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 오웰 / 도정일 / 민음사
(2012. 10. 12.)
과거는 현재를 반영한다. 1940년에 쓰여진 이 소설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여진다. 1943년에 쓰여지고 1945 출판된 이 소설은 소비에트를 풍자하기 위한 소설 이었지만 소비에트 체제의 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오웰이 그린 동물농장은 지금의 세계에도 있고 미래 세계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계속 이 비참한 조건 속에 살아야 하는 겁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노동해서 생산한 것을 인간들이 몽땅 도둑질해 가기 때문입니다. 동무들, 우리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거기 있소. 한마디로 문제의 핵심은 <인간>이오.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동물의 주인입니다. 그는 동물들을 부려먹고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주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가 챙깁니다.
(p. 11)
동무 여러분, 우리 삶의 이 모든 불행이 인간의 횡포 때문이라는 게 너무도 명백하지 않소? 인간을 제거하기만 하면 우리의 노동 생산물은 모두 우리 것이 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부자가 되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온 신명을 바쳐 인간이라는 종자를 뒤집어엎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p. 12)
동무들, 여러분의 결의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하시오. 헛된 얘기에 솔깃해서 길 읽고 헤매면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은 다같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한쪽의 번영이 곧 다른쪽의 번영이기도 하다 따위의 말을 인간들이 하더라도 그 말을 믿지 마시오. 그건 모두 거짓말이오. 인간은 인간말고는 그 어떤 동물의 이익에도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물들에게 완벽한 단결과 투쟁을 통한 완벽한 동지애가 필요하오. 모든 인간은 우리의 적이며 모든 동물은 우리의 동지입니다.
(p. 13)
<동물주의 원리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p. 26)
그 여름 내내 농장 일은 시계처럼 돌아갔다. 동물들은 일찍이 상상도 못했을 만큼 행복했다. 입에 넣는 먹거리는 그지없이 달콤했다. 그것은 과거 인색한 주인이 마지못해 동냥주듯 던져 주던 그런 먹이가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위해 생산한 먹이, 진정한 그들 자신의 먹이였기 때문이다.
(p. 29)
그해 내내 동물들은 노예처럼 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이 행복했다. 그들은 노동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그들 자신의, 그리고 다음에 올 후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게으른 도둑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p. 56)
일은 더 많이 하면서도 먹는 것은 존즈 시절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일요일 아침이면 스퀄러가 길다란 두루마리 통계 숫자 목록을 펴놓고 그간 농장의 각종 식량 생산량이 200퍼센트, 300퍼센트, 혹은 500퍼센트식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동물들로선 <반란> 이전의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스퀄러의 발표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동물들은 통계 숫자보다는 먹을 것이나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때가 자주 있었다.
(p. 82)
4월이 되자 동물농장은 <공화국>으로 선포되고 대통령 선출이 필요해졌다. 후보는 오로지 나폴레용 하나뿐이었고 그는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같은 날, 스노볼과 존즈 사이의 공모 내용을 더 자세히 밝혀주는 새로운 문서들이 도 발견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p. 102)
그들의 삶이 고되고 모든 희망이 다 성취된 것은 아닐지 몰라도 동물들은 자기네가 여타 농장의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배를 주린다면 그건 인간 독재자들을 먹여살리느라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고달프게 일한다 해도 그 노동은 최소한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 중에 아무도 두 발로 걷는 동물은 없었다. 어느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주인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했다.
(p. 115)
일곱 계명은 오간 데 없고 단 하나의 계명만이 거기 적혀 있었다. 그 계명은 이러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p. 117)
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p.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