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연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 박상진 / 민음사 / 348쪽
(2013. 11. 3.)

 

 

 

둘 다 죽은 자가 가는 장소인 지옥과 연옥은 그 밖에 어떤 점이 다를까. 결정적인 차이점은 지옥은 '절망의 장소'인 데 반해 연옥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연옥에는 혼이 씻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어쩌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희망이 있다는 점이 지옥과는 완전히 다르다.
(P. 298)

<단테신곡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이 세상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따라 지옥이 될 수 있고, 연옥도 될 수 있고, 천국도 될 수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신곡』은 실로 논리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지옥, 연옥, 천국도 공간적으로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미를 파고들면 모두 이 세상의 일처럼 여겨지는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테는 서양의 많은 고전 중에서도 시대를 초월해 계속 읽히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p. 310)

<단테『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 안티쿠스)

 

 

 

더 좋은 물 위를 떠가려고
내 재주의 작은 배는 그리도 끔찍했던
바다를 뒤로하고 돛을 활짝 펼친다.

이제 나는 인간 영혼이 정화되고
천국에 오를 준비를 하는
이 두 번째 왕국을 노래하려 한다.

아, 성스러운 뮤즈들이여, 그대들에 복종하는
내 죽음의 시를 이제 삶으로 오르게 하소서!
이곳에서 칼리오페를 잠시 일으켜

저 불쌍한 까치들이 얼이 빠져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다던 그 부드러운 소리로
나의 노래와 함께하게 하소서!
(p. 7 / 1곡 1-12)

 

 

나는 죄지은 온갖 무리를 이 사람에게 보여 주었소.
이제 당신의 치하에서 스스로를
정화하는 영혼들을 보여 주고 싶소이다.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을 데려왔는지는 말하자면 길 터,
다만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도우시는 덕성이
당신을 보고 듣도록 이 사람을 인도하라 하셨다오.

그러니 이 사람을 기꺼이 맞아 주시오.
이 사람은 자유를 찾아서 가고 있소.
자유를 위해 삶을 포기한 당신이니 잘 알 것이오.
(p. 11 / 1곡 64-72)

 

 

우리의 감각이 기쁨이나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영혼은
그 둘 중 하나의 감각에 쏠려서

다른 기능에는 완전히 무디어진다.
이는 우리 안에서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함께 타오른다고 믿는 오류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보거나 들으며 우리의 영혼이
거기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
시간이 흘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을 알아차리는 감각과, 영혼을
완전히 지배하는 감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전자는 영혼에서 풀려나 있고 후자는 매여 있다.
(p. 34 / 4곡 1-12)

 

 

선생님이 나를 꾸짖었다. "무엇에 관심을 뺏겨
걸음을 늦추느냐! 그들 재잘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써 무엇 하리!

내 뒤를 따르라! 저들은 떠들도록 내버려 두고,
바람이 불어쳐도 끝자락조차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여라!

사람이란 생각에 생각을 겹쳐 놓다 보면
원래의 목표를 잃게 마련이니,
힘이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p. 44 / 5곡 10-18)

 

 

사람들은 각자가 차지하면서 줄어들게 되는
세상의 것들을 욕망의 목표로 삼으니,
질투는 사람들 한숨에 부채질을 하는 거란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이 위로 솟구쳐
가장 높은 하늘의 사랑을 향한다면
상실의 두려움이 그렇게 마음을 누르지는 않을 텐데.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각자가 갖는 선도 더 많아지고
수도원에서 자기가 더 세차게 타오를 것이다.
(p. 138 / 15곡 49-57)

 

 

내 생각이 옳다면 이런 판단을 해 볼 수 있겠지.
사람들이 사랑하는 불행은 이웃의 불행이며,
이런 사랑은 진흙에서 세 가지로 솟아오른다.

어떤 사람은 남의 추락에서
자신의 성공을 바라다가 바로 그런 욕심 때문에
자신의 출중함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남이 높아지면
자기의 명예와 명성, 힘과 은총을 잃을까
두려워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며,

어떤 사람은 잘못된 격정에 휘말려
모든 열정을 복수에 쏟아 부으면서
오로지 남에게 해를 입힐 궁리만 한다.

이 세 가지 사랑을 한 망령들이 이곳에서
죄슬 씻고 있지

(p. 158 / 17곡 109-126)

 

 

내 핏줄 속에 떨리지 않는 피는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오래된 불꽃의 흔적만 남았어요.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이미 우리를 떠나 홀로 사라졌다.
더없이 따스한 아버지 베르길리우스여,
나의 구원을 위해 영혼을 맡겼던 베르길리우스여,

옛날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모든 것도
이슬로 씻긴 나의 뺨이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으리라.
(p. 268 / 30곡 46-54)

 

 

"단테여, 베르길루우스가 그대를 떠났다 해도
아직은 울지 말아요. 아직은 울지 말아요.
그대는 또 다른 칼 때문에 울어야 할 테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을 때, 배에서 일하는
부하들을 보고 뱃머리나 고물에 서서

일을 열심히 하도록 격려하는 제독의
모습으로 전차의 왼편에서 솟아오르는
여인이 보였다. 처음에

천사들의 꽃 세례를 받으며
나타났던 그녀는 이제
강 이편에 있는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잎들을 두른 머리에
드리워진 너울이 그녀를
온전히 보지 못하게 했지만,

당당하고 단호한 얼굴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중요한 부분을 끝까지 남겨 두는
사람의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날 보세요! 나 정말 베아트리체이니!
그대는 마침내 산을 올랐군요! 여기에
인간의 행복이 놓여 있는 것을 이제 알았나요?"
(p. 269 / 30곡 5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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