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상봉 / 꾸리에

(2012.08.31.)


 

6월항쟁을 ‘성공한 항쟁’이라 말하는 언설의 이면에는 그 뒤 이어졌던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기억이 배제되곤 했다. 그 결과 ‘민주정보 10년’은 절자척 민주주의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기업 지배국가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슬픈 역설이 탄생했던 것이다.
오늘의 금융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지배원리는 주식회사이며, 자본의 소유권을 당연시하고 전횡을 방치하는 한 민주주의는 껍데기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왜 경영자를 노동자가 직접 선출하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간의 자유가 자본에 영구히 종속되는 모순을 극복하는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을 하나의 깃발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크게 세 가닥의 실로 짜여 있다. 하나의 실은 ‘사장을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다른 실은 ‘대답’이다. 사장을 노동자가 뽑으면 안 되는가 라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되는 경우도 있고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실은 어떤 의미에서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노동자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근거’들이다.
(p. 6)

 

 

  기업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그것은 개별적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가가 설령 어떤 기업을 운영하더라도 그것은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공적 복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가 기업화되면서 국가와 기업의 이런 구별이 사라지고, 아예 국가가 기업의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략해 버렸다.
  국가가 기업의 이윤추구의 도구가 되어버리면, 우리의 삶에서 공공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의 집은 사적 이윤이라는 염산이 섞인 빗물에 침식될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너와 나의 인격적 만남은 사사로운 이억을 위한 경쟁과 다툼 속에서 찢어지고 우리는 서로 고리되며, 결국에는 경제적으로 가난해진다. 왜냐하면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까닭은 모두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마지막 한 사람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양극화란 국가가 기업이 될 때 일어나는 필연적 결과이다.
(p. 28)

 

 

  기업이란 국가를 모태로 하여 생겨나고 자라왔으나 이제는 국가를 넘어가 버린 새로운 사회적 주체인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국가에 이해 규정되듯이 새로운 전체인 세계화된 시장과 초국적 기업이 낡은 전체인 국가를 규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개별국가의 주권이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규제되는 사태가 현실로써 일어나게 된다.
(p. 39)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모순은 삶을 위한 수단이어야 할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고 그 결과 삶의 실질적 목적이 되어버린다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이 모순은 사라진다.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에 대한 최종적인 주권자가 되어 자기의 생산 활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형성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산출된 잉여가치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면, 더 이상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p. 76)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업은 한갓 사물적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한다 하든 국가가 소유한다 하든, 기업을 소유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을 기업에 부속된 사물로서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며, 노동자는결과적으로 노예의 자리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를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참된 의미에서 기업의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소유권을 자본가의 손에서 국가의 손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소유권과 기업의 지배권, 즉 경영권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경영권은 오로지 그 기업의 노동자에게 속해야만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인 것이다.
(p. 131)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식회사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주식이 너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주식회사의 본질상 주식의 소유와 기업의 경영권 사이에 아무런 필연적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식의 소유라는 사실로부터 기업경영의 권리가 전혀 연역될 수 없다는 것이 주식회사의 본질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조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사람도 주식회사의 경영을 맡을 수 있고, 반대로 모든 주식을 소유한 사람도 경영을 남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다.
(p. 170)

 

 

  주식회사에 주인 같은 것은 없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주들이 있을 뿐이고,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진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주들이든 이사든 경영진이든 모두 자기가 맡은 일이 있고 그 일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주식회사는 개인기어이 아니라 법인기업으로서 철저히 법적인 구성물이다. 그러므로 이 법적 구성물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은 철저히 법적인 근거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대해 마찬가지로 자기의 권한행사에 따르는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의 이건희는 삼성의 어떤 계열사 가운데 어떤 회사에서 주식회사 법에 규정된 어떤 직책을 정식으로 맡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며,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p. 212)

 

 

  주인이 없으므로 오직 공공성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할 주식회사가 이 땅에서는 주인이 없으므로 먼저 차지하는 자가 주인이 되고 이를 통해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가 기업에 관계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것인 주식회사를 사사로이 지배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이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거대 주식회사 집단 곧 재벌 가문의 노예가 되어 있다.
(p. 235)

 

 

  노동자들이 출자한 우리사주조합이 일정기간 동안 5% 이상의 주식을 확보한다면, 자기가 일하는 기업에 대해 회계장부 열람권, 회사의 업무와 재산상태 검사 청구권, 총회소집 청구권, 이사 해임청구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많은 불합리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크면 클수록 노동자들이 이 정도의 지분을 공동으로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소극적 견제만으로는 기업이 노동자들의 자치 공동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p. 242)

 

 

  주식회사를 참된 의미의 생산 공동체롤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노동자들에게 주식회사의 주체성을 돌려주는 일만 남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많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법률조항이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지금까지 이 책에서 내가 했던 모든 말은 바로 이 한 마디를 위한 근거를 제시한 것 뿐이다.
(p.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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