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미제라블(6)
빅토르 위고 / 송면 / 동서문화사 /315쪽
(2013. 06. 22.)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그의 영혼에 나타났다 . 즉, 기꺼이 받고 다시 돌려 준 친절, 헌신 , 자비, 관용 , 연민에서 나온 준엄의 훼손 , 개인성의 승인, 단호하게 사람을 벌하는 일도 죄를 짓게 할 수도 없다는 것 , 법의 눈에도 눈물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인간에게 의존하는 정의와는 반대방향을 택하는 일종의 신에 의존하는 정의 . 그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도덕의 태양이 암흑 속에서 무섭게 뜨는 아침을 보았다 . 그 아침은 그를 겁나게 했다. 그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 독수리의 눈을 가질 것을 강요당한 부엉이였다.
(p. 2087(17))
그들은 빛났다. 그들은 다시 불러올 수도, 다시 찾아낼 수도 없는 순간에, 모든 청춘과 온갖 기쁨의 눈부신 교차점에 있는 것이었다. 장 프루베르의 시구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를 합쳐도 마흔 살도 되지 않았다. 그것은 승화된 결혼이었고 젊은 두 사람은 두 송이의 백합꽃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고도 서로 황홀해하고 있었다. 꼬제뜨는 마리우스를 영광 속에 바라보고 마리우스는 꼬제뜨를 제단 위로 우러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 그 영광 속에 신이 되어 결합한 두 사람은 그 깊숙한 속에서, 꼬제뜨에게는 안개 저쪽에, 마리우스에게는 불꽃 속에서, 하나의 이상이, 현실이, 입맞춤과 꿈의 만남이, 원앙침이 보이는 것이었다.
(p. 2161(91))
장 발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회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겨울이었다. 몹시 추운 12월에 그녀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거의 헐벗은 몸으로 떨고 있었다. 가련하고 조그마한 발이 나막신 속에서 새빨개져 있었다. 장 발장은 누더기 옷을 벗기고 이 상복을 입혀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자기를 위해 상복을 입는 것을 보고, 아니, 무엇보다도 따뜻한 옷을 입는 것을 보고 무덤 속에서 기뻐했을 것이다. 장 발장은 또 몽페르메이유의 숲을 생각했다. 둘이서 그 숲을 지났었다. 꼬제뜨와 둘이서. 그때의 날씨며, 낙엽진 나무들이며, 새들이 떠나버린 나무들, 햇빛이 비치지 않는 하늘을 그는 생각했다. 그래도 그때는 즐거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 발장은 조그만 옷가지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목도리를 속치마 옆에, 긴 양말을
구두 옆에, 소매 달린 짧은 윗옷을 긴옷 옆에,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눈여겨 바라보았다. 그때의 그녀는 이것들과 똑같이 조그마했다. 커다란 인형을 팔에 안고 루이 금화를 이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웃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걸었다.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 그밖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의 숭엄한 백발 머리가 맥없이 침대 위로 떨어지고, 그 불요불굴의 늙은 가슴은 날카롭게 찢어지고 얼굴은 꼬제뜨의 옷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만약 그때 계단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무섭게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p. 2175(105))
숙명이 늘 곧기만 한 것은 아니다 . 사람들 앞에 놓인 저마다의 숙명이 언제나 곧고 넓게 뻗어 있지는 않다 . 거기에는 막바지도 있고 , 막다른 골목도 있으며, 어두운 모퉁이도 있고 ,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불안한 십자로가 있다. 지금 장 발장은 가장 위태로운 그러한 기로에 부딪쳐서 걸음을 멈추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선악의 마지막 갈림길에 도달해 있었다 . 그는 그 캄캄한 분기점을 눈앞에 보고 있었다. 몇 번의 괴로운 전환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의 앞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 하나는 그를 유혹했고, 또 하나는 그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어느 것을 택하여야 하나?
그를 두렵게 하는 길은 , 인간이 어둠을 똑똑하게 확인하려 할 때마다 언뜻 보이는, 저 신비로운 집게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다 .
장 발장은 이번에도 다시 무서운 항구와 미소짓는 함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 영혼은 회복할 수 있지만 숙명은 되돌릴 수 없다는것은 과연 진실일까? 불치의 숙명! 무서운 일이다 .
(p. 2178(108))
행복하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들은 행복한 것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 얼마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인생의 그릇된 목적인 행복을 소유함으로써 참다운 목적인 의무를 얼마나 잊고 있는지!
(p. 2248(178))
너희들 , 너희들은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어디라도 좋으니까 한쪽 구석에 장소를 표시할 만한 돌 밑에다 나를 묻어 다오. 이건 내 뜻이다 . 돌에는 이름을 새기지 말도록 해라 . 만약 꼬제뜨가 이따금이라도 와 주기만 한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기쁘겠다. 당신도 와 주오 , 뽕메르씨 군. 내가 늘 당신을 사랑했던 것만은 아니었다고 고백해야겠소. 제발 그 점을 용서해 주시오 .
그러나 지금은 이 아이와 당신 , 두 사람이 내게는 한 사람이오 . 나는 당신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소. 당신이 꼬제뜨를 행복하게 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p. 2300(230))
그가 잠들었네. 운명은 그에게 몹시 가혹했어도
그는 살았네. 천사를 잃어버리자 그는 죽었네 .
올 일은 찾아왔네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p. 2304(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