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3)
빅토르 위고 / 송면 / 동서문화사 / 415쪽
(2013.06.08.)
어떤 사물이든 반사되는 빛은 엷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남에게 주는 기쁨이란 기묘한 것이어서, 없어지기는 커녕 한층 더 밝은 빛이 되어 자기에게 되돌아오고 더욱 더 아름답게 작용한다.
(p. 917)
빠리의 지붕 위로 올라오는 연기는 세계의 사상이다. 빠리를 진흙과돌더미라고 하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그러나 빠리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신적인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빠리는 위대한 것 이상으로 무한대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빠리가 용감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p. 959)
인류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용기라는 숭고한 교훈이 산꼭대기 위에 영원히 걸려 있어야만 한다. 대담무쌍한 행동이 역사를 눈부시게 해준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빛이다. 여명의 빛은 돋아오를 때는 단호하다. 용감하게 시도하고, 도전하고, 고집하고, 노력하고 자기에게 충실하고, 운명과 맞붙어 싸우고, 비극적인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파국을 막고, 때로는 부정한 힘에 대항하고, 때로는 승리의 도취를 경멸하고,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며, 저항을 계속할 것. 그들을 분발케 하는 빛이다.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빛이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에서 깡브론느 장군의 도자기 파이프에까지 전달되어 가는 것이다.
(p. 960)
꽁브페르는 역사가 자연히 진보해 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기를 바랐다. 꽁브페르가 말하는 좋은 진보란 싸늘할지는 모르지만 순수한 진보, 도식적일지는 몰라도 나무랄 데 없는 진보,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진보였다. 미래가 전혀 손때 묻지 않고 찾아온다면, 그리고 민중의 덕의의 끝없는 진화가 아무것에도 방해되지 않고 실현된다면 꽁브페르는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기도라도 앴을 것이다.
'선은 결백해야 한다'고 꽁브페르는 언제나 입러릇처럼 말했다. 혁명이 실로 위대한 것은 눈부신 이상을 응시하며 무서운 우레 속을 뚫고 피의 바다며 불의 바다를 넘어 그 이상을 향하여 한결같이 갈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보가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 오점이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을 한쪽의 대표, 당똥을 다른 쪽의 화신으로 본다면 둘 사이에는 백조의 날개를 가진 천사의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천사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다.
(p. 1055)
자네들이 아무리 완전하고 뛰어나고 유능하다 해도 그런 건 내겐 상관 없어. 모든 장점은 단점과 통하네. 검약가는 인색한 사람과 가깝고 관대한 사람은 낭비하는 사람과 별 차이 없고, 용기는 허세와 같은 그릇이지. 매우믿음 깊게 말을 하는 자도 조금은 위선이 있는 법일세. 디오게네스의 외투에 구멍이 있듯이 미덕 속에도 악덕은 있어.
(p. 1079)
마음이 약한 자를 비굴하게 만드는 무서운 시련, 그것은 또 마음이 강한 자를 탁월한 인간으로 만드는 바람직한 시련이다. 그것은 비열한 인간이나 신과 같은 인간을 만들려고 할 때면 반드시 운명이 인간을 던지는 도가니이다.
왜냐하면 하찮고 작은 싸움 속에서야말로 많은 위대한 행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빈궁과 치욕이 여지없이 달려드는 생활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끈덕지고 강한 남다른 용기를 떨쳐 한 걸음 또 한 걸음 저항해 마지않는다. 이윽고 그 누구의 눈도 미치지 않고, 어떤 명성도 없으며, 어떤 갈채의 나팔도 불지 않는 곳에서 숭고하고 신비로운 승리를 획득한다.
인생, 불행, 고독, 빈곤이라고 불리는 것들 모두가 싸움터이며 거기에는 영웅이 있다. 그리고 이름도 없는 이 영웅들은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영웅들보다도 더 위대할 수도 있다.
(p. 1100)
아직 자기를 잘 알지 못하는 영혼의 그런 첫 눈길은 여명의 하늘과 같은 것이다.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찬란한 것의 눈뜸이다. 장엄한 어둠을 어렴풋이 비추는 뜻하지 않은 번쩍임, 현재의 때묻지 않은 모든 것과 미래의 모든 정열로 이루어진 그 번쩍임의 위험한 매력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것은 우연히 나타나서 기다리는 목적 없는 애정이다. 순수한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쳐놓은, 스스로 바라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느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올가미인 것이다. 그것은 한 여자로서 남자를 바라보는 눈길인 것이다.
(p. 1141)
인류는 동등하다. 모든 인간이 다 같은 흙으로 빚어졌다. 적어도 이 세상에는 하늘이 정해 준 운명에 있어서는 하등 차별이 없다. 전세에서는 다 같은 어두움, 현세에서는 다 같은 육체, 내세에서는 다같은 한줌의 재, 그러나 인간을 만드는 원료에 무지라는 것이 섞이게 되면 그 원료는 시커멓게 변질한다. 그 지울 수 없는 검은 빛은 인간 내부 깊숙이 침투하여 거기서 악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p. 1167)
생활이 어려워지고도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이란 그리 흔치 않다. 게다가 어느 경지에 까지 이르면 불운과 파렴치는 서로 혼합돼 구별할 수조차 없이 되고, 또 한 마디의 말, 즉 비참한 사람들, 레 미제라블이라는 숙명적인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 누구의 죄인가? 그들이 구렁텅이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한층 커다란 자비의 손을 베풀어야 하지 않는가?
(p.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