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파이돈·향연)
플라톤 / 황문수 / 문예출판사
(2012. 12. 29.)
<변명>
그들은 나를 고발한 자들이므로 나는 소장을 요약하고자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하는 자이며 괴상한 사람이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위와 같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친다.’ 이것이 고발의 내용입니다.
(p. 13)
내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신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일까?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만일 나 자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나는 반증을 갖고 신에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가장 현명하다고 말했습니다.”하고 나는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인이라는 세평을 듣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를 – 그는 내가 시험해 보기로 한 정치가였습니다. -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그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자기 자신도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는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선을 사실상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고 알려져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갔으나 결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와 그 이외의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p. 17-18)
싸움터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추격자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도 무슨 말이든 또 무슨 짓이든 다 하기만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나의 친구여, 죽의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不義)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고 행동이 둔하기 때문에 느리게 뛰는 자에게 붙잡혔지만 예리하고 기민한 나의 고발자들은 빨리 달리는 자, 곧 불의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러분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받기 위해 떠나지만, 그들도 진리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고 흉악과 부정에 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떠나갑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은 숙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는 이것으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p. 51)
재판관 여러분, 죽음을 흔쾌히 여기고 착한 사람에게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쁜 일은 생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착한 사람과 그가 한 일은 신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나의 다가오는 최후도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나는 죽어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좋은 때가 왔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신탁은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유죄 판결을 한 자와 고발한 자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좋은 일을 해줄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해를 깨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들은 마땅히 비난을 받을 만합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p. 55)
<파이돈>
사람들이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묘한 일인가, 그리고 쾌락의 반대라고 여겨지는 고통과의 관계도 또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쾌락과 고통은 동시에 같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은 없으면서도 그 중 하나를 추구해서 얻은 사람은 대체로 다른 하나도 어쩔 수 없이 얻게 마련이기 때문이야. 그 몸뚱이는 둘이지만, 머리 하나에 붙어 있는 셈이야. 그리고 이솝이 이러한 점을 알았더라면 그는 신이 쾌락과 고통 간의 싸움을 화해시키려다가 도저히 불가능함을 알고 양자의 머리를 하나로 만들어버렸고 그래서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우화를 지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p. 88)
진정한 철학자들은 ‘우리가 육체와 더불어 있는 동안은, 그리고 영혼이 육체의 악에 감염되는 동안은 우리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우리와 우리의 논의를 이끌어가는 사유의 길을 우리는 찾아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의 욕구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육체는 양식을 요구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끝없는 번거로움이 생기고 게다가 병이라도 걸리면 우리의 참된 존재에 대한 추구를 압도하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육체는 우리의 마음속을 애욕과 욕망과 공포와 모든 종ㄹㅍ의 환상과 끝없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게 만들고, 사실상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사유의 힘을 전적으로 빼앗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p. 99)
내가 나의 여행을 마치고 지금 가려고 하는 곳에 다다르면 평생 동안 추구하던 것을 얻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네. 그러므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나의 길을 가려고 하며, 나만이 아니라 마음에 결심이 서 있고 순수한 태도를 가졌다고 믿는 모든 사람이 그럴 거야.
(p. 101)
아름다움 자체, 선 자체, 모든 사물의 절대적 본질이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방금 알게 된 이러한 본질에 우리의 모든 감각을 비교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영혼은 태어나기 전부터 갖고 있었고 선천적인 소유물임을 발견하고서 이 본질과 우리들의 모든 감각을 비교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영혼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논의는 무력한 것이 아니겠나? 우리의 영혼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관념들도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일세. 만일 관념이 없다면 우리의 영혼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p. 119)
“독이 심장에 까지 미치면 마지막이네.” 하반신이 차가워지기 시작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얼굴을 가린 것을 들치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p. 192)
<향연>
이러한 사람을 비난하는 곳에서는 그 비난의 배후에 사람들의 열등한 성격, 지배자들의 권력에 탐욕, 그리고 신민들의 비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무조건 좋다고 하는 곳에서는 입법자의정신적 나태 대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p.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