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2

서머싯 몸 / 송무 / 민음사 / 526쪽

(2019. 9. 1. ~ 9.

「얼마간은 재미로 읽죠. 버릇이 그렇게 된 데다 읽지 않으면 마치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처럼 안정이 안 되거든요. 그리고 얼마간은 제 자신을 알고 싶어 읽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제 눈으로만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가끔은 제게 의미가 있는 어떤 구절, 아니면 어떤 어구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걸 만나게 되고, 그러면 그것은 제 일부가 되지요. 전 제게 도움이 되는 것만 책에서 얻어내요. 같은 걸 열 번을 읽는다 해도 더 이상은 얻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독자란 마치 아직 열리지 않은 꽃봉오리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읽거나 행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해요. 다만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들은 꽃잎처럼 열리자요. 하나씩 하나씩 말예요.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활짝 핀 꽃을 보게 되는 겁니다」

(P.23)

필립이 오래전에 내린 결론에 따르면, 형이상학이란 무엇보다 재미있지만 실생활에서의 효용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블랙스터블에서 깊은 사색 끝에 확립한 그 적절한 작은 준칙도 밀드레드에게 넋을 빼앗기고 있을 동안은 별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성이 구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삶에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필립은 그를 꼼짝 못하게 사로잡았던 격정, 그리고 밧줄로 땅바닥에 꽁꽁 묶인 듯 그 격정에 저항할 수 없었던 무력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책에서 지혜로운 말은 많이 읽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체험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 그것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고, 하지 않으면 어떤 피해가 따르는지 좀처럼 계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전 존재가 불가항력으로 떠밀려갔다. 존재의 일부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존재 전체가 움직였다. 그를 휘어잡았던 힘은 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성이 하는 일이라고는 온 영혼이 갈구 하고 있는 그것을 쟁취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뿐이었다.

머캘리스터〈너의 모든 행위가 만인의 보편적 행위 원리에 맞도록 행동하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定言命令)을 상기시켰다.

「제겐 전혀 의미 없는 말처럼 들려요」필립이 말했다.

「대단하군. 임마누엘 칸트의 말에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왜요? 남의 말이나 존경하는 건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 아녜요? 사람들은 남의 말을 너무 지나치게 존경해요. 칸트의 사상이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방식으로 생각한 것에 불과하죠」

「그래, 자넨 정언 명령을 어떻게 논박하려는가?」

(그들은 그것을 마치 제국의 운명이 걸린 문제처럼 이하기했다.)

「정언 명령은 사람이 마치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또한 이성이 가장 확실한 안내자인 듯이 말하고 있죠. 왜 이성의 명령이 감정의 명령보다 우월해야 되는 겁니까? 서로 다를 뿐이지요. 제 말은 그겁니다」

「자넨 정념의 노예로서 만족하나 보군」

「어쩔 수 없어 노예가 되는 것이지 만족하는 노예는 아니지요」필립은 웃었다.

(P.27)

필립은 이전에 자기 나름으로 확립했던 철학을 생각하며 일종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 철학은 그가 겪은 위기의 상황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상이 인생의 중대한 문제들에 정말 도움이 될까 의심스러웠다. 그 자신 어떤 낯선, 그러면서도 자기딴에 자리잡은 어떤 힘에 좌지우지되어져 온 것 같았다. 그 힘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쉴새없이 몰아갔던 그 지옥 바람과도 같이 그를 몰아갔던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사고하지만, 막상 행동의 순간이 닥치면 본능과 감정,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무력해지고 말았다. 마치 그는 환경과 성격이라는 두 개의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기계처럼 행동했다. 그의 이성은 방관자처럼 사실을 관찰할 뿐, 무력하여 개입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천상에서 인간의 행위를 내려다보지만 현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에피큐로스의 신들 같았다.

(P.130)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크론쇼는 냉큼 대답하지 않았다. 할말을 찾는 모양이었다.

​「때론 두렵네. 혼자 있을 때는」그는 필립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자네는 그걸 벌이라고 하겠나? 아닐세. 난 두려움을 꺼리지 않네. 어리석지 않나. 언제나 죽음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저 기독교의 말 말일세.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는다는 걸 잊는 것일세. 죽는다는 건 중요하지 않네, 현명한 인간이라면 죽음의 공포 따위에는 전혀 영향 받지 않아. 그야 나도 죽을 때에는 살려고 몸부림치겠지. 그리고 미칠 듯이 무섭겠지. 또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온 내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곤 못 배기겠지. 하지만 말일세, 난 그 후회를 인정하지 않네. 내 지금 비록 허약하고, 늙고, 병들어 가난하게 죽어가고 있지만 난 여전히 내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페르시아 융단을 기억하십니까?」 지난날의 저 여유 있는 미소가 크론쇼의 입가에 떠올랐다.

「자네가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서 내가 그 융단이 해답을 줄 거라고 했지. 그래, 해답을 찾아냈나?」

​ 「아뇨」 필립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해 주시지요」

​ 「아냐, 아닐세. 그럴 수 없네. 스스로 찾지 않는 해답은 의미가 없네」

(P.164)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크론쇼는 냉큼 대답하지 않았다. 할말을 찾는 모양이었다.

​「때론 두렵네. 혼자 있을 때는」그는 필립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자네는 그걸 벌이라고 하겠나? 아닐세. 난 두려움을 꺼리지 않네. 어리석지 않나. 언제나 죽음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저 기독교의 말 말일세.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는다는 걸 잊는 것일세. 죽는다는 건 중요하지 않네, 현명한 인간이라면 죽음의 공포 따위에는 전혀 영향 받지 않아. 그야 나도 죽을 때에는 살려고 몸부림치겠지. 그리고 미칠 듯이 무섭겠지. 또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온 내 인생을 뼈저리게 후회하지 않곤 못 배기겠지. 하지만 말일세, 난 그 후회를 인정하지 않네. 내 지금 비록 허약하고, 늙고, 병들어 가난하게 죽어가고 있지만 난 여전히 내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선생님께서 제게 주신 페르시아 융단을 기억하십니까?」 지난날의 저 여유 있는 미소가 크론쇼의 입가에 떠올랐다.

「자네가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서 내가 그 융단이 해답을 줄 거라고 했지. 그래, 해답을 찾아냈나?」

​ 「아뇨」 필립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해 주시지요」

​ 「아냐, 아닐세. 그럴 수 없네. 스스로 찾지 않는 해답은 의미가 없네」

(P.164)

노력과 결과는 전혀 맞아들지 않았다. 젊은 시절 빛나던 희망을 가졌던 대가는쓰라린 환멸뿐이었다. 고통과 병과 불행의 비중이 너무 무겁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인생을시작할 무렵의 그 드높았단 회망, 그의 육체에서 비롯했던 어쩔 수 없었던 한계, 친구다운 친구가 없어 느꼈던 외로움, 청년기 내내 견뎌내야 했던 애정의 결핍 등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늘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만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비참한 실패를 맛보아야 한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조건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또 어떤 사람들은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도 실패한다. 만사가 순전히 우연이란 말인가. 비(雨)는 착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내린다.그런데 인생에서는 어느 것에도 이유나 까닭이 없다.

크론쇼를 생각하며 필립은 그가 주었던 페르시아 융단을 떠 올렸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고 했었다. 갑자기 그 해답이 떠올랐다. 그는 픽 웃었다. 답을 알고 나니 수수께끼 문제를 받았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답을 알아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가 답을 듣고 나면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해답은 분명했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우주를 돌고 있는 별의 한 위성 지구 위에서, 이 유성의 역사의 한 부분을 이루는 조건에 영향을 받아 생물이 발생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탄생했듯이 그것은 다른 조건 아래에서는 끝장을 볼지도 모른다. 다른 생명체보다 하등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 그 인간도 창조의 절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물리적 반응으로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필립은 동방의 어떤 임금 얘기가 생각났다.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었던 이 임금은 한 현자를 시켜 오백 권의 책을 가져오게 했다. 나라 일로 바빴 던 왕은 책들을 간단히 요약해 오라고 했다. 이십 년 뒤, 현자가 돌아와 오십 권으로 줄인 역사책을 내어놓았다. 하지만 임금은 이제 너무 늙어 그 수많은 묵직한 책을 도저히 읽을 수 없어 그것을 다시 줄여오도록 명령했다. 또 이십 년이 흘렀다. 늙어 백발이 된 현자가 임금이 원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줄여 가지고 왔다. 하지만 임금은 병상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다. 한 권 의 책마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현자는 임금에게 사람의 역사를 단 한 출로 줄여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이러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사람의 삶에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난다거나 태어나지 않는다거나, 산다거나 죽는다거나 하는 것은 조금 도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삶도 무의미하고 죽음도 무의미하다. 필립은 벅찬 기쁨을 느꼈다. 소년 시절, 신(神)을 믿어야 한다는 무거운 신앙의 짐을 벗어버렸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이 었다. 이제 책임이라는 마지막 짐까지도 벗어버린 듯한 기분이 었다.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셈이었다. 자기 존 재의 무의미함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자기를 박해한다고만 생각했던 잔혹한 운명과 갑자기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세상도 잔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성공 역시 의미가 없다. 그는 우주의 역사에서 아주불은 순간, 지구의 표면을 점유하고 있는 바글대는 인간 집단 가운데 아주 하찮은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혼돈 속에서 허무의 비밀을 찾아냈으니 그는 전능자라 할 만했다. 필립의 벅찬 상상 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얽히고설키며 잇따라 떠올랐다. 그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펄쩍펄쩍 뛰며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지난 몇 달동안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 삶이여!」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아, 삶이여, 그대의 독침은 어디 있는가?」

(P.363)

삶에 아무런 뜻이 없음을 마치 수학 공리의 중명처럼 힘있게 입중해 준 상상의 분출과 함께 또 하나의 사상이 용솟음쳤다 크론쇼가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했던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해 주려 했던 듯하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 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고. 어떤 행위는 쓸모가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쯜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다.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또한 현상과 달빛을 함께 얽어 짤 수 있는 환상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 여겨지면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빼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알지 못할 샘에서 흘러나와 알지 못할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사람은 과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 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 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훌륭한 다른 무늬들도 있다. 행복이 없는 무늬,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무늬가 그것이다, 그것들에서도 한결 착잡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삶들은-헤이워드의 삶도 그중 하나이지만-우연이라는 눈먼 무관심에 의해 디자인이 완성되기도 전에 끊겨버린다. 그래서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위안이 편하다. 크론쇼와 같은 삶은 이해하기 어려운 무늬다. 그러한 삶도 그 나름대로 정당하 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관점이 바뀌고 옛 기준은 바뀌어야 한다. 필립은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미망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라는 척도로 삶을 잰다면 이제까지 그의 삶은 끔찍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척도로도 잴 수 있음을 알고 나니 절로 기운이 솟는 듯했다. 고통도 문제가 아니듯 행복도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행복 이나 고통은 모두 삶의 다른 세부적인 사건들과 함께 디자인을 정교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한순간 그는 삶의 우연사들을 넘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들은 전처럼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더 정교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 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품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P.366)

필립은 자기 자신을 참을 수 없었다. 인생을 양탄자의 무늬로 보게 된 자신의 사상을 떠올렸다. 따지고 보면 그가 겪은 불행이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권태이든 격정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무늬를 더 풍부하게 하니까. 그는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찾았다. 학생 시절, 학교 구내에서 대성당의 고딕식 건물을 바라 보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대성당 쪽으로 발길을 옮겨 구름 낀 하늘 아래 솟아 있는 거대한 잿빛 형상,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찬양과도 같이 높이 솟아 있는 중앙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연습장에서 방망이질을 하고 있었다. 다들 민첩하고 강하고 팔팔하다. 듣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외침과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청춘의 외침이 듣기를 강요한다. 눈앞의 아름다운 사물을 바라보는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P.419)

지난날의 기나긴 여정을 되돌아보며 필립은 자신의 과거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삶을 그처럼 힘들게 만들었던 불구도 받아들였다. 불구 때문에 성격이 비뚤어졌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불구 때문에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내면 성찰의 힘을 기를 수 있었음도 아울러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며, 예술과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삶의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괌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는 조롱과 멸시를 엄청나게 받아왔지만 그 조롱과 멸시는 그의 정신을 안으로 향하게 했고, 영원히그 향기를 잃지 않을 정신의 꽃들을 피워냈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 그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오히려 드문 일임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알아왔던 모든 사람이 몸에든 마음에든 어떤 결함을 생각해 보았다(그러고 보면 온 세상이 병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거기에 무슨 까닭이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은 불구이고 마음은 비뚤어진 사람들의 기나긴 행렬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육체에 병이 들어 심장이 허약하거나 폐가 허약했괴 어떤 사람들은 정신에 병이 들어 의지가 나약하거나 밤낮없이 술만 찾았다. 이 순간 필립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성자와 같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맹목적인 우연의 무력한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 필립은 그리피스의 배신을, 그에게 고통을 가져다준 밀드레드를 모두 용서할 수 있었다. 그네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한 가지 분별 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잘못은 참아내는 일뿐이다. 그리스도가 죽어가면서 했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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