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1)
이윤기 / 웅진지식하우스 / 352쪽

(2013. 06. 29.)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어릴적에 보았던 세계문학전집의 시작은 그리스로마신화로 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서양의 인간시대 이야기의 시작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부터 시작되서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읽기의 시작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으려고 했는데 그리스신화에 대한 기본적인 사전 지식이 없어서 시작하기가 벅찼다. 그래서 일단 그리스로마 신화로부터 시작한다.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신화라는 미궁속에서 신화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 독자에게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상상력이다. 열두 고지의 글을 신화 이해의 열쇠로 삼은 이 책은 필자가 신화의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한 책이 아니다. 열두 꼭지의 글에는 신화 이해와 해석에 필요한 열두 개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각각의 열쇠에는 무수한 꼬마 열쇠들이 매달려 있다. 큰 열쇠, 작은 열쇠로 독자들이 나름대오 열기 바란다. 필자의 해석은 필자의 실타래이지 독자를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아니다.
(p. 10)

 


  대지와 우리 육신 사이에는 신발이 있다. 신발의 고무 밑창 하나가 우리와 대지 사이를 갈라 놓고 있다. 대지는 무엇인가? 인간이 장차 돌아가야 할 곳이다.
  그러면 신화는 무엇인가? 옛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신화는, 옛 이야기는 언제 발생한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시대와 아득한 선사 시대,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미지의 시대 사이에 신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신화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인지도 모른다.
(p. 40)

 

 

  크로노스는 왜 낫을 가지고 다녔던 것일까? 크로노스는 왜 아내가 낳은 족족 자식을 삼켜 버렸던 것일까? 크로노스는 '시간', 즉 세월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의 모습이 종종 모래시계와 함께 그려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신의 이름은 크로노스는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단어 '크로니클(chronicle, 연대기)', '크로노미터(chronometer, 시계)', '크로노메트리(chronometry, 시간 측정법)' 등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심킨다는 것은, 세월은 이 땅에 태어나도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는 잔혹한 자연의 진리를 상징한다. 크로노스가 큰 낫을 들고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크로느스는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을 끝나게 한다. 크로노스가 들고 다니는 거대한 낫은 크로노스가 지닌,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을 끝나게 하는 자연의 법칙을 상징한다.
(p. 60)

 

 

  올륌포스 산에는 신들의 궁전이 무수히 있다. 무수한 궁전 한가운데엔 큰길이 하나 툭 터져 있는데, 이 길은 밤중이면 당에 사는 인간의 눈에도 보인다. 이 길의 이름이 바로 '비아 락테아(Via Lactea)', 즉 '젖의 길' 이라는 뜻이다. 비아 락테아는 영어 '밀키웨이(Milky Way)'이며, 우리말로는 '은하수'가 된다. 신들의 궁전은 바로이 비아 락테아 좌우로 좍 펼쳐져 있다.
(p. 77)

 

 

  제우스는 여성이나 여신의 몸을 빌리지 않고 딸은 낳은 일이 있다. 그런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싶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면 불가능하다 싶은 일도 곧잘 일어나는 데가 신화의 무대다. 제우스는 자기 일에 사사건건 간섭해서 나무라기도 하고 충고하기도 하는 여신 메티스를 삼켜 버린 적이 있다. 메티스는 '지혜로운 충고'라는 뜻이다. 제우스가 이렇게 한 것은 성가신 메티스를 제거하는 동시에 메티스의 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제우스가 갑자기 머리르 싸쥐고 방바닥을 뒹굴었다. 제우스가 머리를 싸쥐고 뒹구는 까닭을 제일 먼저 짐작한 신은 올륌포스의 꾀주머니 헤르메스였다. 헤르메스는 대장장이를 불러 창으로 제우스 두개골을 조금 까내게 했다. 그러자 투구를 쑤고 창과 방패를 무장한 여신이 함성을 지르면서 튀어나왔다. 이 여신이 바로 지혜와 정의로운 전쟁의 여신 아테나다.
(p. 96)

 

 

  신화는 프로메테우스가 흙에다 물을 부어 이기고 신들의 형상과 비슷한 인간을 빚어 이를 이레 동안 볕에다 말리고 여기에다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 한 꼭지가 따라붙는다. 그가 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놓으려고 하는 찰나,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지나가다가 나비 한 마리를 날려 보냈다는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이 나비는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빚은 인간의 콧구멍속으로 들어갔다.
  그리스어로 나비는 '프쉬케(psyche)'다. 그러면 진흙 인간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 프쉬케는 무엇인가? 영어 '사이크(psyche)'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말은 '정신' 또는 '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p. 119)

 

 

  사람들은 흔히 유럽 문화의 두 기둥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한다. 헬레니즘이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나 로마로 이어진 문화를 말한다. 그렇다면 헤브라이즘은 무엇인가? 구약 성서에 잘 그려져 있는 히브리인들, 즉 유대인들의 문화를 말한다. '천국'과 '지옥'과 '부활'은 유대인드링 일군 헤브라이즘의 저 세상에나 등장하는 말들이다.
(p. 200)

 

 

  신화 시대 의술의 신인 아폴론에게는 아스클레이피오스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아스클레에피오스는 트라카라는 도시에다 요즈음의 의과 대학교 겸 부속 병원 비슷한 것을 세우고 의술을 가르치는 한편 환자를 치료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의술 학교는 뒷날 수많은 명의를 배출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명의가 바로 오늘날 '의성', 즉 의술의 성인으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다. 모든 의과 대학생들은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를 본받자는 뜻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한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은 고대의 의과 대학 및 그 부속 병원 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신전을 지키던 신관은 이 신전에다 흙빛 뱀을 기른 것으로 전해진다. 신관들은 독이 없는 흙빛 뱀을 아스클레오피오스의 사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술을 상징하는 휘장의 지팡이는 아스클레오피오스의 지팡이이며, 뱀은 바로 아스클레오피오스의 사자인 독 없는 흙빛 뱀인 것이다. 의술을 상징하는 오늘날의 휘장에까지 지팡이와 뱀이 그려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p.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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