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세대

우석훈 / 레디앙


88만원 세대란?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사람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들이다. 탈출구는 없다. 이 20대가 조승희처럼 권총을 들것인가, 아니면 전 세대인 386이 그랬던 것처럼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것인가,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p. 21)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선진국들이 어느 정도 풀어낸 젊은이딜의 주거권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개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누군가 여기에 들어갈 돈을 가져가버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이 Y라고 표현하는 수치는 수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yield의 약자이다. 즉, ‘국민경제’라고 부른 하나의 시스템에서 당연히 젊은 사람들 몫으로 들어갔어야 할 돈이 그곳으로 가지 않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p. 44)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출발선을 같게 하자”라는 ‘형평성’의 관점에서사회적 합의를 찾고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물론 초기 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주의라는 큰 복병을 만나게 되었고,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된 셈인데,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준 것 ‘형평성’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으로서는 ‘평등’을 포기하는 대신 형평성이라는 보다 완화된 가치에 동의를 해준 셈이다. 그리고 그 형평성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바로 교육이다. 최소한 안정적 시장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선진국 정부와 극민들이 합의한 내용은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에까지 형평성을 적용하는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제도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p. 46)


지금 10대를 기다리고 있는 진짜 불행은 그들이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었을 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경제 시스템은 전세계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때로 신자유주의라 불리기도 하고, 혹은 ‘한국형 승자 독식’ 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한미 FTA 체제’라 불리기도 한다. 이름이야 어떻게 불리든, 지금부터 펼쳐질 시스템은 특별한 외부의 간섭이나 내부에서의 변화가 없다면 완벽한 승자 독식의 세계이다. 이 시스템이 가혹한 것은 경쟁이 반드시 또래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 간에도 벌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앞 세대, 즉 기성세대가 너무 많이 가지고 가면 뒷 세대는 가질 것이 별로 없는 일방적인 게임이 되고 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펼치지는 상황이 바로 이런 세대 게임과 비슷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자연만이 아니라 10대들에게 가야할 것들을 너무 많이 당겨쓰고 있는 일종의 세대 착취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10대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회를 기성세대가 독점하고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p. 62-63)


기성세대는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민주주의 타령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흐름을 만드는 것은 정치가 아니므로 몇 년이 더 지나더라도 현재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성장하면 잘 산다”는 기계적인 구호나 ‘분배와 성장’ 같은 담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세대 착취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10대를 희생시키면서 장기적으로 약화됨에 따라 지금의 세대 착취 현상은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10대들은 가장 착취하기 편하고 유혹하기 쉬운 경제적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p. 71)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 즉 한국경제의 ‘영광의 30년’을 많은 사람들이 좋았던 시절이라고 추억하고 회상하는 것은 그 시절에 국민소득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경제생활에 임한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기회와 다양한 패자부활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입체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했다.

(p. 140)


지금 한국의 우파와 좌파가 공히 동의하는 한 가지 원칙은 10대들에게 ‘독서’, 그것도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를 기다리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포드주의 해체의 전면화와 탈 포드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여기에 맞춰 준비된 소위 ‘지식경제 1세대’가 등장하는 경우이다. 탈 포드주의 시대에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가 시켜주는 표준화된 공부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독서인 셈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성세대가 10대에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10년간의 경험 속에서 이런 새로은 경쟁체제에서의 ‘사회적 자본’이무엇인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p.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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