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1

아케이도 준 / 이선희 / 인풀루엔셜

카멜 다우드 / 문예출판사 / 416쪽

(2019. 8. 13.)​

이른바 메가뱅크의 하나다. 도로에 본점이 있는 도고중양은행 간사이 본부의 점포는 약 50여 곳. 그중에서 오사카서부 지점은 오사카 본점과 우메다, 센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4대 지점의 하나로, 이른바 중핵 점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사노는 오랫동안 인사 분야에서 일해온 엘리트 은행원으로, 지점으로 나온 것은 18년 만이다. 지점장 경험을 잘 살리면 임원 자리가 코앞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실적을 올리려고 필사적이다. 대부분의 은행이 그렇듯이 도코중양은행도 합병으로 탄생한 은행으로, 자리에 비해 갑자기 행원 수가 많아졌다. 젊은 은행원 쪽에서 보면 예전에는 일류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보장되었던 과장 자리가 멀어지고, 순조롭게 은행원 길을 걸어온 아사노만 해도 부장 승진이 좁은 문이 되었다.

기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기회를 놓치면 잘해야 다른 지점의 지점장으로 수평 이동이고, 운이 나쁘면 관계사로 파견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아사노처럼 동기 중에서 선두로 달려온 자존심 높은 엘리트에게 출세의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굴욕임이 들림없다.

(P.35)

접수처에 은행 명함을 내밀자 “어서 오십시오”라는 말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라는 말도 없이 재빨리 접견실을 가리켰다. 은행 간판을 믿고 거드름을 피울 생각은 없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로서는 빈말이라도 친절하다고 할 수 없었다.

사내에 활기가 없고 긴장감이 부족하며 해이해진 느낌이 들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시시덕거리는 사람은 있어도 전회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전화벨이 귀에 거슬릴 만큼 계속 울려 퍼졌다. 손님인 한자와 일행이 근처를 지나가도 인사를 하기는커녕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한자와는 접견실로 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는 결국 사람의 모임이기 때문에, 사원의 모습을 보면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P.38)

부도란 당좌예금의 잔고 부족으로 기업이 할 수 없는상횡을 가리킨다.

참고로 당좌예금이란 기업이 주로 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개설 하는 계좌로, 발행한수표나 어음은 이 계좌의 잔고에서 빠져나 간다. 편리하긴 하지만 이자는 한 푼도 붙지 않는 게 특징이다.

부도어음이란 서비스 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상대 은행에게 내밀고 지급을 의했는데 “당좌예금의 결제 지금 부족으로 지급할 수 없다"라고 돌아온 어음을 말한다. '결제'라는 단어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쉽게 말하면 '지급'이란 말과 똑같다.​

경기가 나빠지면 어음을 결제할 수 없어서 어음 결제 기일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이 늘어난다. 연기에 이은 연기로 좀처럼 결제가 되지 않는 어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열 달 열흘짜리 어음은 임신이음, 210일짜리 어음은 태풍어음이라고 하고, 비행기 어음은 좀처럼 결제가 되지 않지만 가끔 결제되는 어음을 가리킨다.

다시 옆길로 새지만 일부러 '1차' 부도라고 횟수를 표기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어음 부도는2차까지 있기 때문이다. 1차부도에서는 제도상의 벌칙은 받지 않지만 두 번째 부도를 내면 자동적으로 어음교환소에서 거래정지처분을 받음과 동시에 "너는 믿을 수 없으니까 어음이나 수표를 몰수하겠다"라는 통지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난 또. 뭐라고. 부도라고 해도 어음과 수표를 발행할 수 없는 것뿐이짆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태는 기업 신뢰도에 치명타가 되고 “어음을 몰수당하는 녀석과는 절대로 거래한 수 없다!"는 반응으로 이어져서, 대부분 거래처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너에게 판 물건의 대금을 당장 현금으로 지급해!"라고 요구하면서 이른바 채권자라는 이름의 단체가 회사에 몰려오고, 현금으로 지급하지 못하면 상대가 아무리 사정해도 빨간 딱지를 덕지덕지 붙여서 압류한다. 험상궂게 생긴 형씨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때다. 그렇게 되면 회사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세상에서 말하는 '도산'이 되는 것이다.

(P.75)

“그 말은 곧 은행의 상식이 세상의 비상식이라는 거잖아!”

(P.134)

“과장님, 어떡하실 생각이세요? 위쪽에 보고하실 건가요?"

가키우치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아사노에게 보고하면 괜히 귀찮아질 수도 있다. 모든 책임을 한자와에게 떠넘기는 아사노의 행동도 미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회수할 전망이 있다면 이번에는 자기 공으로 돌릴 것임이 를림없다. 그런 녀석에게 섣불리 정보를 말해줄수는 없다.

“당분간 위쪽에는 비밀로 하고 우리끼리 상황을 살펴보는 게 좋겠어. 위쪽에 말하면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

가키우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동감입니다. 진정한 적은 항상 등 뒤에 있으니까요."

(P.151)

은행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오지만 태도가 나쁘다는 면에서 국세국 직원은 폭력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폭력배는 카운터 앞에서 큰소리로 고함을 치는 게 고작이지만, 이 녀석들은 은행 안에까지 우르르 밀고 들어와 국가 권력을 등에 지고 거들먹거린 끝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셔터 내리게 해줄까?” 라는 말로 협박한다. 잘못된 엘리트 의식과 일그러진 선민사상의 산물로, 한심한 자들이 권력을 가지면 이렇게 된다는 패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인기 TV 드라마에 나왔던 인정 많고 너그러운 조사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P.154)

대출의 핵심은 회수에 있다-이것도 역시 은행의 본모습이다. 돈은 부유한 자에게 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빌려주지 않는게 철칙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이것이 은행 대출의 근간이자 은행의 사고방식이다.

거품 경제가 붕괴되기 이전의 주거래은행은 기업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은행은 어디에도 없다.

호송선단 방식이란 이름하에 보호를 받았던 과거에는 은행이 어려움에 처하면 정부에서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래서 은행도 의리와 인정을 우선시해서 영세 중소기업에게도 돈을 빌려주었고, 산더미 같은 대손을 만들어도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은행이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과거의 산물이 되고, 적자가 나면 은행도 도태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하여 은행은 이제 중소기업을 도외줄 수 없게 되었다. 거래 기업을 지켜온 일본적 금융 관행인 주거래은행제도가 붕괴한 이는, 똑같은 금융 관행이었던 호송선단 방식이 붕괴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은행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거래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은행은 이제 특별한 조직이 아니라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하는 평범한 회사가 되어버렸다. 은행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거품 경제 시대까지였다. 어려울 때 도의주지 않는 은행은 실질적인 지위가 추락해서, 기업에게는 수많은 주변 기업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P.218)

“결국 문제가 생기면 승부는 정치력에서 갈리니까. 가네시로 녀석이 정치력이 조금 더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가지모토 선배도 착각을 했어. 불상사로 이어지긴 했지만 애초에 관리책임이 라기보다 부하직원의 악의였거든. 그걸 잘 아는 가네시로 지점장이 지켜줄 거라고 기대한 모양인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모든 책임은 부지점장에게 있다는 걸로 결론이 나왔지.”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 정말 어리석었군."

(P.248)

은행이라는 조직은 어디나 벌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 실적의 공은 다음 전근으로 사라지지만 벌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특별한 회로가 작동하는 조직이 바로 은행이다. 그 곳에 패자 부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가라앉은 것을 두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 토너먼트 방식이다. 그래서 한 번 가라앉 은 것은사라지는수빆에 없다. 그것이 은행 회로다.

(P.332)

은행이라는 곳은 인사가 전부다.

어느 곳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그 평가를 측정하는 잣대는 인사다.

하지만 인사가 항상 공정하니곤 할 수 없다. 출세하는 자가 반드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어디나 마찬가지고, 그것은 도쿄중앙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한자와는 은행이라는 조직에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였다. 고색창연연한 관료체질.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위장할 뿐, 근본적인 개혁은 전혀 없을 만큼 팽배한 무사안일주의. 만연 히는 보수적인 체질 탓에 젓가락 드는 자세까지 집착하는 유치 원 같은 관리체제. 특색 있는 경영방침을 낼 수 없는 무능한 임원 들. 대출에 소극적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세상 사람이 수긍할 수 있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 오만한 체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한심한 조직이다.

그래서 내가 바뀌주겠다 - 한자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영업 2부 차장직은 그러기 위한 발사대로써 더할 나위가 없는 자리다. 수단이 어떻든 간에 출세하지 않으면 이보다 시시한 조직은 없다. 그것이 은행이다.

예전에 산업중앙은행의 입사시험을 봤을 때, 그는 멋진 꿈을 꾸었다. 이 굉장한 조직을 자기 손으로 움직여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거품 경제의 광기가 사라지면서 은행을 아름답게 치장했던 수많은 도금이 하나, 또 하나 벗겨졌다. 그리고 지금 은행은 처참하리만큼 볼품없는 납덩이 성(城)으로 변했다.

은행이 특별한 존재였던 것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은행은 세상에 존재히는 수많은 업종 중 하니에 불과하다. 볼품 없이 추락한 은행이라는 조직에서 예전의 영광을 떠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반대로 이 조직을 자신의 손으로 바뀌보고 싶다는 한자와의 생각은 오히려 강해졌다.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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