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 / 전원교향곡 / 배덕자
앙드레 지드 / 동성식 / 민음사 / 528쪽
(2018. 9. 2 .)
그날 아침, 작은 교회당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마도 의도적이었겠지만, 보티에 목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누가복음 13장 24절)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을 위한 성경 구절로 택했다.
알리사는 나보다 몇 줄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게는 그녀의 옆모습만 보였다. 나 자신을 망각할 정도로 그녀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듣고 있던 설교 말씀도 그녀를 통해 들려오는 듯했다. 외삼촌은 어머니 곁에서 울고 있었다.
목사님은 먼저 그 구절을 다 읽으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장 13절) 그러고는 주제를 뚜렷이 갈라 놓고 나서, 우선 넓은 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P.31)
어느 날 저녁 어머니는 나와 애슈버턴 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 목숨을 앗아 간 마지막 발작은 처음엔 그전 발작에 비해 그리 심한 것 같지 않았다. 그 발작은 임종 무렵이 되어서야 위태로운 증세로 나타났기 때문에, 친척 가운데 누구 하나 달려올 시간이 없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주검을 지키면서 내가 첫 밤을 새운 것은 어머니의 오랜 친구 곁에서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어머니를 사랑했다. 하지만 눈물이 흐르는데도, 마음속에선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게 놀라웠다. 정작 내가 슬펐던 것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친구가 하나님 앞으로 먼저 가는 것을 지켜보는 에슈버턴 양이 가엾어서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내 외사촌 누이가 서둘러 내 곁으로 달려오리라는 은밀한 생각으로, 내 슬픔은 많이 가라앉았다.
(P.45)
“그래, 나도 오늘 아침 꿈을 꿨는데, 너와 결혼하려는 마음이 어찌나 강했던지 아무것도,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할 것 같았어."
“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하고 그녀가 말을 받았다.
“내가 말하려는 건......"
"그와는 반대로, 나는 죽음이 다시 만나게 해 줄 거라고 생각해...... 그래, 살아서는 갈라서 있던 것들을 다시 만나게 해 줄거야.”
그 모든 말들이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깊이 스며들어서, 아직도 나는 그 억양까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지닌 중대한 뜻은 훨씬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P.53)
그 마지막 만남에서, 나의 사랑이 지나치게 고조되었기 때문에, 나는 모든 열광이 소모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반대하고 나섰던 알리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의 항변이 끝난 다음부터는 내 마음속에 생생하고 당당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 어쩌면 그녀 말이 옳은지 몰라! 나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애지 중지했던 거야.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내가 사랑하던 알리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어...... 그래! 우리는 어쩌면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몰라! 그 앞에서 나의 마음이 온통 얼어 붙게 된, 예전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그 끔찍한 모습은 결국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았어. 내가 서서히 그녀를 실제 그녀 이상으로 높여 세웠고,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으로 장식함으로써 그녀를 나의 우상으로 만들어 왔지만, 그러한 노력에서 피곤함 외에 무엇이 남았나......? 본래의 그녀 자신으로 내던져지자마자 그녀는 곧 자기 수준, 그 별것 아닌 수준으로 내려와 버렸으며, 나 자신도 그 수준까지 내려와 버린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수준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았어. 아!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그녀를 올려놓았던 그 높은 곳에서, 그녀를 만나 함께하려는, 그 미덕에 대한 힘겨운 노력은 얼마나 터무니없고 공상적인 것 같았는지. 조금이라도 자부심이 덜했던들, 우리 사랑은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상 없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고집을 세우는 것일 뿐, 더 이상 충실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에 대한 충실이었나? 과오에 대한 충실이었다. 가장 현명한 길은 나 스스로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는 것 아니었을까......?
(P.158)
때때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내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나에게 나 자신을 해명해 주고, 또 드러내 보여 준다. 그가 없이 내가 존재 할수 있을까? 나는 오직 그와 함께 존재할 뿐이다......
때때로 나는 그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이, 정말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망설여진다. 그만큼 사람들이 보통 사랑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내가 묘사할 수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르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를 사랑하고 싶다.
그가 없이 살아야만 한다면, 무엇 하나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내 모든 미덕은 오직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내 미덕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다.
(P.178)
<전원 교향곡>
아! 슬프게도 나는 그녀의 잠든 얼굴밖에는 다시 보지 못했다. 밤새도록 헛소리를 하고 괴로움을 겪고 나서 그녀가 숨을 거둔 것은 오늘 아침 해 뜰 무렵이었다. 제르트뤼드의 마지막 소원에 다라서 드 라 M 양의 전보를 받은 자크는 임종 몇 시간 후에야 도착했다. 그는 아직 여유가 있는 동안 신부를 불러 오게 하지 않았다고 나를 몹시 책망했다. 그러나 로잔의 병원에 입원한 동안, 물론 자크의 강권에 따라 그랬겠지만, 제르트뤼드가 개종했다는 걸 그때까지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는 자기와 제르트뤼드가 개종한 것을 나에게 동시에 알렸다. 이리하여 그 두 사람은 동시에 내게서 떠나 갔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나로 인해 갈라졌기 때문에 나를 피하여 하나님 품에서 둘이 결합하기로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자크의 개종에는 사랑보다도 이론이 더 많이 개입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비난하는 건 도리가 아닙니다만, 저를 이끌어 준 것은 바로 아버지의 과오라는 본보기입니다.” 하고 그는 내게 말했다.
자크가 다시 떠난 뒤에 나는 아멜리 결에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만 “우리 아버지시여......” 하고 읊조렸으나, 긴 침묵의 구절과 구절 사이를 우리의 탄원으로 채웠다.
나는 울고 싶었으나, 내 가슴은 사막보다도 더 메말라 있음을 느꼈다.
(P.303)
<배덕자>
마지막 밤이 생각난다. 거의 만월이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달빛이 방 안 가득히 들어오고 있었다. 마르슬린은 자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웠으나 잠을 이물 수 없었다. 일종의 기분 좋은 열로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이 열이 곧 생명인 것이다...... 나는 일어나서 손과 얼굴을 물에 적셨다. 그리고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밤은 깊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랑거리는 바람도 없었다. 대기 자체가 자고 있는 듯했다. 멀리서 아랍개들이 자칼 떼처럼 밤새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겨우 들려올 따름이었다. 내 앞에는 조그만 안뜰이 있었다. 거기서 정면으로 보이는 담이 비스듬히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질서 있게 늘어선 종려나무는 이미 빛깔도 생기도 잃은 채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잠자는 모습에서도 생명의 고동은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거기서는 무엇하나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죽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정적이 무서워졌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침묵 속에서 마치 항의하고, 확인하고, 탄식하기 위한 것처럼, 내 생명에 대한 비통한 감정에 다시 사로잡혔다. 너무나 과격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며 맹렬했기 때문에 만일 짐승처럼 울부짖을 수 있었다면 나도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나는 내 손을,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머리로 가지고 가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대로 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것을 놀라운 일로 생각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내 이마와 눈꺼풀을 만졌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언젠가는-나는 생각했다.- 언젠 가는 갈증을 풀기 위한 물조차 입으로 가져갈 힘도 없어질 때가 올 것이라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으나 아직 잠자리에는 들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을 시간의 흐름 속에 정지시키고 그 추억을 마음속에 새겨서 소중하게 간직해 두고 싶었다. 무엇을 하려는 뚜렷한 생각도 없이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책을-성경이었다.-손에 들고 아무 데나 펼쳤다. 달빛 속에 굽혀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한 그 말씀, 아! 슬프게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그 말씀을 읽었다. “지금은 네가 스스로 허리띠를 두르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네 팔을 벌리리니......
다음 날 새벽에 우리는 출발했다.,
* 「요한복음」기장 18절 참조. 젊을 때 자유롭게 살던 베드로가 늙어서 때가 되면 손이 묶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을 당하리라는 예언의 말씀.
(P.365)
산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그리고 좀 더 널찍하고 환기가 잘되며, 좀 더 속박이 없고,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삶에 대한 취미가 나의 답답함에 대한 극히 단순한 비밀이 아니었나라고 물었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 비밀은 나에게 훨씬 더 신비한 것처럼 보였 다. 나는 소생한 사람의 비밀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 가면 나는 마치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돌아온 사나이처럼 언제나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혼란밖에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곧 매우 새로운 감정이 솟아 나왔다. 나는 그처럼 모두에게 칭찬을 들은 연구를 발표했을 때도, 바른 말이지만 약간의 자랑스러움도 느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자랑이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거기에는 어떤 자만심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의식했다. 나를 남과 분리해 놓는 것, 구별 짓는 것, 이것이 중요했다. 나 이외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도 없었던 것, 바로 그것이 내가 말해야 했던 것이었다.
(P.412)
"오늘날 왜 시가, 특히 철학이 죽은 글자가 되었는지 자네는 아나? 시와 철학이 삶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야. 그리스는 삶을 그대로 이상화했어. 그래서 예술가의 삶은 그 자체가 이미 시의 실현이었거든. 철학자의 삶은 자기 철학의 실천이었어. 그래서 시도, 철학도 삶 가운데 뒤섞여서 서로 모른 체하기는 커녕 철학은 시를 기르고 시는 철학을 노래하며 서로 납득함으로써 훌륭한 융화를 이루었던 거지. 오늘날에는 아름다움은 이미 행동하지 않고, 행동은 이미 아름다워지려고 애쓰지 않아. 그리고 지혜는 그것들과는 별도로 움직이네.”
(P.433)
“적어도 우리의 이 별 볼일 없는 머리가 추억을 시들지 않게 보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추억이라는 것은 보존하기가 힘들어. 맛이 가장 섬세한 것들은 이내 벗어지고, 가장 관능적인 것들은 썩고, 가장 달콤한 것들은 나중에는 가장 위험한 것이 되지. 사람들을 뉘우치게 하는 것은 처음에 달콤했던 것이네.” 또다시 오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이윽고 그는 또 말하기 시작했다.
“애석, 회한, 후회, 이것들은 모두 등 뒤에서 본 과거의 기쁨일세. 나는 뒤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새가 오를 때 자기 그림자를 버리는 것처럼 나도 내 그림자를 멀리 버리는 거야."
(P.434)
가난은 인간을 노예로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 즐거움도 없는 일을 떠맡는다. 즐거움이 없는 일은 모두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주고 몇 사람에게 휴식을 얻게 해 주었다. 나는 말했다. "일하지 마라. 그건 지겨운 거야." 나는 각자가 그러한 여가를 갖는 것을 꿈꾸었다. 그것이 없으면 어떤 새로운 것도. 어떤 악덕도. 어떤 예술도 꽃필 수 없는 것이다.
마르슬린은 내 생각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된 항구에서 돌아오자. 얼마나 비참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았는지를 그녀에게 숨기지 않았다. 사람 속에 모든 것이 있다. 마르슬린은 내가 끈질기게 찾아내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그녀가 각자에게 제 나름의 미덕을 만들어 주고는. 그것을 지나치게 믿는 점을 내가 비난하자,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악덕을 드러내게 했을 때에만 만족하는군요. 우리 시선은 누구를 보더라도 우리가 주목한 점을 확장하고 과장한다는 것을 모르나 봐.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을, 우리가 그랬으면 하고 생각하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도 몰라요?”
될 수만 있다면 그녀 말은 잘못이라고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각자 속에서 그 사람의 가장 나쁜 본능이 나에게는 가장 성실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