 한다. 이 독법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들고 , 어두운 내면의 탐사를 시작해보자.
(p. 11)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원시의 철학이다. 그때 그들은 이 사유의 틀로 사람을 이해했고 자연을 이해했고 우주를 이해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미신이라고 불렀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야만이라고 모멸했다. 그러나 신화는 이야기 속에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는 우주적 진리의 상징이다. 그것을 풀어내면 옷 속에 감춰진 인류의 은밀함에 접근해 갈 수 있다. 나에 체해 나를 보고 싶지 않을 때, 사람을 소화할 수 없어 구토가 일어날 때, 가까운 친구에 대한 염증으로 심장이 죄어올 때, 더 이상 사람의 육욕의 냄새를 맡고 싶지 않을 때, 인간의 내밀한 본질에 단박 다가가 그 찬란한 갈등을 보고 싶을 때 우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야생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p. 18)
 
 
  인간은 기존의 자아를 버리면 어떤 사람으로도 변신하여 살아볼 수 있다. 세상은 무대이고 우리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자기경영은 연출이다. 우리는 종종 이미 알고 있는 자아를 버려 새로운 자아에 이르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약하여 자신이 그리는 새로운 인물이 되어볼 수 있다.
  우리는 늘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 재창조되어 다양하게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은 우리 속에 내재하는 불멸의 존재의 현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우리의 이름과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가면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면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p. 58)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처럼 논란이 많은 책도 드물다. 인간의 속을 까뒤집어놓은 위대한 책이기도 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썼으나 성공하지 못한 쓰레기 아첨물에 불과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군주를 위해 썼지만 군주를 위한 조언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특별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군주론』은 그래서 거꾸로 읽어야 한다. 다스리기 위해서 읽기보다는 나를 다스리려는 자들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 읽을 때 훨씬 재미있다. 세상에는 『군주론』속의 조언대로 머리를 굴리고 폭력과 잔혹을 통치의 도구와 연장으로 써대는 인물들이 제법 많다. 권력이 조금 있고, 돈이 제법 있는 사람들은 늘 무자비한 폭력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멱살을 거머쥐고 알아서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얄미운 자들의 입을 거세게 때려주는 쾌감을 근육 속에 감춰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쉽게 당하기만 하는 대중 속의 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p. 226)

 

 

  신화는 인류라는 집단이 꾼 꿈을 다룬다. 신화를 해석하면 인간의 꿈, 즉 집단의 무의식에 접근하게 된다. 경영이 인간의 꿈과 무의식을 이해하게 된다면 가장 근본적인 동기부여 방식을 찾아내게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삶을 영웅의 삶으로 창조해가는 변화의 여정에 개인들이 스스로 참여하게 할 수 있다. 진화된 동기부여 방식이 스스로를 발견해가는 두려운 모험에 뛰어들 수 있도록 유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p. 317)

 


  인간은 자기 안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는 동물이다. 자신의 인생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지 고뇌하는 동물이다. 짐승처럼 살 수도 있고 신처럼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신화는 개념 체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체계에서 온다"라고 말한다. 즉 신화는 마음이 거처하는 곳, 체험이 있는 곳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신화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너머 그 사실을 알려주는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
(p. 325)

 

 

  우리 안에 신이 있다. 신은 우리 안에 자신을 숨겨두었다. 인간은 신이 선물한 모든 것들을 자신 안에 담고 태어난 모순 덩어리지만, 영웅적인 내면 여정을 통해갈등과 충돌을 대통합하여 위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이다. 그 이야기는 삶이라는 잉크로 쓰여진다. 삶만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위대한 손이다.
(p.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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