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늘 (1)(2)
이외수 / 동문선

(2013. 01. 02.)

 

 

  이제 나도 세상이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 수가 있는 나이였다. 정치도 썩어가고 있었고, 종교도 썩어가고 있었다. 예술도 썩어가고 있었고, 학문도 썩어가고 있었다. 이제 세상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개인도 비틀거리고 있었고, 단체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가정도 비틀거리고 있었고, 사회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날마다 세상은 붕괴되고 있었다. 도덕도 붕괴되고 있었고, 양심도 붕괴되고 있었다. 영혼도 붕괴되고 있었고, 정신도 붕괴되고 있었다. 아무도 책임지려 들지 않았고, 아무도 개선하려 들지 않았다. 오직 세상에는 황금만이 절대적인 종교로 숭배되고 있었다. 전국민이 신도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인간을 보기를 돌같이 하고, 황금을 보기를 신같이 하는 시대가 도래해 있었다.
(p. 125)

 

 

  아버지의 지론대로라면 이제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기협잡을 일삼는 모리배들은 호화주택을 차지하고 고급 승용차를 굴리면서 살아가고, 청렴결백을 고수하는 선량들은 전세방 신세를 면치 못한 채 콩나물 버스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가짜가 우대받고, 진짜가 천대받는 시대였다. 인간의 가치는 점차로 낮아져 가는 데 돈의 가치만 점차로 높아져 가고 있었다. 모두가 정도를 상실하고 있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p. 155)

 

 

 

  “탐관오리들은 대부분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특성을 미덕인 양 간직하고 있지.”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공수요원의 적합한 공격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소견에 의하면, 그들은 사치를 인격도야에 필요한 선택과목으로 채택하고, 허영을 정신수양에 필요한 필수과목으로 채택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수십억 짜리 주택과 수천만 원짜리 승용차와 수백만원 짜리 의상과 수십만 원짜리 식사를 향유하면서도 탐욕을 멈추지 않는 습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재물을 긁어 모으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p. 160)

 

 

  내가 알기로도 국회의원은 대단히 힘겨운 일을 수행해야 하는 직책이었다. 국회가 열리면 나라를 위해 체면불구하고 서로 언성을 높이며 멱살을 부여잡거나 명패를 집어 던지는 난동까지도 불사해야 하는 직책이었다. 나도 텔레비전을 통해서 여러 번 그 적나라한 활약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p. 286)

 

 

  그는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낚싯대를 지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낚싯대에는 바늘도 없었고, 줄도 없었다. 따라서 한번도 물고기를 잡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강에서도 산에서도 빈 낚싯대를 펼쳐 놓았다. 들판에서도 숲속에서도 빈 낚싯대를 펼쳐 놓았다. 무엇을 낚고 있느냐고 물으면 시를 낚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한 그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고 있었다. 실종되기 며칠 전에는 안개 속을 헤엄쳐다니는 물고기를 보았노라고 말하면서 비늘 한 개를 보여 주었다 황금비늘이었다. 눈부신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비늘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 430)

 

 

  “나쁜 놈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알고 있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사람들 모두가 나뿐인 놈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절로 나쁜 놈은 생기지 않게 되지.”
할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나뿐인 놈이라니오.”
나는 할아버지의 대답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을 나뿐인 놈이라고 하지.”
학ㄹ아버지는 나뿐인 놈이라는 말이 변해서 나쁜 놈이라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주만물은 어떤 것이든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느니라.”
그런데도 나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놈은 나쁜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뿐인 놈은 자기 하나를 존재케 만들어 주기 우해서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를 전혀 생각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신을 조금도 희생시키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도 고갈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오직 자신을 위한 욕망만이 비대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p. 443)

 

 

  “경쟁이나 투쟁의 결과만으로 어떤 존재의 가치와 우수성을 평가해서는 안 되느니라.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동일한 가치와 우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대자연의 눈으로 보면 만물에게는 일등도 꼴찌도 없다는 것이었다.
  “만물의 본질적 가치와 우수성은 동일해도 작용이나 형상은 다른 법이니라. 그래야만 조화롭기 때문이니라. 일견 저 눈송이들이 똑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느니라.”
  과거에 내린 눈도 현재에 내리는 눈도 미래에 내릴 눈도 같은 개체는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른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마다가 차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p. 488)

 

 

  “특별보좌관”
  “말씀하십시오, 대장님.”
  “아직도 인간이 왜 살아가는지를 알아내지 못했는가.”
문재 형의 채근이었다.
  “알아내었습니다.”
나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말해 보게”
문재 형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내 의식의 목구멍 속에 생선가시로 박혀서 오래도록 거치적거리던 명제였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갑니다.”
나는 생선가시를 뽑아서 문재 형에게 내밀어 보였다.
  “어떻게 알았는가.”
  “마음 안의 촛불을 환하게 켜놓으면 누구든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어떤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대상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대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저절로 마음 안에 촛불이 환하게 켜진다는 사실을.
(p.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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