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
플라톤 / 천병희 / 숲 / 348쪽
(2013. 11. 18.)

 

 

 

  플라톤의 저술들이 2천 년 넘는 세월을 겪고도 모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심오하고 체계적인 사상 덕분이겠지만, 이런 사상을 극적인 상황 설정, 등장인물들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 소크라테스의 인간미 넘치는 아이러니 등으로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게 독자들에게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이 그리스 최고의 산문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플라톤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나는 난해한 직역과 지나친 의역은 피하고, 원전의 의미를 되도록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난삽한 문장을 읽기 좋은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 나은 이해를 위해 플라톤의 번역을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p. 9)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연현상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든다는 자신에 대한 초기의 고발과, 나라에서 섬기는 신들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며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후기의 고발을 구분한다.
  소크라테스는 초기의 고발에 대해 자기는 소피스트도 아니고 자연철학자도 아니며, 가지의 유일한 지식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다녔으나 그런 사람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과정에서지혜롭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이들의 미움을 산 것이 화근이 되어 고발당했다는 것이다.
(p. 14)

 

 

  여러분,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열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보다 비열함이 더 발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느리고 연로해서 둘 중 더 느린 죽음에 따라잡혔지만, 내 고소인들은 영리하고 민첩해서 둘 중 더 빠른 것, 즉 사악함에 따라잡혔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을 떠나지만, 내 고소인들은 진리에 의해 사악하고 불의한 자들이라는 판결을 받고 떠날 것입니다.
(p. 63)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도 자신감을 갖고 죽음을 맞아야 하며, 착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없으며, 신들께서는 착한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시지 않다는 이 한가지 진리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도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이제 내가 죽어 노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좋겠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께서 보내신 신호가 나를 어디에서도 말리지 않았던 것이며, 나도 내게 유죄 투표한 이들과 나를 고소한 사람들에게 전혀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p. 68)

 

 

<크리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만약 아테나이의 국법이 ‘우리는 너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교욱받게 헤주었거늘 네가 우리를 뒤엎으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닌가?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진작 이 나라를 떠났어야지, 누릴 것 다 누리고는 이제 와서 이 나라에서 허둥지둥 도주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며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외국으로 망명해서 얻을 게 무엇인가? 우리는 네가 목숨과 자식들을 생각하기에 앞서 정당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크리톤이 국벙이 그렇게 묻는다면 자기도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고 말한다.
(p. 69)

 

 

<파이돈>

 

엘리스 출신으로 아테나이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해방되어 소크라테스의 헌신적인 제자가 된 파이돈이, 스승이 죽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펠레폰네소스 반도 북동부 플레이우스 시에 살던 에케크라테스를 만나, 소크라테스가 생애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독약을 마시고 죽었는지 들려준다. 몸은 필멸이지만 혼은 불멸이라는 혼불멸론, 배움이란 전생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는 상기론, 특정 사물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관여하기 때문이라는 이데아론이 이 대화편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 이어서 몸에서 해방된 혼이 저승에 가서 어떻게 재판받고 어떻게 살아가는 지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믿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고상한 모험’이라는 것이다. 이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태연하고 침착하게 독배를 받아 마시고 죽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p. 102)

 

 

  냉기가 어느새 허리 있는 데까지 올라오자 그분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을 벗기고 - 그분께서는 얼굴이 가려져 있었으니까요 -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사실상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었소. “클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그분께 빚진 것을 꼭 같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네” 하고 크리톤이 말했소. “그 밖에 달리 할 말이 있는지 살펴보게!”
  그분께서는 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으나, 잠시 뒤 몸을 부르르 떠셨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분을 가린 것을 벗기자 구분의 두 눈이 멈추어 있었소. 그래서 그것을 본 크리톤이 그분께서 입을 다물게 해주고는 두 눈을 감겨드렸소.
  에케크라테스, 우리 친구는 그렇게 최후를 맞으셨소. 그분께서는 우리가 겪어본 우리 시대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지혜로우며 가장 정의로운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오.
(p. 234)

 

 

<향연>

 

  기원전 384년에 씌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대화편은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 제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기 위해 자기 집에서 베푼 술잔치에서 여러 사람이 에로스에 관해 피력한 견해를 기록한 것이다. 이 대화편은 당시 너무 어려서 그 술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팔레론 출신 아폴로도로스가 술잔치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데모스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하는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파이드로스는 신화적인 관점에서, 파우사니아스는 소피스트의 관점에서, 에뤽시마코스는 의사의 관점에서, 아가톤은 시인의 관점에서 에로스를 짤막하게 찬미한다.
  소크라테스는 만티네이아 출신 예언녀 디오티마한테서 더 높은 경지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배워 알게 되었다면서, 성애로 표현되는 인간의 욕구는 인간의 혼이 시인이나 입법자처럼 아름다움이나 지혜를 낳고 싶어 하는 지적이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의해서는 하나의 아름다운 몸에서 아름다운 몸 전체로, 아름다운 몸에서 아름다움 자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 사랑을 흔히 ‘플라토닉 러브’라고 한다.
(p.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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