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토 백작 3

알렉상드르 뒤마 / 오증자 / 민음사 / 474쪽

(2019.12.20.)

마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 사나이는 거의 실례가 될 정도로 집의 모습이며 정원이며 그곳을 왔다갔다하는 하인들의 제복을 뚫어져라 바라다보고 있었다. 사나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재기에 찬 눈이 아니라 교활한 눈이었다. 입술은 하도 얇아서, 입 밖으로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입 안으로 말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넓게 툭 튀어 나은 광대뼈는 영락없이 교활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마는 움푹 들어갔고 상스러운 큰 귀를 훨씬 지나서 뒤통수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거창한 머리 모양이며 셔츠에 달려 있는 커다란 다이아몬드라든가, 저고리 단추 구멍과 구멍 사이로 늘인 약장 때문에 속인들의 눈엔 신분이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인상학자들이 본다면 누구든지 어딘지 불쾌하기 짝이 없어질 그런 얼굴이었다.

(P.86)

「알겠습니다」하고 그는 말했다.「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뛰어난 사람이라고 떠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당신은 매사를, 인간에게서 시작해서 인간에게로 귀의한다는, 사회에 있어서 물질적이고 비속한 면만 보시는군요. 말하자면, 당신은 인간의 지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보다 좁고 보다 국한된 견지에서만 사물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 설명을 좀 해주실까요?」빌포르는 점점 더 놀라서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분명히 모르겠는데요」

「제 얘기는 이런 겁니다. 당신은 각국 사회의 조직을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기계의 움직임만 보고 계신 것이지, 그 기계를 움직이는 귀한 직공은 보지 못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당신은 자신의 눈앞이나 주위에, 대신이나 왕이 서명한 사령장을 가진 지위 있는 사람들만 보고 계십니다. 그러한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대신이나 왕 위에 하느님이 그런 지위 대신 어떤 사명을 내려주신 사람들이 있어되 당신의 근시안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약하고 불완전한 기관밖 엔 갖지 못한 인간에게는 그것도 당연한 결과겠지요. 토비(장님이 된 후에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광명을 찾았다는 유태인 -옮긴이)는 시력을 돌려주러 온 천사를 그냥 예사 청년인 줄로 알았지요.

아티라(5세기경의 유명한 정복자-옮긴이)를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들을 전멸시킬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그 냥 예사 다른 정복자 중의 하나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입으로 하늘의 사명을 띠고 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그 사실을 몰랐더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토비는〈나는 하늘의 천사다〉하고, 아티라는〈나는 하느님이 만드신 망치〉라는 말을 해야만 했던 겁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신성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니까요」

「그럼」하고 점점 정신이 얼떨떨해진 빌포르는 지금 자기와 얘기하는 사람이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거나 혹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물었다.「당신은 자신이, 지금 인용한 그 이상한 인간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물론이죠」하고 백작은 냉담하게 말했다.

「실례했습니다」빌포르는 아연해서 말을 이었다.「실은, 제가 이렇게 지식이라든가 지혜가 상식을 훨씬 넘어선 위대한 학자의 집에 오게 된 줄은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현대 문명에 묻혀버린 불쌍한 인간들에게는, 당신처럼 거대한 재산을 가진 분이, 이건 소문입니다만, 세상의 상식으로 보아, 그렇게 부유한 분이 사회에 관한 고찰이라든가 철학적인 공상에 몰두해서 시간을 닝비한다는 것은, 확실히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일은 이 세상의 부귀에서 밀려난 인간들이 그저 기분이나 가라앉히려고 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으니 까요」

「그래요?」 하고 백작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의 그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때까지는, 그러한 특수한 예를 본 일조차도 없으셨단 말입니까? 정밀하고 명확한 것을 필요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면서, 지금 눈 앞에 있는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를 대번에 알아볼 만한 안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셨던 가요? 사법관이란, 법률의 정확한 적용자라든가 복잡한 소송의 교원한 해석자이기 전에, 우선 인성을 잴 줄 아는 하나의 저울이나 또는 다소간에 늘 화합물이 생기는 것을 면치 못하는 개개인의 영혼을 다룰 줄 아는 시금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하고 빌포르는 말했다.「놀랐는데요. 그런 얘기를 제게 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그건 당신이 밤낮 상식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갇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한, 또는 예외적인 인물이 무수히 모인 고도의 사회로 뛰어오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133)

「그렇습니다. 제가 그러한 특별한 인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지금의 나 같은 지위에서 그들을 본 일은 없었습니다. 왕들의 영토는 산이나 강으로, 또는 다양 한 관습으로 인해서, 혹은 언어의 변화에 의해 각각 그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제 왕국은 이 세계만큼이나 넓지요. 왜냐하면 저는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요, 프랑스 사람도 아니요, 인도 사람도 아니요, 스페인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의 세계인입니다. 어느 나라도 제가 태어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제가 어느 나라에서 죽게 될 지 아십니다. 저는 모든 나라의 풍습을 받아들이고, 모든 나라의 언어를 씁니다. 당신은 제가 완벽한 프랑스어를 말하고 있으니, 제가 프랑스 사람인 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데리고 있는 누비아인 알리는, 제가 아라비아 사람인 줄 알고 있거 든요. 제 집사인 베르투치오는 저를 로마 사람인 줄 알고 있습니다. 제 노예인 하이데는 저를 그리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시겠지요? 그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니며, 그 어느 나라 정부의 보호도 요구하지 않고, 제 동포라는 인간은 하나도 갖지 않은 제게, 저 권력 있는 사람들이 갖지 않으면 안 될 거리낌이라든가, 또는 약한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장애 같은 것들이,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겁니다 제겐 적이라곤 단지 두 가지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저를 정복한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 적이란 <거리>와 <시간>이죠. 그런데 제삼의 적이, 그놈이 가장 무서운데, 그것은 언젠가는 죽지 않으면 안 될 인간의 숙명이 있스니다. 제가 걸어가는 도정에, 제가 지향하는 목표를 채 달성하기도 전에 제 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죠. 그 외의 모든 것은 예견할 수 있었지요. 인간이 운명이라 부르는 것, 이를테면 파멸이라든가 변화라든가, 우연한 사건 같은 것들을 저는 전부 예측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것이 저한테도 일어난다 하더라도, 저를 거꾸러 뜨리진 못하지요. 제가 죽 지 않는 한은, 저는 늘 지금의 저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당신이 아직 왕한테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들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왜냐하면 왕들은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두려워하니까요. 이렇게 가소로운 사회 조직에서야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언제 내가 검사한테 걸려들게 될지도 므르지 않나?>하고 말입니다.

​(P.135)

「빨간 요람 속에 태어나서(왕자를 뜻함) 바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하고 엠마뉘엘이 말했다.

「산다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나운 바다에 떠도는 배에 목숨을 내맡겨보지 못한 사람은, 맑은 하늘의 진가를 모릅니다」

백작은 일어섰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내면 그 떨림 때문에 지금 자기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감정의 동요가 드러날까 봐, 아무 대답도 않고 방안을 뚜벅뚜벅 걸었다.

「저희들이 너무 열을 내서 얘기하는게 우습지요?」하고 막 시밀리앙은 백작을 눈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아닙니다」백작은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한 손으로는 두근 거리는 가슴을 꾹 누르괴 또 한 손으로는 청년에게 수정으로 만든 구형(球型) 덮개를 가리켰다. 그 밑에는 비단 지갑 하나가 검은 비로드 쿠션에 소중하게 놓여 있었다.

「사실은, 저 지갑이 웬 걸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편지 같은 것하고, 훌륭한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데요」 막시밀리양은 엄숙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저희 집 가보 중에서 제일 귀중한 겁니다」

「과연 굉장히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군요」 하고 백작은 대답했다.

「오빠는 그게 10만 프랑의 값이 나가는데도, 저 다이아몬드의 값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않는답니다. 저 지갑 속에 있는 것이, 아까 말씀드린 그 천사의 유물이라고만 말씀드리고 싶은거지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러나 부인, 그렇다고 여쭈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백작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무례한 말씀을 드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만」

「무례하시다뇨? 원,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오히려 그 말씀을 드릴 기회를 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만약 저 지갑이 회상을 일으켜주는 그 훌륭한 일을 비밀로 한다면 그걸 저렇게 남의 눈에 뜨이게 놓아두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저 지갑을 세상에 광고를 해서 누군지 모를 그 친절한 분이 우리 앞에 나타나 주셨으면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백작은 목멘 듯한 소리로 말했다.

「이것은」하고 막시밀리양은 수정 케이스를 들어, 정중하게 비단 지갑에 키스하며 말했다.「이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고, 우리를 파멸에서 구해 내신 분의 손에 닿았던 것입니다 그분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가난과 비탄에 싸여 있던 비참한 우리들이 오늘날 사람들로부터 행복하다는 소리를 듣진 못했 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막시밀리앙은 그 지갑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백작에게 보이며 말했다.「이 편지는 바로 제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절망적인 결심을 하시던 날, 그 분이 써 보내신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다이아몬드도 그 친절 한 분이 제 누이의 지참금으로 쓰라고 보내준 겁니다」

(P.161)

「인간의 사고의 나쁜 면은, 저 장 자크 루소가 말한 역설 속에 잘 요약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오천 리 밖에 있는 중국 관리 같으면, 손가락 끝으 로도 죽여버릴 수 있다〉(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쯤은 인정에 구애될 것도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릴 수 있다는 뜻-옮긴이)는 말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바로 그런 짓을 하느라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혜란 것도 그러한 것을 생각 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동족의 가슴에 별안간 칼을 꽂으러 간다든가, 또는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방금 얘기한 것같이 비소를 먹이는 놈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은 머리가 돌았거나, 바보일 것 입니다. 그런 짓을 하려면, 피가 36도가 되고, 맥박은 90으로 뛰고, 정신이 정상 상태를 떠나야만 합니다. 그런데 언어학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의 언어를 완화시킨 동의어로 바꾸어서, 비열한 살인을 하는 대신에 단지 한 개의 장해물만 제거한다고 해봅시다. 말하자면 순수하게 부인의 앞길의 방해물을 제거한다고 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의 충격을 받거나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상대방에게 어떤 괴로움도 연상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광경을 보고 자기가 도살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지도 않게 될 경우라면 어떻겠습니까. 피도 흘리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고, 별로 괴롭히지도 않고, 곧 일이 일어나리라는 두려움이나 위험도 없이, 대번에 일을 당한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사회의 안녕을 흐려놓지 말라>고 하는 인간 사회의 법의 제재에서 피할 수 있게 되는 셈이죠. 동양인들은 이렇게 해서 척척 일을 해내는 겁니다. 신중하고 냉정한사 람들이니까요. 중대한 계획일 경우에는 시간의 문제 같은 건 거의 염두에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심이라는 게 남아 있지 않습니까」하고 부인은 목소리를 떨며 억지로 참는 듯,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습니다」하고 백작은 말했다.「다행히 거기엔 양심이라는 게 있지요. 그게 없으면 퍽 불행합니다. 좀 거친 일을 하고 난 후에는 늘 그 양심이라는 것이 손을 뻗칩니다. 즉 양심이란 놈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 그를 듯한 구실을 찾아내지요. 그러나 그것을 그럴 듯하다고 정의내리는 것도 우리 자신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론이 아무리 그럴 듯해서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는 하지만, 그저 그 정도일 뿐이고 목숨까지 보장하기에는 좀 불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 맥베스 부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무어라고 하든 간에, 자기 남편 대신에 아들에게 왕위를 주려고 한 그 부인도 양심이라는 게 있었으리라 봅니다. 아! 모성애란 확실히 하나의 커다란 미덕입니다. 실로 강력한 동기 입니다. 따라서 많은 경우, 단지 그것 때문만으로 용서를 받습니다. 덩컨을 죽인 후, 만약 맥베스 부인에게 양심이 없었다면, 그녀는 퍽 불행했었을 겁니다」빌포르 부인은 백작이 그 독특하고도 노골적인 아이러니로 이야기하는 이 무서운 교훈과 무시무시한 역설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P.207)

「당신은 자신의 결벽성 때문에 일을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하고 당글라르 부인이 말했다. 부인의 그 아름다운 눈에 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말씀하신 그 과거의 흔적이란 정열적인 젊은이들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정열의 밑바닥이라고 할까, 쾌락 후에는 으레 후회가 따르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의 샘인 복음서에는 우리 불쌍한 여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지은 여자나 간음한 여자에게 이런 고마운 비유를 일러주 는 거예요. 그래서 전 젊었을 때 맛본 쾌락을 회상하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용서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전 그 값에 마땅한 고통을 충분히 맛보았으니까요. 하물며 당신이야 남자인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세요? 남자들은 여자들의 경우 와는 달라서 세상이 다 용서를 하고, 풍문이 훈장이 되기도 하잖아요?」

「부인,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소. 난 위선자는 아니오. 난 적어도 아무 이유 없이 위선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오. 내 이마가 엄격해 보인다면, 그건 수많은 불행 때문에 구름이 낀 탓이오. 내 가슴이 돌처럼 굳어버린 것도 수 없이 받는 타격을 견뎌내기 위한 거요. 나도 젊었을 땐 지금 같지 않았소. 마르세유의 쿠르가에서 모두 모여 앉아 약혼 피로연을 하던 밤의 나는 결코 이렇진 않았소. 그러나 그뒤로는 나 자신이나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어버렸소. 여러 가지 어려운 사건들의 뒤를 쫓는 데 내 삶을 모두 소비해 버렸던 거요. 그리고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 상대방이 의식적으로 그런 것인지, 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휩쓸려 들었는지, 또 그것이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인지, 또는 우연에 의한 것인기를 알아볼 생각도 못했소. 오직 내 앞길에 방해가 될 만한 사람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데 내 생활을 소비했던 거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는 것은 대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싸우는 법이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저지른 나쁜 짓의 대부분은 필연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있지요. 그런가 하면, 또 흥분했다든가 공포심에서였다든가, 또는 무의식중에 나쁜 짓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나중에 생각해 보면 살짝 피할 수도 있었을 일들이오. 다시 말하면, 당시에는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했다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간단한 방법이 생각나서, 도대체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후회하는 법이지요.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여자들은 후회로 괴로워하는 예가 거의 없지요. 여자들이란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여자들의 불행이란 대체로 남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여자들의 과실이란 것도 실상은 타인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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