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 돌베개


국가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철학과 이론은 몇 가지 큰 흐름으로 갈래를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국가주의 국가론이다. 이것을 신봉하는 사라들을 가리켜 전체주의 성향을 지녔다고 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의 논리체계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세운 인물은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였다.

둘째는 자유주의 국가론이다. 존 로크에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하이에크까지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자와 신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보수적 국가론이다. 셋째는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창안한 이 이론은 150여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끌어당겼다. 넷째는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쳤던 가장 오랜된 이론이다.

(p23-24)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현대적 국가이론의 출발점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홉스의 대답은 명확하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이다. 그는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무제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p. 25)



전제군주제 국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했던 국가주의 국가론이 입헌군주제나 공화제 국가를 꿈꾼 자유주의자들의 도전에 직면한 것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사태였다. 이 사상적 도전을 현실의 승리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철학자와 정치가는 숱하게 많지만, 대표적인 철학자로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이다.

(p.48)



장 자크 루소는 정치색이 한층 농후하고 급진적인 자유주의 국가론을 펼쳤다. 루소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경우 사회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해체 또는 혁명의 가능성을 사회계약론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에게 자유는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있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와 의무를 모두 버리는 것이다. 자유를 빼앗기면 행위의 도덕성도 제거된다. 루소에 따르면 공동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자격을 유지하려면 자유를 지켜야 하며, 자유로운 개인 없이는 국가주권도 성립하지 못한다.

(p. 57-58)


루소는 모든 사회악과 사회갈등이 근원이 경제적 불평등에 있으며 수천 년에 걸쳐 고착화된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p. 60)


자유주의 국가론에 가장 넓고 깊은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은 존 스튜어트 밀이었다. 『자유론』을 통해서 밀은 자유주의 국가이론을 철학적으로 완성했다. 밀도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여 공동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유를 제약할 때는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아 성립한 정당한 권력이 자의적이고 즉흥적인 명령이 아니라 널리 알려지고 확정된 법률을 통해서 해야 한다는 로크와 루소의 법치주의 원리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당한 권력이 법률을 통해서 하는 경우에도 공동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구혹하고 제약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밀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p. 62-63)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정치적 냉소주의와 의도된 무관심의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날카로운 신념의 충돌을 동반하는 국가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보수정파와 자유주의 정파의 정치적 대결에 대해 냉정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싸움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누가 승리하든 세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 89)



복지국가의 주요 기능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국가의 규제를 통해 일정한 수준에서 시민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 조세징수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일이다. 셋째, 시장가격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와 공동장비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복지국가는 조직화된 권력으로 시장법칙을 세 방향에서 수정하는 것이다. 첫째 개인 또는 가족에게 노동의 시장가치나 재산 수준과 관계없이 최저소득을 보장하고, 둘째 질병과 노령, 실업 등 개인과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한 불아을 감소시키며, 셋째 계급적 귀속이나 사회적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일정한 수준의 사회적 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이다.

(p. 209)



칸트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을 세웠다. 반면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에게 신념윤리와 아울러 투철한 책임윤리를 요구했다. 칸트의 도덕법은 베버의 신념윤리와 맞닿아 있다. 직업정치인도 인간인 만큼 당연히 칸트의 도덕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그것을 넘어서는 특수한 윤리가 요구된다. 베버는 이것을 책임윤리라고 불렀다.

(p. 248)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이다. 인간의 완전성과 선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과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 얻게 될 “예견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결과”를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껴안는, 그리고 행위의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책임지려는 태도이다.

(p.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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