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3)
이윤기 / 웅진지식하우스 / 296쪽
(2013.07.08.)
올륌포스 신들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의 그리스인들도 잘 알고 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신들은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었다. 그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합의해서 도출해낸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신들에 대한 경건함은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한 경건함, 그 시대 도덕률에 대한 경건함이라 고 생각한다. 신화에는 이 경건함을 한결같이 지키는 사람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바로‘신 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승한다. 하지만 신화에는 이 상승의 정점에서 갑자기 오만해지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깃털 날개 달았다고 하늘로 오르려다 떨어져 죽은 이카로스의 오만이 바로 이 오만이었다. 날개 달린 말 페가소스를 탔다고 올륌포스에 오르려고 했던 벨레로폰의 오만이 바로 이 오만이었다.‘ 오만(hybris)’은 신화시대영웅들이잘걸리는난치병이었다. 이 난치병 환자들은 바로‘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점으로 날아오르게 한 바로 그 날개 때문에 추락한다.
신화는 무엇인가? 신들에 관한 이야기다. 신들이 없었다면 신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신들이 없어도 신화는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없어도 신화는 존재할 것인가? 인간이 없으면 신화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신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신들이 인간 세상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 세상을 놓고 올륌포스 신들과 기간테스, 즉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신들이 싸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p. 15)
나는, 신화를 믿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믿는다고 대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는 한다. 나는 신화를 믿는다. 신화를 믿는다고 해서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깎아놓고 내 색시가 되게 해달라고 아프로디테에게 비는 식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는 것은 신화의 진실이다. 퓌그말리온의 진실과 그가 기울이는 정성이다. ‘퓌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말은, 스스로를 돌아보되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경우에 나타나는 효과를 뜻하는 말로 지금도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p. 34)
인류는 근대를 맞으면서 프로메테우스 시대를 꽃피웠다가 디오뉘소스의 반격을 받았다. 이제 헤르메스 시대가 왔다. 현대는 헤르메스의시대다. (중략)‘ 이성’을신의은총으로 믿던데카르트는 산업 사회를 열었다. 하지만 곧 니체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현대의 헤르메스, 빌 게이츠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것으로 전해지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이다. 그는 흙으로 인간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프로메테우스’라는 말은‘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이치와 이성을 앞세워 처음으로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에게 저항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유럽 산업 사회의 사상적 틀을 마련한 데카르트는 프로메테우스에 자주 견주어진다.
(p. 246)
“저기 큰 인간과 맞서고 있는 작은 인간을 보라. 이기지 못할 겨루기에 저리도 열심인 것은 그저 어리석기 때문인가? 도끼가 일으키는 불꽃은 무엇인가? 불꽃이 일면 일수록 겨루기가 격렬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저 경이의 불꽃, 기적의 섬광은 부딪침을 통해서만 번쩍이는 것인가? 제우스 신의 권능이 두려워, 손수 빚은 인간의 궁상을 수수방관해야 하는 나 초라한 프로메테우스여! 큰 인간을 상대로 힘을 겨루는 저 작은 인간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냐!” 프로메테우스는 사흘 낮 사흘 밤 내내, 제우스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자신을 희생하되 그 희생의 값으로 인간에게 얻어줄 수 있는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제우스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에 도전하고, 인간에게는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인간의 손으로 넘어오면 가장 유익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야 했다. 제우스 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그리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저 퀴클롭스(외눈박이 거신)로부터 선물로 받은 벼락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나흘째 되는 날, 제우스 신의 벼락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 그 대신 벼락에서 불을 붙여내어 인간에게 가져다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p. 252)
오비디우스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노래로 기나긴『변신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제 나의 일은 끝났다. 제우스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노래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영생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오비디우스를 보라. 자신이 한 일은 제우스의 분노도 소멸시킬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지 않는가? 명성을 통하여 영생불사를 얻었으니 영원히 살 것이라지 않는가? ‘영원히’까지는 모르겠지만 2천 년 전에 그가 쓴 책을 우리가 이렇게 읽고 있으니, 신화는 참 힘이 세다 싶다.
(p.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