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이윤기 / 열린책들

(2012. 12. 08.)

 

 

★ 대지의 배꼽에서 탯줄을 잘라내지 않은 사나이

철학이 담겨져 있지 않은 소설은 고전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p. 13)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p. 22)

 

 

  조르바는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답잖은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확실히 그에게 전신 기술, 증기선, 엔진, 당대의 도덕과 종교는 녹슨 고물 총과 다름없었다. 그의 정신은 세상을 훨씬 앞질러 가고 있었던 것이다.
(p. 27)

 

 

  나는 그제야 그의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 나간걸 알았다. 나는 그쪽으로 갔지만 속이 역겨웠다.
  “손가락은 어떻게 된 겁니까. 조르바” 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도”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기계 만지다 잘렸어요?”
  “뭘 안다고 기계 어쩌고 하시오? 내 손으로 잘랐소”
  “당신 손으로, 왜요?”
  “안 해본 짓이 없다고 했지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어 싶은 거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이가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당신의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오.”
  “그래서요?” “손가락은 어떻게 되었느냐니까?”
  “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아프지 않던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쓰러진 나무 그루터기는 아니오. 나도 사람입니다. 물론 아팠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며 신경을 돋우었어요. 그래서 잘라 버렸지요.”
(p. 28-29)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p. 38-39)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p. 98)

 

 

  “두목 나를 신용하십니까요?”
  “물론 하지요, 조르바. 조르바라는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그르칠 턱이 없어요. 그르치려고 해봐야 그렇게는 안 될 겝니다. 당신은 사자나 이리 같다고나 할까. 그런 맹수에게 양이나 나귀 같은 처신을 해봐야 안 됩니다. 천성이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당신도 마찬가집니다. 당신은 머리끝에서 손톱 끝까지 조르바라는 겁니다.”
(p. 103)

 

 

  그는 갑자기 자연의 법칙을 정복하고 날아가려는 듯이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처럼 던져 버리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오래는 공중에 머물 수 없어서 땅에 떨어질 때마다 그의 몸은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사정없이 흔들리면서도 다시 더 높이 뛰어올랐다. 뛰어올랐지만 그의 불쌍한 육신은 쉴 새 없이 다시 땅에 떨어졌다.
(p. 104)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은 채 깡그리 낭비하고 만 내 인생을 생각했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별빛으로 조르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밤새처럼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부러웠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p. 111)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물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으로 까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p. 174)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생명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날개를 뒤로 접으며 구겨지는 나비를 본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엾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펴는 것은 태양 아래서 천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쭈그러진 채 집을 나서게 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어 갔다.
(p. 178)

 

 

  나는 한동안 화살에 꿰뚫린 심장이 그려진, 향긋한 편지를 쥔 채, 그와 함께 보냈던,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찼던 나날들을 생각했다. 시간은 조르바와의 만남에 새로운 흥취를 더했다. 조르바와의 만남은 외부 사건의 수학적인 연속도, 내부의 해결할 수 없는 철학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결이 고운, 따뜻한 모래 같은 것이었다. 나는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모래를 감촉할 수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조르바에게 복이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p. 226)

 

 

  세계란 무엇일까? 나는 궁금했다. 세상의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한순간의 목숨이 어떻게 하여 세상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혹자는 정신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한 차원을 높여서 보면 똑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왜? 무슨 목적으로?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p. 389)

 

 

  꺼져 가는 불가에 홀로 앉아 나는 조르바가 한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의미가 풍부하고 포근한 흙냄새가 나는 말들이었다. 존재의 심연으로부터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한 그런 말들이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리. 내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들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었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p. 400)

 

 

  행복이란 의무를 행하는 것. 의무가 무거운면 무거울수록 행복은 그만큼 더 큰법
(p. 420)

 

 

  재수 없는 사람은 자기의 초라한 존재 밖에도 스스로 자만하는 장벽을 쌓는 법이다. 이런 자는 거기에 안주하며 자기 삶의 하찮은 질서와 안녕을 그 속에서 구가하려 하는 게 보통이다. 하찮은 행복이다. 만사는 정해진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험한 길, 신성한 길을 따르다 안전하고 단순한 법칙에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공격이 차단된 하찮은 확신의 테두리 안에서 지네처럼 꼼지락거리다 보면 아무 도전도 받을 수 없다. 숙명적인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강력한 적은 오직 하나, 터무니없는 확신뿐이다. 확신은 내 경험의 벽을 허물고 내 영혼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p.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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