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정신현상학>

(Phanomenologie des Geistes)(1807)

(철학사상 별책 제3 제17호)

강성화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70쪽

(2018. 11. 10.)​

W.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일부이든 전체이든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경험에 관한 학’이고자 했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의식의 경험’은 의식이 자신의 인식 내용을 비판해가면서 전개해나가는 인식 비판의 과정이다. 인식은 의식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단번에 온전히 파악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파악된 인식 내용을 다시 대상에 준해서 검사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수정된 인식 내용과 함께 대상도 변화하며, 변화된 대상에 대한 의식의 새로운 인식 활동이 일어난다. 이 새로운 대상은 바로 그 첫 번째 대상을 통해서 그를 뛰어넘음으로써 얻어진 경험이다. 헤겔에 의하면 오직 의식 자체의 이러한 역전을 통해서 생성된 대상의 경험이 학적 전개 과정으로 고양되는 것이며, 이 과정이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이고, 그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곧 의식의 경험의 학이 되는 것이다.

(P.14)

<정신현상학>은 인간 정신이 그 일상의 의식 형태에서 출발하여, 어떤 근거에 의거하여, 또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철학적 의식에 도달하는가를 논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신현상학>은 먼저 (대상)의식에 대한 논의를 설정하고, 직접적, 자연적인 의식으로서의 감성적 확신에 대한 장(章)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헤겔은 감성적 확신․지각․오성[지성]이라는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을 통한 대상의식의 자기의식으로의 전화(轉化)를 묘사하고 있다. 대상의식으로부터 시작한 의식의 운동 속에서 의식은 대상세계의 배후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고, 그래서 대상의식은 자기의식으로 전환한다. 대상의식에서 의식의 대상은 의식 자신 밖에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자기의식에서는 자기 자신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의식은 다른 어떤 것도 다 그렇듯이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변증법적 3분법에 따라서 자기 확신의 진리 →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 자기의식의 자유라는 삼단계를 걸쳐 완성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기의식은 이성으로 발전하여 간다.

자기의식의 최종 단계, 즉 자기의식의 자유의 단계에 도달하면 의식과 대상, 주관과 객관, 개별과 보편이 통일되어 이전의 자기의식은 이제 이성으로 나아간다. 한마디로 이 이성은 대상의식과 자기의식의 통일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대상의식은 대상과 의식이 대립하고 진리는 오직 대상 쪽에 있다고 생각되었고, 자기의식은 그 진리가 대상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의식에 있어서 자아는 자신을 그 대상들 안에서 인식하기는 하였으나 아직 절대적 실체이자 동시에 절대적 주체이기도 한 정신으로서의 의식일반과 자신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이 통일에 대한 의식이 바로 이성이다.

​ "이성은 (자기가) 모든 실재성이라는 확신이다.” 요컨대 이성으로 현상하는 정신은 자신만이 실재성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초기 수준에서 실재성이란 다만 확신하고 단언할 뿐 비매개적인 직접적 단계, 즉 즉자적 단계에 있을 따름이다. 이에 입각해서 “공허한 관념론”(der leere Idealismus)(S.180)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성은 이러한 공허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실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입증은 이론적 이성 또는 관찰하는 이성의 단계에서 실천적 이성의 단계, 그리고 자각적 이성 또는 사회적 이성의 단계로 나아가면서 더욱 분명하게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즉자적 단계에 있는 이성은 대자적이기도 한 이성으로, 즉 즉자적이고 동시에 대자적인 이성, 곧 정신으로까지 나아간다.

(P.16)

정신은 상승하여 절대적 정신 '자기 확신적 정신'으로 지양되어 간다.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하고 그 운동을 나의 것으로 하는 정신이야말로 ‘절대적인 진실의 실재’라고 할 것이다. 정신의 성립과 함께 ‘의식의 경험의 학’은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현상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자기 ‘자신을 바로 자기의 세계로서, 그리고 다시 이 세계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의식하는’ 이 정신의 전개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가는 것이다. 끝으로 <정신현상학>은 절대정신을 이야기한다. 정신이 스스로 정신임을 자각한 정신, 이것이 곧 절대정신이다. 이제 ‘자기 확신적 정신’은 절대정신으로 지양된다. 그리고 절대정신이 직접 자기를 직관하는 것은 종교의 장(章)에 와서야 가능하다. 절대적 정신이 직접적, 대상적으로 직관되고 표상되는 단계가 종교인데, 그것이 순수 사유 또는 개념으로서 자각되면 절대지(絶對知)에 이르게 된다.

(P.17)

<『정신현상학』 요약 >

헤겔의 이른바 예나 시대(1801~1807년)를 대표하는 저작이자 헤겔 최초의 주저. 나폴레옹 군대가 예나에 입성한 날인 1806년 10월 어느 날 심야에 탈고되어 편집을 거치다가 1807년 4월에 밤베르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정신현상학’이란 일차적으로 ‘의식의 경험의 학’(Wissenschaft der Erfahrung des Bewußtseins)인 바, 이는 우리의 의식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하여 진리를 파악하여 가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경험’이란 의식이 자기 자신의 내용과 대립을 극복하고 자기에게로 돌아와서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게 되기까지의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연대적으로나 체계적으로나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 된 저작이며 유럽 철학사에서는 손꼽히는 고전의 하나이다. 헤겔은 이 책에서 정신이 감각적 확실성에서 출발하여 과학적 오성[지성], 이성적 사회의식, 종교 등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변증법적 경로를 거치며 끝까지 올라가 끝내는 절대지(絶對知)인 완전한 자각에 이르는 도정을 서술하였다.

(P.23)

헤겔의 저서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독일 관념론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 1807년에 최초로 출판된 이 책은 다양한 해설서에 대한 ‘해설의 역사’가 필요할 정도로, ‘현존하는 철학 저서 중 가장 난해한 것 중의 하나’로 지목된다. 방대한 양의 사상이 극도로 압축되어 있어서 난해함을 더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그토록 열렬히 읽히고 평가되어 온 이유는 고도의 독창성과 독특함에 있다. 독일 관념론의 요람으로 평가될 수 있는 이 책은 헤겔 철학 체계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이 된다. 초기 헤겔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인 슈트라우스는 <정신현상학>을 ‘헤겔 저작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서, 논리학, 법철학, 종교철학, 미학, 역사철학, 철학사 등의 헤겔 후기 저작과 강의들은 모두 <정신현상학>의 ‘부분들’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헤겔의 ‘천재성’은 이 <정신현상학>에서 최고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정신 현상학>은 헤겔 철학의 정점이자 독일 관념론의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P.24)

========================

1. (대상)의식

‘의식의 경험’의식자신의 인식 내용을 비판해가면서 전개해나가는 인식 비판의 과정이다. 인식은 의식이 자신에게 주어지는 대상을 단번에 온전히 파악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파악된 인식 내용을 다시 대상에 준해서 검사하고 수정하는 과정이다. 수정된 인식 내용과 함께 대상도 변화하며, 변화된 대상에 대한 의식의 새로운 인식 활동이 일어난다. 이 새로운 대상은 바로 그 첫 번째 대상을 통해서 그를 뛰어넘음으로써 얻어진 경험이다. 헤겔에 의하면 오직 의식 자체의 이러한 역전을 통해서 생성된 대상의 경험이 학적 전개 과정으로 고양되는 것이며, 이 과정이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이고, “그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곧 의식의 경험의 학이 되는 것이다.”

(P.36)​

의식-대상-지(知)의 관계

<정신현상학>에서 의식은 타자인 대상에 대한 의식, 즉 대상 의식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의식은 우선 “의식은 그 어떤 것을 안다”(S.73)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데, 바로 이 문장은 의식, 대상, 지의 관계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대상에 해당하는 ‘그 무엇’은 의식과 관련 없이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의식은 대상과 의식 자신을 각각 독립된 것으로 간주한다. 대상과 의식은 상대의 영향 없이도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러나 의식은 대상이 없으면 지를 가질 수 없다. 지를 가지기 위해서 의식은 대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의식이 두 개의 대상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하나는 일차적인 절대적 즉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즉자체가 의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즉자체로서의 일차적 대상은 의식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를 겪게 된다. 따라서 일차적 의미는 즉자체도 오직 그 의식을 위한 의식과의 관계 속에 있는 즉자체로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새로이 나타나는 것이 의식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즉자체, 즉 진리인 것이다. 이 새로운 대상은 바로 그 첫 번째 대상을 통해서 그를 뛰어넘음으로써 얻어진 경험이다. 헤겔에 의하면 오직 의식 자체의 이러한 역전을 통해서 생성된 대상의 경험이 학적 전개 과정으로 고양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의식의 경험의 학’이 되는 것이다.

(P.37)​

(1-2-1) 지금까지 본 바에 따르면 의식은 그 어떤 것을 지득(知得)하게 되는데 이렇게 파악된 어떤 것(대상)은 또한 본질이며 즉자적(卽自的)인 것이 된다. 바로 여기서 이미 이러한 진리의 양의성이 고개를 든다. 즉 여기서 우리는 의식이 두 개의 대상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바, 그 하나는 일차적인 절대적 즉자체(卽自體)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즉자체가 의식을 위해서 존재하게 되는 이차적이며 이중적인 의미를 띠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 후자에 속하는 것은 일단 의식의 자기내적 반성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것은 결코 대상에 대한 표상이 아니라 다만 첫 번째에 해당하는 즉자체에 대한 의식의 지(知)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 즉자체로서의 일차적 대상도 의식과의 관계를 통하여 어떤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일차적 의미의 즉자체는 더 이상 단순한 즉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식과의 관계에 있어서 모름지기 그 의식을 위한 의식과의 관계 속에 있는 즉자체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새로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의식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즉자체, 즉 진리인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본질 혹은 의식의 대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이 새로운 대상은 일차적 의미의 즉자체가 무력화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라 하겠거니와 모름지기 이 새로운 대상은 바로 그 첫 번째 대상을 통해서, 그를 뛰어 넘음으로써 얻어진 경험이기도 한 것이다.(S.73/148쪽)

(P.38)

(대상)의식과 자기 의식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먼저 인간의 의식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즉 자기 의식에 도달하기 이전의 의식 단계를 다룬다. 이 의식의 단계는 다시 대상의 존재를 감성적으로 확신하는 의식(감성적 확신), 대상의 존재를 지각하는 의식(지각), 대상 세계의 법칙을 인식하는 의식(오성[지성])의 3단계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세 개의 의식 형태는 모두 자기에 대한 의식, 즉 자기 의식이 아니라 외적인 대상에 대한 의식이다. 헤겔은 이 대상에 대한 의식을 단순히 ‘의식’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헤겔에게서 ‘의식’은 다름 아닌 대상 의식을 가리킨다. 이 대상 의식으로서의 의식은 자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감성에 사로잡힌 대상 지향적 의식이다. 그러나 ‘의식의 진리는 자기의식이며, 이 자기의식이 의식의 근거’이며 “따라서 어떤 다른 대상에 대한 의식은 그 실존에 있어서 자기의식이다.”(Enzyklopädie, § 424). 헤겔에서 자기의식이란 단적으로 자기와 자기라는 대상에 대한 의식이다. 헤겔 <정신현상학>의 <A. 의식> 부분은 바로 대상의식이 이 자기의식으로 고양되는 과정과 그 논리에 대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P.39)

​​

(1) 감성적 확신

감성적 확신의 대상 : ‘이것’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A. 의식> 부분을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자연적인 의식으로서의 감성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감성적 확신, 지각, 오성[지성]이라는 의식의 변증법적 운동을 통한 의식의 자기 의식으로의 전화(轉化)를 묘사하고 있다. <정신현상학>의 <A. 의식> 부분은 인간의 의식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즉 자기 의식에 도달하기 이전의 의식 단계를 다룬다. 이 의식의 단계는 다시 대상의 존재를 감성적으로 확신하는 의식(감성적 확신), 대상의 존재를 지각하는 의식(지각), 대상 세계의 법칙을 인식하는 의식(오성[지성])의 3단계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세 개의 의식 형태는 모두 자기에 대한 의식, 즉 자기 의식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의식, 즉 대상 의식이다. 헤겔은 이 대상 의식을 단순히 ‘의식’이라 부른다. 여기서 헤겔이 대상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은 감성적 확신에 있어서는 대상이야말로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참된 본질이고, 이와 반대로 자아 또는 지는 대상을 매개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비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대상은 자아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자아는 대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헤겔은 이러한 감성적 확신의 대상을 간단히 ‘이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여 “바로 이 ‘이것’이란 무엇인가?(Was ist das Diese?)”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P.51)

감성적 확신의 대상에서 지금ㆍ여기의 변증법

헤겔은 감성적 확신의 대상에 대하여 “‘이것’이란 무엇인가?(Was ist das Diese?)”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시간적으로는 ‘지금’(das Jetzt),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여기’(das Hier)로써 답한다. 이러한 답변을 통해 그는 결국 감성적 확신이 대상의 진리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함을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지금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예를 들면 “지금은 밤이다”라고 써둘 수 있다. 그러나 얼마 후 아침이 되고 낮이 되면 이러한 규정은 완전히 그 뜻을 상실하고 대상의 진실을 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 ‘지금’이란 밤도 있고 낮도 있는 보편적인 추상물에 불과하게 된다. 여기에서 감성적 확신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대상의 진리는 완전히 보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되고 이러한 사정은 ‘여기’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앞을 향하여 “여기에 나무가 있다”로 표현함과 동시에 뒤를 향하는 경우에는 이 진리는 없어지고 “여기는 집이다”가 진리가 된다. 결국 감성적 확신에 있어서 ‘여기’라는 대상은 집, 나무 등등 어느 것이나 포함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인 존재에 불과한 것이 분명해진다.(황세연, <헤겔정신현상학과 논리학 강의>, 중원문화, 1984, p.102 참조) 종합하자면, ‘지금’과 ‘여기’의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는 ‘이것’이란 사실상 추상적인 보편자 내지는 일반자(ein Allgemeines)에 불과하며 대상의 구체적 진리를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P.52)

감성적 확신에서 지각으로의 이행

감성적 확신의 변증법을 통해서, 다시 말해 감성적 확신의 대상 및 주체, 그리고 감성적 확신 전체와 관련된 지금과 여기의 변증법을 통해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감성적 확신은 구체적 진리를 하등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가장 구체적으로 풍부한 파악을 확신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파악한 바는 사실 가장 추상적인 일반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존재와 그것에 대한 지(知)의 괴리를 자각한 의식은 존재의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 다음으로, 즉 지각(die Wahrnehmung)으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59)

(2) 지각

지각의 대상 : 사물

감성적 확신은 지금, 여기, 자아란 범주를 통해서 대상을 파악하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통한 대상 파악은 감성적 확신이 원래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 요컨대 감성적 확신에 있어서 진리의 포착은 개별자와 보편자(일반자)의 모순이라는 일괄된 공허한 운동으로 판명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감성적 확신이 지각의 단계로 이행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각의 단계에서 대상은 추상적 보편성(일반성)의 단계가 지양되고 ‘각이한 특성을 지닌 사물(Ding)’로서 나타난다. 지각의 대상은 사물이며, 이 사물은 지금 그리고 여기가 변하여도 동일한 것으로 존재한다.

(P.60)

지각에서 오성[지성]으로의 이행

지각의 대상인 사물은 타자에 대하여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 대자적으로 존재하고,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한에 있어서 타자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대자존재와 대타존재의 모순의 통일 속에 있는 대상은 이미 사물이 아니다. 여기에서 감각적인 사물에서 출발하고 일자와 다양한 통일로서 파악된 대상은 이러한 감각적인 개별성으로서의 사물의 제약을 끊고 사물에 제약되지 않는 보편자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제약적 보편자(일반자)를 대상으로 할 때 의식은 이미 지각을 넘어서서 오성[지성]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P.69)

(3) 오성[지성]

오성[지성]과 무제약적 일반자

감성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의 노력은 ‘지각’의 장(章)을 거쳐 ‘오성’의 장에 이르면서 그 결실을 맺게 된다. 이 세 번째 인식 단계의 목적은 대상에서 발견된 직접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의 계기들을 통합하는 데 있다. ‘오성’ 장에서 의식은 감성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무제약적(unbedingt) 일반자를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다. 의식은 이때가지 한 개념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각은 무반성적 개념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아직도 “자기의 개념을 개념으로서 포착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념을 개념으로서 포착하는 것’(Erfassen des Begriffes als Begriff)이 무제약적 일반자의 과제이다.

(P.70)

의식에서 자기 의식으로의 이행

지금까지 의식타자인 대상에 대한 의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구별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구별일 수 없다. 타자에 대한 의식이나 대상 일반에 대한 의식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자기 의식이거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나아가 ‘타재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다. 의식은 힘의 전개인 현상의 내면을 초감성적 세계, 법칙의 세계라 칭하고 이 법칙의 세계가 힘의 전개인 현상의 근거, 현상에 한 설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법칙은 힘의 일반적 구별, 힘의 내재적 형식이다. 그러나 법칙은 그 자체 내적 필연성을 지나지 못한다. 법칙은 서로 무관심한 계기들의 어설픈 통합에 지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은 자신이 힘에 대해 가지는 법칙이라는 지(知)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지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 것은 곧 의식 자신의 문제점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다. 의식은 자기 자신으로 복귀해 자신 안에서 구별이면서 동시에 구별의 지양인 구별을 목격한다. 그 안에서 같은 것이 다른 것이 되고 구별인 것이 구별 아닌 것으로 된다. 이런 절대적 변화 속에서 의식은 이제까지 자신이 사물, 법칙에 대해 행한 구별이 오직 의식 자신 안의 구별의 외화임을 깨닫는다. 의식은 자신이 자신을 끊임없이 이분화하고 통합하는 과정, 즉 무한성으로서의 구별을 자신의 새로운 대상으로 삼는다. 의식 자신이 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의식은 자기 의식이 된다.

(P.84)

2. 자기 의식

대상 의식으로부터 시작한 운동 속에서 의식은 대상 세계의 배후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고, 그래서 대상 의식자기 의식으로 전환한다. 대상 의식에서 의식의 대상은 의식 자신 밖에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자기 의식에서는 자기 자신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 의식은 헤겔에서 다른 어떤 것도 다 그러하듯이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3분법에 따라서 자기 확신의 진리 → 자기 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 자기 의식의 자유라는 삼단계를 걸쳐 완성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기 의식은 이성으로 발전하여 간다.

(P.85)

자립적/비자립적 자기 의식

생사를 건 투쟁에서 한편의 자기 의식의 죽음은 다른 한편의 자기 의식의 확신까지도 부정하게 되므로 두 자기 의식은 각자 타자의 승인 혹은 인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승인, 인정은 ‘하나의 자기 의식’에서 보자면 타자가 보존되는 가운데에 타자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그’ 하나의 자기 의식을 승인,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본질적 두 계기가 드러나는데, 하나는 ‘순순한 자기 의식’이요, 다른 하나는 ‘물성의 형태를 띠고 있는’ 대타적 의식이다. 그런데 ‘이 두 계기는 일단 서로가 불평등한 대립적 관계’에 있다. 하나의 자기 의식은 자아를 끝까지 고수하고 다른 자기 의식은 생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종결됨으로써 전자는 자립적 자기 의식의 지위를 유지하고 후자는 비자립적 의식이 된다. 전자는 주인이고 후자는 노예이다.

(P.96)

노동 : 주인과 노예의 역전의 완성

궁극적으로 노예를 주인으로, 예속을 지배로 변형시키는 것은 노동이다. 다시 말해 노동이 주인과 노예의 역전 관계를 완성시킨다. “노예의 의식은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에게로 귀일(歸一), 귀착된다.” 주인은 노예의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따라서 노예에 의존하게 되고 이와는 반대로 노예는 주인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노동을 통해 생산하고 획득함에 따라서 주인을 지배하는 힘을 획득한다. 노예는 물적 소재를 가공하고 자유로운 형성 활동을 실행하는 것에 의해서, 즉 자각적 창조 행위에 의해서 자기 의식으로 복귀하고 자유를 획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노예는 주인을 위해서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자연성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은 본능을 초월한 비물질적인 것을 위해서 노동한다는 것인데 이는 또한 노예가 자연성을 초월한 개념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의식적 활동에 의해서 노예는 인간화되며 자신의 본성[자연]을 부정하고 변화시킨다. 주인은 노예로 하여금 노동하도록 강요했지만, 노예는 그러나 노동함으로써 사물적 자연 위에 군림하는 주인이 된다. 노동이 노예를 사물적 자연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그것은 또한 그를 그의 노예적 본성[자연]으로부터 해방한다. 그러므로 노동은 노예에게 해방과 자유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는 셈이다.

(P.101)

자기 의식의 지양

불행한 의식의 분열은 완화되고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 그러나 불행한 의식은 순수 사유와 개별을 통일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양자의 화해를 자각하는 곳에 서 있지는 않다. 불행한 의식은 금욕주의와 회의주의를 넘어서서 순수 사유와 개인성을 결합하고 통일하여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의식의 개인성과 순수 사유와의 화해를 자각한 사고에까지 고양되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추상적 사유가 의식의 개별성과 접촉하는 중간에 서 있는 것이다. 불행한 의식은 이 양자의 접촉점에 있다는 의미에서는 순수 사유와 개별성의 통일이 이루어져 있으나 아직은 개별성의 형태를 얻은 불변자가 의식의 개별성인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자각되어 있지는 않다.(인용 참고) 그리하여Hegel은 이제부터는 개별성의 형태를 얻은 불변자에 관해서 문제를 삼고 있다.

즉 자기 의식의 내부에서 개인성과 보편성의 통일, 가변성과 불변성의 통일, 그리고 차안성과 피안성의 통일을 구한다. 이런 통일은 자기 의식이 다음에 올 이성의 단계로 지양하면서 이루어지며, 이 이성의 단계에서 자기 의식은 대상 의식과 최종적으로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P.120)

3. 이성​

의식 → 자기 의식 → 이성이라고 하는 변증법적 삼분법에 따라 보자면 이제 의식자기 의식을 거쳐 이성에로 이행하였다. 이 이성은 대상 의식과 자기 의식의 통일을 나타낸다. 대상의식은 대상과 의식이 대립하고 진리는 오직 대상 쪽에 있다고 생각되었고, 자기 의식은 그 진리가 대상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 의식에 있어서 자아는 자신을 그 대상들 안에서 인식하기는 하였으나 아직 절대적 실체이자 동시에 절대적 주체이기도 한 정신으로서의 의식 일반과 자신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이 통일에 대한 의식이 바로 이성이다.

(P.121)

이성과 관념론

자기 의식이 최종 단계, 즉 자기 의식이 자유라는 단계에 도달하면서 의식과 대상, 주관과 객관, 개별과 보편, 더 나아가서는 의식과 자기 의식이 통일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마침내 자기 의식은 이성의 단계로 고양되기에 이른다.

(P.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