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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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천명관 / 문학동네 / 455쪽
(2013. 09. 29.)

 

노파 - 금복 - 춘희  삶의 이야기
가난을 공유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나의 할머니시대 이야기인 노파의 삶
거대한 산업화의 물결속에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던 우리 어머니 시대의 이야기인 금복의 삶
돈의 가치보다는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묵묵한 삶을 받아드리는우리가 목적하고 싶은 삶의 이야기인 춘희의 삶
지난 우리 세대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춘희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삶의 순수한 지향성을 다시금 일깨워 줌으로써 우리의 삶과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것은 춘희와 같은 감방 안에 있던 한 여죄수의 말이었다. 얼굴이 온통 주근깨로 뒤덮여 있던 그녀는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여 자신의 두 딸과 남편을 독살한 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는 사형을 당하기 전까지 쉬지 않고 감방 안의 먼지를 쓸고 닦았다. 같은 방에 있던 조수들이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사형수가 청소는 해서 뭐 하냐고 비아냥거렸을때, 청산가리는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덧붙여,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 10)



  콩닥거리던 가슴이 어느 정도 잦아들 무렵 그녀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저희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살던 집보다 족히 서너 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였다. 물고기는 바다 한 복판에서 불쑥 솟아올라 등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올렸다. 주변에 있던 어부들도 물고기를 보고 놀라 탄성을 질렀다. 금복은 믿을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의 출현에 압도되어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따. 물고기는 거대한 꼬리로 철썩 바닷물을 한 번 내리치고는 곧 물속으로 사라졌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고기가 사라진 뒤에도 금복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넋을 잃고 있던 금복이 옆에서 구경하던 한 어부에게 그 거대한 물고기의 이름을 묻자, 그는 이상하다는 듯 금복을 쳐다보며 말했다.
  - 넌 고래가 뭔지도 모르는 걸 보니까 이곳에 사는 계집이 아닌가 보고나. 아까 그건 고래 중에서도 제일 큰 대왕고래란다.
(p. 49)



  과연 객관적 진실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거일까? 칼자국이 죽어가면서 금복에게 한 말이 과연 진실일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도 인간의 교활함은 여전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아무런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p. 117)



  "글쎄요, 내가 가진 생각은 언제나 한 가지뿐예요."
  "그게 뭐죠?"
  "작고 누추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언젠가 文에게 말한, '썩은 조기든 금간 벽돌이든 팔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모토와 함께 금복의 사업가로서의 모든 태도가 담긴 말이었다. 금복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돈이 죄악의 근원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천만에요. 모든 죄악의 근원은 가난입니다."
(p. 275)



  춘희는 자신의 인생을 둘러싼 비극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육체는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의 유니폼처럼 단지 고통의 뿌리에 지나지 않았을까? 그 거대한 육첸 안에 갇힌 그녀의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보여줬던 불평등과 무관심, 적대감과 혐오를 그녀는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었을까? 혹, 이런 점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야기꾼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p. 310)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눈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춘희는 뭔가 더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미처 입을 뗄 사이도 없이 둘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광대한 성간에는 희미한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꼬마 아가씨, 안녕.
  코끼리, 너도 안녕.
(p.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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