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 흐름을 꿰뚫어 보는 경제독해 (2019-03)

흐름을 꿰뚫어 보는 경제독해

세일러 / 위즈덤하우스 / 396쪽

(2019. 2. 10.)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 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거의 100%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비극이자 코미디 같은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998년에 외환부도를 맞은 이유 중에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는 발권국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배우는 경제학 내용 중에는 '외환관리'는 것이 없거나 소홀하게 다뤄집니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 유학을 한 우리 경제관료들과 경제 학자들의 머릿속에는 외환관리가 중요하다는 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1998년 의환부도가 나기 직전까지도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문제없다'는 말만 강조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외환이 부족 해서 외환부도가 나게 생겼는데, 경제관료들의 머릿속에는 '외환관리'에 대한 생각이 별로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펀더멘털만 생각하는 것이지요.

미국 경제학자는 펀더멜털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들로서는 외환부도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의 경제학자와 경제관료들이 우리 경제의 현실을 보지못하고 미국식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물론 1998년의 외환부도가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부분도 분명 영향을 미친 한 가지 사유였습니다. 정말 비극이자 코미디 같은 상황이지요.

어떤 문제에서건 한쪽 방향으로의 지나친 쏠림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독창적인 주장과 성과를 내고 있는 장하준 (영국 유학), 우석훈(프랑스 유학) 등의 경제학자들이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P.77)

경제 혼란기에는 어떤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취하기가 참 어렵습 니다. 일단 예측은 신의 영역이고, 인간은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대처하려 노력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섣부른 예측과 이를 바탕으로 한 행동은 금물입니다. 오히려 예측이 들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 판단을 내리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럼 예측이 들릴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제가 일 전에 중요한 미팅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늦을 것 같아서 상당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미팅이라 늦으면 체면이 상당히 손상되고 향후 관계에도 타격이 옵니다.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면 시간 내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의 하나 못 잡는 일이 생기면 조금 늦는 정도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늦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가 중간에 내려 택시를 못 잡게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봤습니다. 한 10%나 될까요?

하지만 저는 결국 그냥 지하철로 가기로 했습니다. 가능성은 10% 밖에 안 되지만 만의 하나 그 일이 발생해서 결정적으로 늦어버린다면 그때는 체면 손상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 자체를 그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10%의 가능성밖에 안 되는 일이 발생할까 두려워서 100% 확실하게 '작은 손해'를 감수히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건 일종의 보험과 같은 원리라고 봅니다.

(P.82)

경제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하도록 요구합니다. '첨단' 전문가들이 '첨단' 상품, '첨단' 기술을 얘기하더라도 그대로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첨단 전문가들과 대등한 지식 수준을 단시간 내에 쌓을 수는 없습니다. 또 그들과 대등한 지식 수준을 단시간 내에 쌓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겠다고 들면 실수하기도 쉽습니다. 이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이치를 따져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P.87)

괴테의 희곡《파우스트》는 지폐가 등장하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재정이 거덜나버려 걱정하는 황제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돈을 바닥에서 긁어모을 수는 없으나 지혜는 아주 깊이 묻혀 있는 재보도 파낼 수 있습니다. 재능 있는 사람의 본성과 정신의 힘은 이를 능히 캐낼 수 있습니다. 황제께서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모든 원소가 폐하의 존엄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합니다. 앞으로 이 종이 한 장은 일천 크로네에 해당한다고 포고령을 내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처음에 그건 불법행위이고 얼토당토않은 사기극이 아니냐고 노발 대발하던 황제는, 사람들이 지폐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은 원치도 않게 될 것이라고 속삭이는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고 맙니다. 지폐가 발행되어 왕국에 뿌려지니 일순간에 텅 비어버렸던 국고가 채워지고 모든 영토에 보석과 황금, 지폐가 충만한 듯이 보였습니다.

(P.136)

애덤 스미스가 쓴 이 한 권의 책으로 전 세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산업자본가 세력은 이제 자신들만의 대항논리와 사상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는 중상주의 사상체계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중상주의와 기득권세력을 아울러 '구체제'라고 몰아부칩니다.

이제 상업자본가들과 절대왕정, 교회가 주도하던 '중상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산업자본가들과 새로운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새로운 세상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교회조차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의 연관성을 말하면서 산업자본가들의 논리에 발을 맞추게 됩니다.

이제 사회에는 새로운 기득권세력이 굳건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애덤 스미스를 '스승' 이라 하고《국부론》을 금과옥조로 여겼지만 애써 한 가지 사실은 모른 체합니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실패'에 대해 얘기합니다.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조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부분에서 시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완전경쟁'을 얘기하려면 출발선이 동일해야 한다. 출발선이 동일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국가의 배려가 필요하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다시는 동일한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배려도 필요하다."

애덤 스미스는《국부론》안에서 '시장의 실패'와 '국가개입의 필요성',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자본가 세력들은 이 부분은 애써 모른 체했습니다. 그 결괴는 어땠을까요? 그 결과 '약탈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P.209)

18세기에 산업자본가들이 역사의 전면에 새로이 등장한 신흥세력이던 시절, 그들은 중상주의를 배경으로 한 기득권 세력의 논리와 사상체계, 이를 기반으로 한 탄압에 대해 불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 산업자본가들이 기득권세력이 된 것 입니다.

비합리적및가람은 자신에 맞추어 세상을 바꾸려들고, 합리적인 사 람은 세상에 맞추어 자신을 바꾼다고 합니다.

도저히 당시의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비합리적인 한 사내가 대영제국 도서관에서 필사적으로 집필 작업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해서 책 한 권 살 돈도 없었고, 도서관에서 무료로 책을 볼 수 없었다면 집필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1867년,

《자본론》이 출간됩니다. 이제 노동자 그룹은 기득권세력에 맞설 수 있는 대항논리와 자신들만의 사상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후 세상에는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태어납니다. '자본주의 체제' 에 대립하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P.211)

《벌거숭이 임금님》이리는 동화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동화 속의 어른들은 정말로 임금님이 '투명'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라고요. 병사들이 무서워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임금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갖는 어른들의 선입견이 눈을 가렸습니다. '정말 투명 옷을 입은 걸 거야.' '설마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이 눈을 가렸던 것입니다.

아이에게만 객관적인 실체가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아이에겐 임금님이란 존재가 그다지 선입견을 심어주지 못했으니까요.

혜안(慧眼)이라는 것은 결국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봐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는 것, 맑은 눈으로 본다는 것,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히는데, 손가락만 보기 쉽습니다. 자신의 희망이 관찰에 반영되어 시야를 흐립니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눈을 가립니다.

전문가는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신의 전문지식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작동하던 전문지식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비상시가 되면, 전문가는 일반인들보다 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가 쉽습니다(어떤 이유로 인해 사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섣불리 믿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근본원리를 익히고 충분히 이해하고 나서 그 다음에는 이치에 근거해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근본원리를 붙들고 자기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천변만화 (千變萬化)하는 혼란 속을 헤쳐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게 통념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통념(通念)이란 보 통 때의 생각입니다. 보통 때는 제대로 작동되던 생각입니다. 하지만 보통 때가 아닌 위기가 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통념을 근본원리이자 이치라고 착각하시면 안 됩니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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