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 살인 사건

카멜 다우드 / 조현실 / 문예춮판사 / 208쪽

(2019. 8. 3.)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

엄마는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지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걸세. 반대로 난 같은 얘기를 너무 많이 곱씹은 탓인지 이젠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군.

그 일이 있은 지 반세기도 더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 사건은 분명히 일어났었고 그에 관한 얘기도 많았어. 아직까 지도 사람들은 그 얘기를 하고 있지만, 단 한 명의 망자(亡者) 만을 떠올린다네. 뻔뻔하지 않나. 죽은 사람은 엄연히 둘이었 는데 말이야. 그래, 둘이라니까. 한 명을 빼먹은 이유가 뭐냐 고? 그야, 첫 번째 사람은 얘기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지. 그 것도 얼마나 잘했던지, 자기의 죄를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네. 반대로 두 번째 사람은 가난한 무식쟁이였지. 신이 그를 만든 것되 단지 총알받이가 되어 한낱 먼지로 되돌아가게 하 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니까. 이름 하나 가질 여유조차 없었던 익명의 존재였던 거야.

한마디로 말해주지. 두 번째 망자, 피살당한 그자가 바로 내 형이라네. 형의 흔적이라고는 남아 있는 게 없어. 형을 대 신해 여기 이 바에 죽치고 앉아 있는 나 말고는. 결코 아무도 베풀어주지 않을 조의를 기다리며 이렇게 주절거리고 있는 내 꼴 좀 보게. 자네가 들으면 웃겠지만, 이건 어느 정도 내 사 명이기도 하다네. 객석이 비어가는 동안에도 무대 뒤의 침묵 속에 감춰진 내막을 떠벌리는 것 말일세. 내가 이 언어를 배워 서 말하고 쓸 줄 알게 된 것도 그런 목적에서였지. 그러니까, 죽은 자를 대신해서 얘기를 하려는 거야. 형이 하려던 얘기 를 어느 정도라도 계속해보려는 거지. 살인자는 유명 인사가 되었고, 그의 얘기는 너무 잘 써져서 나로선 감히 흉내 낼 엄 두도 못 내겠더군. 그건 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언어였 던 거야. 이제 나도, 이 나라가 독립한 이후로 흔히 볼 수 있었 던 짓을 한번 저질러 볼까 하네. 내 동포들이 프랑스인이 살던 옛집의 돌들을 하나하나 가져다 자기만의 집을 새로 지었듯 이, 나도 살인자가 썼던 단어들과 표현들을 가져다

(P.7)

자네를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읽은 것처럼, 나도 그가 그 사건을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고 싶어 읽어 봤네. 앞부분만 읽고도 금방 알겠더군. 그는 남자의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내 형은사건의 이름으로만 불리고 있었어. 어 떤 이가 자기가 부리는 흑인을 '금요일 '이라고 부른 것처럼 (영 국 작가 다니엘 디포의 소설《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혹인 '프라이데 이(Friday)'* 일컬음) 그도 형을 '오후 2시'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거야. 한 주의 요일 대신 하루 중의 한순간을 선택言는 거지. 오후 2시, 좋지. 아랍어로는주드. 들, 쌍, 형과 나, 쌍둥이.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이 볼 땐 형과 나는 어떤 면에 서 의심할 바 없는 쌍등이라고도 할수 있다네. 내 형 '아랍인' 은 두 시간밖에 못 살고 스러져버린 덧없는 존재였지만, 장례 를 치르고 나서도 70년 동안 계속해서 죽어야 했지. 내 형 주 드는 유리관 속에 들어 있는 셈이야. 살해당하고 난 뒤에도 사 람들은 줄곧 형에게 바람과 시곗바늘 두 개로 이름을 붙여췄 고, 형은 자신의 죽음을 끊임없이 재연해야 했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던 한 프랑스 남자, 자기 등에 짊어진 나머지 세상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던 그 작자가 쏜 총 알을 맞고 죽는 장면을 계속해서 보여줘야만 했어.

(P.11)

예전에 나는, 자네나 자네 나라 사람들은 절대로 제기하지 않았던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본 적이 있다네. 그거야말로 수수께끼를 푸는 첫 번째 열쇠인 건 사실이니까. 그건 바로 뫼르소의 어머니가 묻힌 무덤은 어디 있을까, 하는 거지. 그래, 하주트의 어던가에 있겠지, 그가 말한 것처럼. 그런데 정확히 어디냐고. 거기 가본 사람이 있긴 한 건가? 책에 나오는 양로원에 가본 사람이 있을까? 묘비에 새겨진 비문을 집게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본 사람이 있을 까? 내가 볼 땐 아무도 없어. 나도 그 무덤을 찾아봤지만 끝내 발견할 수가 없었다네. 마을에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무덤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살인자 어머니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어. 그래, 물론 설명이 가능하긴 해. 해방이 되면서 우리는 프랑스인의 묘지들을 노렸고, 아이들이 땅에서 파낸 해골을 공처럼 갖고 노는 것도 자주 봤었지. 우리에게는 마치 전통처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프랑스인 들은 도망칠 때 우리에게 세 가지를 남겨놓는다는 거였어. 뼈, 도로, 그리고 단어들-또는 죽은 자들〔'단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mot(모)와 '죽은 자'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mort(모르)는 철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런데도 그의 어머니 무덤은 찾지 못했어. 뫼르소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렇게 본다면 그의 전설적인 무관심과 냉혹함도 이해가 되지. 그건 태양과 무화과나무로 덮인 이 나라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어쩌면 그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믿는 그 사람이 아닌지도 몰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지껄이느냐고 하겠지만, 내 의심엔 근거가 있다네. 뫼르소가 어머니 장례식을 그토록 세세하게 묘사한 걸 보면, 단순히 기록하는 게 아니라 우화를 지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 않나? 고백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 이뤼낸 재구성이라고나 할까. 기억이 아니라 너무도 완벽한 알리바이야. 내가 지금 얘기 하는 건 중명해낸 수만 있다면, 다시 말해 뫼르소가 자기 어머 니 장례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 수만 있다면, 자네도 내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한 텐데. 몇 년 지난 후에 하주트의 토박이들에게 불어보고 나서 짐작하게 된 건데, 그 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없거니와 양로원에서 세상을 뜬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땡볕 아래에서 기독교도들의 장례 행렬이 지나기는 걸 본 사람도 없더라고. 이 얘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줄 유일한 어머니는 바로 내 엄 마야. 지금도 엄마는 우리 집의 레몬나무 주변을 비로 쓸고 있는중이지.

(P.50)

한 프랑스 남자가 황당한 바닷가에 누워 있던 아랍 남자 한 명을 죽여. 1942년 여름, 오후 2시의 일이야. 총알 이 다섯 발 발사되지. 연이어 재판이 열리고 살인자는 자기 어머니 장례를 제대로 제대로 기르지도 않고 어머니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하게 얘기했다는 죄로 사형에 처해져. 단순히 보자면 살인이 일어난 건 태양 때문이거나 아니면 순전한 한가함 때문이지. 뫼르소는 어떤 창녀에게 양심을 품은 레몽이라는 포주의 부탁으로 협박 편지를 한 통 써주게 되는데, 그 일이 점차 꼬이면서 결국 살인으로 끝난 거야. 아랍인이 창녀를 위해 복수하려 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름 죽인 거지, 아니 어쩌면 그가 감히 건방지게 낮잠을 자려 했다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자네 책을 이렇게 요약하는 게 거슬리지는 않나? 하지만 이게 바로 진실인 결 어쩌겠나, 나머지는 다 작가의 재주로 덧붙인 장식인 뿐인걸, 그 사건이 난 이래로, 죽은 아랍인을, 그의 가족을, 그의 동포들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살인자는 출감하면서 책을 한 권 쓰는데 그게 아주 유명해 지지. 그는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사제에 대해, 그리고 부조리에 대해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얘기했어, 그 책 내용은 어떤 식으로 이해하려 해봐도 말이 안 돼, 그건 법죄 이야기이긴 하지만 정작 아랍인은 살해되있다고도 불 수가 없는 게 손가락 끝으로 하루살이 죽이듯 그렇게 하찮게 죽여버렸거든. 아랍인이야말로 두 번째로 중요한 등장인물인데도 이름도, 얼굴도, 말도 없어. 이쯤 되면 대학생 양반, 자네도 감이 오지? 이 이야기야말로 말이 안 된다는 말일세! 이건 새빨간 거짓이야. 한 잔 더 들게. 내가 사지. 이 책에서 뫼르소는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종말을 그리고 있다네. 소유라는 것도 부질없고, 결혼도 사실상 필요 없고, 결혼식도 건성으로 치르고, 취향이랄 것도 별 거 없는 그런 세상이지. 사람들은 껍데기만 남은 채 텅 빈 가방 위에 앉아 병들어 썩어가는 개들에게나 집착하고, 두 문장 이상을 말할 능력도 없고, 네 단어 이상을 동시에 발음하지도 못하지. 자동인형들! 그래, 그거야. 이제야 그 단어가 생각나는군. 작은 프랑스 여인도 생각나네. 살인자 작가가 어느 날 레스토랑 홀에서 관찰하며 아주 잘 묘사해놓은 여자 말일세. 기계적인 동작, 빛나는 눈, 강박적인 행동, 덧셈의 고역, 지동인형 같은 몸짓. 하주트 번화가에 있는 시계도 또 생 각나는군. 추시계와 프랑스 여인은 꼭 쌍등이 같아. 시계의 기계장치도 독립하기 몇 년 전부터 이미 고장이 나 있었던 것 같던데.

(P.79)

당연히 그날 저녁 당장, 나는 그 망할 놈의 책을 펴 들었네. 천천히 읽어갔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달려 들어가 게 되더군. 모욕당하는 느낌과 동시에 그 안에 내 모습이 드러나 있다는 느낌도 받았지. 난 신의 책을 읽듯 밤을 꼬박 새서 읽었네. 가슴이 뛰면서 숨이 막힐 듯했어. 그건 진정한 충격 이었어. 거기엔 모든 게 다 있더라고, 핵심적인 것만 빼고. 무 싸의 이름! 그건 어디에도 없었어. 나는 '아랍인'이라는 단어 를 세고 또 세어봤어. 그 말은 스물다섯 번이나 나왔지만 이름 은 찾아볼 수 없었어. 전혀 없었어. 소금, 눈부심, 거룩한 사명 을 짊어진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만이 있었을 뿐이야. 뫼르 소의 책은 무싸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에겐 이름이 없 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게 없었어. 반대로 살인 자의 영혼에 대해선, 마치 내가 그의 천사이기라도 한 듯 상세 하게 보여주더라고. 그 책에선 기억들이 괴상하게 왜곡돼 있 있어. 해변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살인이 일어난 순간에 예사 롭지 않게 밝았던 햇빛, 다시는 볼 수 없었던 낡은 방갈로, 재 판 날들과 감방에서 지낸 날들 따위까지도. 엄마와 내가 무싸의 시체를 찾아 알제의 길거리를 해매고 다니는 동안 그는 그러고 있었다니. 그 작자, 자네가 우러르는 그 작가는 내게서 내 쌍둥이 주드, 내 초상, 그리고 내 삶의 세세한 단편들뿐 아 니라 내가 받은 심문의 기억까지도 훔쳐간 것 같더군. 나는 밤 을 거의 꼬박 새며 한 낱말, 한 낱말, 꼼꼼하게 읽어나갔지. 그 건 완벽한 헛소리였어. 내가 그 책에서 찾으려 한건 형의 적이었는데, 정작 발견한 건 내 반영이었지. 내가 살인자와 똑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마침내 책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렀어. “(......) 내 처형 날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와서 중오의 함성으로 날 맞아주기를 바리는 일만 남았다.” 맙소사, 이거 야말로 내가 얼마나 바랐던 일이었는지 아나! 분명히 구경꾼은 많았었지만 그건 그의 죄 때문이었지 재판을 구경하려는 건 아니었어. 게다가 구경꾼들이란 게 어떤 자들이었나! 열성 팬들, 우상숭배자들! 그 숭배지들의 무리 속에선 중오의 함성 따위는 전혀 없었지. 이 마지막 문장은 나를 뒤흔들어놓았어. 걸작은 걸작이지. 내 영혼을 비추는 거울.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내가 알라(이슬람교의 유일신)와 권태 사이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를 거울을 들이대고 보여주는 것 같았어.

​(P.179)

나보고 신을 믿느냐고 묻는 건가? 나 참, 기가 막히는군!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사람들은 왜 신의 존재에 관해 의문이 들 때마다 인간을 향해 돌아서서 대답을 기다리는지 모르겠어. 신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직접! 종종 나는 내가 정말로 그 미나레트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네. 사람들은 꼭꼭 잠가놓은 문을 부술 듯 두들기며 내가 죽어야 한다고 외쳐대지. 그들은 문 바로 뒤에서 분노에 떨고 있어. 그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말해봐, 들리느냐고, 난 들리는데, 곧 문이 열린 거야, 그럼 나는? 그럼 난 뭐라 고 부르짖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이 한마디만 하겠지. "여기엔 아무도 없어! 원래부터 아무도 없었어! 모스크는 비어 있어. 미나레트도 비어 있어. 여긴 빈 곳이야!” 분명해. 내가 처형당하는 날엔 구경꾼들이 많을 테고, 그들은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 거야. 뫼르소.는 처음부터 옳았던 건지도 몰 라. 정말로 이 에기에는 살아남은 자가 아무도 없거든. 모두가 단번에, 한 방에, 죽어버린 거지.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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