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식당
무레 요코 / 푸른숲

(2012.08.14.)

 

  <카모메 식당>은 영화 <카모메 식당>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전 무레 요코에게 의뢰하여 집필한 소설이다. 소설 <카모메 식당>은 영화와 줄기는 같지만, 영화에 소개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사치에의 어린 시절부터 식당을 내기까지 차근차근 준비해가는 과정, 핀란드를 선택한 이유, 진짜 인생을 찾기로 결심하고 일본을 떠나온 미도리 이야기, 마음 둘 곳 없이 여행을 시작한 마사코와 영화에는 담지 못한 세 여인의 크고 자은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소풍 가던 날, 도시락을 만들려고 일어난 사치에는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아버지가 평소에는 기왓장을 깨 보이거나, 제자들을 힘차게 내동댕이 치던 손으로 오니기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빠.”
  사치에가 부르자 아버지는 깜작 놀라서 돌아보더니 “언제나 네가 만들어서 네가 먹지 않냐. 오니기리는 남이 만들어준 게 제일 맛있는 법이다”라며 연어, 다시마, 가다랑어 포를 넣고 만든 큼직한 오니기리를 내밀었다. 오니기리 말고는 계란말이도 닭 튀김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치에는 그걸 들고 소퐁을 갔다.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가 싸준 알록달록하고 예쁜 도시락에 비해, 아버지가 만들어준 투박한 오니기리는 모양새는 별로였지만 사치에에게는 최고로 맛있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중학교 3년 동안 소풍과 운동회날만큼은 도시락을 손수 싸주었고, 그것은 언제나 오니기리였다.
(p. 18)

 

 

  “난 잘 지은 밥이랑 채소 절임이랑 된장국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학교에서 사치에가 그렇게 말할 때, 친구들은 “할머니 같아”라며 다들 웃었다. 그녀에게 최고의 식사는 바로 그것이었다. 연구 삼아 여러 가게를 돌며 식사를 하면 사치에는 원재료의 맛을 속인 기름과 조미료의 맛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은 그런 진한 맛이 좋다면 맛있게 먹었다.
  “화려하게 담지 않아도 좋아. 소박해도 좋으니 제대로 된 한끼를 먹을 만한 가게를 만들고 싶어.”
(p. 20)

 

 

  취직한 지 10년이 넘도록 “빨리 불어나기를!”를 하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문질러댔다. 가게를 개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잡지에 실리면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가게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치에는 옛날 식당처럼 이웃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음식은 소박하지만 맛있는 그런 식당이 좋았다. 겉으로만 세련되고 알맹이 없는 가게는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도쿄에서는 그런 가게가 많아져가는 경향이었고, 잡지에 실렸다거나 예약을 하기 힘들다거나 하는 것이 식당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었다.
  ‘요즘 일본인들이 맛을 알긴 아는 걸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일본은 유행이라면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금세 눈앞의 새로운 것에 달려든다.
(p. 22)

 

 

  사치에는 항구에 서서 발밑으로 걸어가는 뒤룩뒤룩 살찐 갈매기를 보며 말해싸. 갈매기는 “뭐야?” 하는 얼굴로 사치에를 돌아보더니, 뒤뚱뒤뚱 걸어가버렸다.
  “갈매기……라.”
  일본에서 갈매기라고 하면 귀여운 해군 아저씨를 상징하거나 흘러간 가요에 조연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핀란드 갈매기는 어딘지 모르게 태평스럽고 뻔뻔한 것이 마치 자신을 닮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갈매기…… 그럼 카모메(일본어로 갈매기) 식당…… 으로 할까요?”
  또 다가온 다른 갈매기에게 말을 걸자 갈매기는 부리부리한 눈을 껌벅거렸다.
  “좋아요. 카모메 식당. 결정했습니다!”
(p. 36)

 

 

  오니기리를 주문하는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자칭 일본 마니아인 토미가 드물게 자기 돈을 내고 오니기리를 사먹은 적이 있다. 연어는 몰라도 가다랑어 포는 삼키는 데 애을 먹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오니기리를 고집했다. 나라는 다르지만 만드는 사람이 마음을 담아 만든 음식을 언젠가 이곳 사람들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손님에게 추천한 음식을 거절당해도 그녀는 주눅 들지 않고 웃는 얼굴로 대했다.
(p. 44)

 

 

  “시장이란 곳은 어째서 이렇게 즐거울까요. 매일 와도 질리지 않죠? 어디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 다 알고 있는데 어째서 질리질 않는 건지, 그게 신기합니다.”
  미도리는 오렌지를 들고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언제나 똑같으니까 오히려 질리지 않는 거 아닐까요? 파는 사람도 파는 물건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고, 아무리 시장이어도 파는 물건들이 축 늘어져 있으면 아무도 사지 않잖아요. 하늘 바로 아래서 팔고 있으니 속이 확 뚫리는 기분도 들고 말이에요.”
(p. 83)

 

 

  사치에는 앞으로 가게의 방침에 대해 생각했다. 미도리의 말처럼 매상을 생각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최우선으로 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기대를 품고 찾아와 식사를 하고 즐겁게 돌아가면 된다. 가게가 잘되는 건 아니지만, 가게에서 팔고 있는 어떤 것이든, 커피든 홍차든 빵이든 과자든 그걸 먹어 본 사람들이 반드시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 사람들이 친구를 데리고 와주기도 해서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은 가게에 대한 신뢰다. 화려한 광고나 행사를 하지 않았지만, 이웃 사람들이 와주고 있었다.
(p. 106)

 

 

  “도쿄에 있을 때는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날 때가 있잖습니까. 그걸 노래방이나 쇼핑 혹은 섹스로 얼버무리고나 하잖습니까.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우거진 숲이 많고 사람도 차도 적어서 답답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도쿄에 살던 사람은 전원 생활로 치유를 받기도 하잖아요. 자연이 모든 것을 치유해 주지 않는 걸까요. 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치에는 슬행법을 시작했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고 모두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어디에 살든 어디에 있든 그 사람 하기 나름이니까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죠. 반듯한 사람은 어디서도 반듯하고, 엉망인 사람은 어딜 가도 엉망이에요.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p. 148)

 

<영화 카모메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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