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카포티 / 아침나라
(2012.07.08.)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이라야 잘 보이려고 버둥대는데, 난 그렇지도 않아요. 배우 노릇을 하면서도 분명한 자아를 갖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사실 자아를 갖지 않아야 배우 노릇을 할 수 있다고요. 그렇다고 부자나 유명인이 되기 싫다는 얘긴 아니에요. 언젠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질 계획을 세우고 있죠. 그렇게 된다고 해도 뚜렷한 자아를 갖고 살고 싶어요. 어느 화창한 아침 잠에서 깨어 ‘티파니’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내 본모습 그대로이길 바라죠.
(p. 62)
“가여운 녀석. 이름도 없는 가여운 녀석. 이름이 없으니 좀 불편하긴 해요. 하지만 내겐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 줄 권리가 없어요. 다른 주인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죠. 어느 날 우린 강가에 갈 거고, 서로 헤어질 거예요. 고양이는 독립적이고 나도 그래요. 나와 사물이 어울리는 공간을 찾을 때까진 아무 것도 갖고 싶지 않아요. 아직은 그게 어디가 될지 잘 몰라요. 하지만 어떤 광경일지는 알아요.”
“‘티파니’랑 비스할 거예요. 내가 보석에 홀딱 빠져서 그런 건 아니고요. 좋죠. 하지만 마흔살이 되기 전에 다이아몬드를 치장하면 볼품 없어요. 다이아몬드는 나이든 여자한테만 어울려요. 하지만 내가 ‘티파니’에 열광하는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잘 들엉봐요. 아득한 나날을 알아요?”
“우울한 거랑 같은 건가요”
“아뇨 이니에요. 우울한 기분은 자꾸 살이 찐다거나 비가 너무 오랫동안 내리기 때문에 생가는 감정이죠. 서글픈 기분일 뿐이에요. 하지만 아득한 건 아주 끔찍해요. 겁이 나고 땀이 뻘뻘 나는데도 뭐가 두려운지 모르죠. 나쁜일이 닥칠 거라는 건 알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는 거예요. 당신도 그런 기분을 느끼나요?”
“굉장히 자주 느끼죠. 그걸 ‘공허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맞아요, 공허감.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글쎄요, 술이 도움이 되죠”
“그건 시도해봤어요. 아스피린도 먹어봤고요. 러스티는 나더러 마리화나를 피워야 된대요. 그래서 한동안 해봤는데 웃음만 나요.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은 택시를 잡아타고 ‘티파니’로 가는 거죠. 그곳에 가면 곧장 마음이 가라앉죠. 그 적막감과 당당한 광경... 거기서는 나쁜일이 일어날 수가 없어요.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친절한 신사들이 있고, 은과 악어가죽 냄새가 기분 좋게 풍기는 곳이니까요. ‘티파니’에 간 것과 비슷한 기분을 주는 집을 찾을 수 있다면, 가구를 사들이고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겠어요.”
(p. 63-65)
“왜 ‘여행중’이고 썼어요?”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명함에요? 그게 우스운가요?”
할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사실 내가 내일 어디 살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래서 ‘여행중’이란 문구를 넣으라고 했죠. 어쨌거나 그런 명함을 주문한 건 돈 낭비였어요. 다만 거기서 뭔가 간단한 걸 사야 될 것 같았거든요. 명함은 ‘티파니’에서 만든 거예요.”
(p. 68)
사람의 성격은 자주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 몸도 몇 년에 한 번씩은 변한다. 바람직하든 아니든, 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여기 변하지 않을 두 사람이 있었다. 마일드레드 그로스먼과 할리 골라이틀리. 둘의 공통점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너무 일찌감치 개성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벼락부자처럼 균형 감각이 없어진다. 한 사람은 머리가 큰 현실주의자로 몰입했고, 다른 사람은 균형 감각이 없는 낭만주의자로 빠졌다. 나는 장래에 그들이 레스토랑에 앉은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도 마일드레드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음식의 영양가를 궁리할 테고, 할리는 음식을 게걸스레 먹는 데 몰두하겠지. 절대 변하지 않을 터였다. 그들은 왼쪽에 있는 낭떠러지도 쳐다보지 않는 단호한 걸음으로 인생을 시작해, 똑같은 걸음으로 인생의 끝에 다다르리라.
(p. 92)
“누구나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런 특권을 주장하기 전에 그렇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마땅해요“
(p. 99)
야성적인 것은 사랑하지 마세요. 벨 씨. 그게 그이의 실수였어요. 그는 늘 집에 야생 동물을 데려왔어요. 날개에 상처 입은 매 같은 거요. 한 번은 다리가 부러진 살쾡이를 데려왔어요. 하지만 야생 동물한테는 마음을 줄 수 없는 법이죠. 마음을 쏟을수록 그것들은 더욱 강인해져요. 강해져서 숲으로 달아나죠. 나무 위로 날아가거나. 그 다음에는 더 높은 나무로 가고. 결국 하늘로 날아가죠. 마침내 그렇게 끝나고 만다니까요, 벨 씨. 야성적인 것을 사랑하면 결국 하늘을 쳐다보는 것으로 끝나고 말아요.
(p. 116)
나는 카포티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문장을 읽을 때는
어디에서 반전이 될지 알 수 없는 무서움이 있다.
또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한 소년의 눈이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