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명령 / 랄프 루드비히 / 이충진 / 이학사 / 166쪽

(2018. 8. 19.)

우리는 어떤 행위를 옳은 행위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또 어떤 선택이 올바른 선택인 것일까? 이러한 것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윤리학의 과제이다.

윤리학이란 개념은 고대 희랍어 ethos에서 유래했다. 본래는 짐승들의 “방목지” , “사람들의 거주지” 등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습관. 풍속, 성격 등으로 이해되었다. ethos는 라틴어 mos / moris로 옮겨졌고, 이것으로부터 "moralisch(도덕적)”라는 형용사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ethisch(윤리적)”란 말과 “도덕적”이란 말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 도덕moral은 대체로 인간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란 의미를 갖는 반면, 윤리학ethik은 이와 같은 도덕을 연구 주제 및 대상으로 삼는 철학적 분과 학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P.12)

철학의 역사는 두 개의 중요한 윤리학적 근거지움들을 보여 주고 있는데, 많은 성과를 가져온 이것들은 두 사람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이며. 다른 한 사람은 칸트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해 윤리학적 문제가 제기된 이후 윤리학을 통상적 의미의 철학적 사유로부터 분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윤리학을 하나의 독립된 철학 분과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 칸트는 정언 명령을 가지고 의무 윤리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의무란 높이 치켜든 손가락으로 상징되는 자유의 제한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칸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의무라는 단어에 열광했으며, 의무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고백했다.

의무여!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하는숭고하고도 위대한 이름이여! (......) 우리 의지를 움직이기 위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 자연 성향들을 쫓아내지 않으면서도, (......) 너에게 저항하는 그 모든 성향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너! 너의 존귀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자연 성향과의 모든 유착을 늠름하게 거부하는 너의 고귀한 혈통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오직 인간만이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가치, 그러한 가치의 필수적 조건은 도대체 어느 뿌리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KpV A 154〉

이와 같은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즉. 칸트 윤리학은 오늘날의 새로운 윤리학적 시도들이 간단히 무시해 버릴 수 없는 하나의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이래 비록 많은 점에서 비판받아 왔지만 칸트 윤리학은 전체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논박되지 않았다.

칸트의 윤리학. 그것을 이 책은 다루어 나갈 것이다.

(P.15)

칸트는 자신이 이성 규칙을 발견했음을 확신했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칸트는 이성 규칙의 발견과 함께 우리 인간이 감각적 세계를 넘어서는 최초의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점을 확신했다. 이성에 의거하여 명확한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능력. 그러한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그 무엇,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는 확신을 칸트는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본능이 동물의 행동을 오류에 빠지지 않게 인도하듯. 인간의 행위를 확실하게 인도하는 그 무엇이었다.

자신이 발견한 그것을 칸트는 도덕 법칙, 실천 법칙, 또는 도덕적 법칙이라고 불렀다. 도덕 법칙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칸트는 열광하곤 했다. 평소에는 그토록 냉정하고 덤덤한 이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는 그의 글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으로『실천이성비판』을 끝맺고 있다. 그 문장은 거의 시나 다름없다. 그의 윤리학 저서 끝 부분에서 가져온 이 인용을 우리는 이 책의 도입부에 놓아두도록 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칸트의 열광을 우리 눈앞에서 놓치지 않은 채-길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칸트가 그토록 열광했던 법칙. 자신의 저서 어느 곳에선가 환희에 넘쳐 “지극한 위엄”이란 호칭을 부여했던 그 법칙. 바로 그 법칙으로 우리의 길은 이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그리고 거듭해서 생각하면 생각힐수록 더욱 새롭고 더욱 커다란 감탄과 경외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별이 총총한 내 머리 위의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법이 바로 그것이다. <KpV 288〉

칸트의 윤리학, 그것은 칸트의 신앙이며 곧 도덕 법칙에 대한 복종이다. 모든 것은 이 법칙 아래에 위치한다

(P.21)

이제『순수이성비판』의 기본 생각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인간의 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이 칸트의 핵심 문제이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의 탐구로 나아간다. 칸트는 우선 감성적 지각을 탐구하며, 순수한 감성적 직관의 두 가지 형식들을 발견해 낸다. 공간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공간과 시간이라는) 형식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지각할 수 없다.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진 모든 것들은 공간과 시간의 형식에 따라 일정한 질서를 가지게 되며. 그 다음 오성에 의해 개념으로 형태화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활동이 오성 활동의 전부인 것은 아니다. 사유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범주들이 발견된다. 범주들은 개념들을 서로 결합시켜 하나의 명제를 만들며, 오성에 의해 감성적 지각들에 마치 도장처럼 각인된다.

중요한 점은 다음의 것이다. 우리의 오성은 현상의 경험적 세계에서만 오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오직 경험적 사실들만을 인식할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핵심적 개념에 도달하였다. 이 개념은 매번 상이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언제나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현상 세계. 현상된 것 나아감Phaenomenon의 세계, 감각 세계, 감성 세계, 감각된 것의 세계 mundus sensibilis 등이 그것이다.

바로 이곳이 오성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이다.

그러나 오성은 이 한계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성은 추론 능력인 이성으로까지 자신을 비약시키며 스스로를 지평선 끝까지 확장시켜 나간다. 오성은 우리의 현상 세계를 초월하여 더 멀리 날아가고자 한다. 이성은 이제 모든 경험의 저편에 놓여 있는 세계의 대지 위를 날아다닌다. 이 곳에서 이성은 절대적인 것.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것. 실제의 본질 자체를 획득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제약자는 결코 인식erkennen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사유denken의 대상일 뿐이다. 이성이 깨닫는 것은 오직 이러한 사실뿐이다. 칸트는 이와 같은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를 가상적noumenale(즉. 사유된) 세계 또는 예지적intelligible 세계 라고 불렀다.

(P.36)

​​

도덕의 최상 원리에 대한 물음과 관련하여 칸트는 오직 선의지만이 선하다는 사실을 확정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의지는 선한 것일까? 의지가 그 자체로 선한 경우에 의지는 선하다. 따라서 행위가 단지 합의무적일 뿐인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칸트는 성향을 거부하며, 경험 역시 단호하게 거 부한다.

의지는 하나의 행위가 의무에서 유래하여 행해진 경우에만 그 자체로 선하다. 이는 곧 한 행위가 특정한 준칙에 따라 행해진 경우를 말한다. 이때의 준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의지는 또한 법칙에 대한 외경심이 의지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경우 그 자체로 선하다. 이때의 법칙이란 도덕 법칙을 의미한다. 자연 안에 나타나지 않는 법칙, 우리의 현상 세계를 초월한 예지적 또는 가상적 세계에서 발견되는 법칙, 그것이 곧 도덕 법칙이다.

(P.78)

자연 법칙에 복종하기 위해 나는 이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원리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필요로 한다.

이성에 의해 필연적 행위로 인정된 행위가 선택되는 경우, 칸트는 그것을 의지 내지는 실천 이성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의지 개념이 흔히 말하는 자유 의지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칸트가 말하는 의지 내지 자유 의지는 이미 실천 법칙으로 향해 있는 의지, 실천 법칙으로 장차 향해 질 의지를 뜻한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자유 의지는 칸트 에게는 자유로운 자의freie Willkür에 해당되며. 자신의 기분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는 임의성을 의미한다.

이성이 우리의 행위를 전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갓 환상 일 뿐이다. 실제는 그와 다르다. 인간과 이성 사이에는 많은 경우 “어떠한 동기들” 및 주관적 조건들(쾌락, 기분, 성향......)이 가로놓여 있다. 그것이 칸트의 생각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지는 이성의 근거들에 의하여 강제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은 의지가 이성에 언제나 반드시 복종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강제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다. 의지를 강제하는 것은 하나의 지시이며, 지시를 “정식화시킨 것”이 명령이다.

(P.81)

칸트는 정언 명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이 주장은 매우 중요하며). 정언 명령은 행위의 질료가 아니라 행위의 형식에 관여한다.

칸트의 윤리학이 형식 윤리학 또는 형식주의 윤리학으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형식주의라는 개념에 친숙한 주의 깊은 독자에겐 윤리적 형식주의의 개념이 칸트의 계속된 언급들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는 자율자유에 관한 논의(제3부 자율과 자유의 장)을 참조하기 바란다.

『도덕 형이상학 원론』은 정언 명령을 다섯 개의 공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첫 번째 공식에 제1공식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도록 하자. 그것은 다음과 같다.

네가 그에 따라서 행할 수 있는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마치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Gr.BA 52=421〉

​(P.85)

만약 내가 올바르게 행동하였음을 확신한다면. 나는 그 사실에 만족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행위를 다른 사람 역시 행하고 있음을 볼 때. 비로소 나는 만족감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내가 생각했던 올바름이 보다 확실하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올바름에 대해 의심한다면. 과연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항력적으로 진리의 정당한 요구를 제기하기 마련이며, 모든 사람(또는 최소한 가능한 많은 사람)이 동의 할 때 그 요구가 충족된 것으로 생각한다.

(P.88)

우리는 정언 명령의 제1공식에 다시 한번 주목해 보도록 하자.

네가 그에 따라서 행할 수 있는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마치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우리는 먼저 예들을 찾아본 다음 그것에 정언 명령을 적용하도록 하자.

예 1: 은행의 현금 수송 요원이 돈 뭉치를 가지고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돈을 강달당할 위험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본 나는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고 단숨에 돈 뭉치를 낚아채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돈을 강탈하는 나의 행동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은행들은 어차피 돈이 많기 마런이고, 더욱 이 항상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십계명 중 제7계명은 “도적질하지 말라!” 이다. 칸트에 따르면 이 계명은 도덕적 비난의 근거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이 계명은 타율적 규정, 타자에 의해 정해진 규정, 외부로부터(그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부여된 규정이다. 나는 도둑질 금지의 근거를 나의 이성 안에서 찾아내야 하며, 이성의 자기 규정이 도덕성과 비도덕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 점을 칸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돈을 획득하는 것을 원할 수 있는가?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며 감각적 충동 내지는 감각적 동인이다.

칸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첫 번째 단계는 준칙의 정식화이다. 우리의 예에 해당하는 준칙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된다. 삶의 쾌락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경우. 나는 언제나 은행에서 돈을 훔친다. (물론 우리는 준칙을 다르게도 정식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어려움에 당면할 경우 등등.)

두 번째 단계는 위의 준칙을 보편화하고 그것을 보편 법칙으로 생각 해 보는 것이다. “삶의 쾌락을 증진시키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훔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허용된다"라는 법칙이 우리 나라에서 통용된다고 생각해 보자. 만일 내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나의 이성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만일 내가 그와 같은 법칙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은행에 있는 내 돈을 훔쳐 가도 좋다는 사실 또한 원해야만 한다. 훔쳐 가도 좋다는 나의 바램의 배후에는 그와 상응하는 나의 의지가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의지를 이성적 의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P.95)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가 자신의 동시대인들에게 도덕에 관하여 아주 새로운 것을 제시하였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모든 개인적 이익과 무관하고, 모든 인간에게 타당하며, 어떠한 상황에도 구애받지 않는 하나의 도덕 원리가 칸트에 의해 제시되었다. 칸트는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 의해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라는 요구를 함축하는 도덕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요구는 아마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고 또 부정적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확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윤리적 한계선들이 유전 공학, 안락사, 평화 유지를 위한 무력 사용 등의 영역으로 인해 완전히 파기되어 버린 바로 우리 시대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초시대적 타당성에 대한 요구, 하나의 유일한 도덕 원리가 갖는 그와 같은 요구, 우리는 바로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러한 요구는 단지 주제넘은 것일 뿐인가?

독자로 하여금 이 질문에 대해 특정한 대답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누구든지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선 칸트의 도덕 법칙이 제기하는 요구를 먼저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칸트 도덕 법칙에 대한 이해, 바로 그 것이 이 책의 과제이자 목표였다.

“평범한 눈das gemeine Auge”은 정언 명령의 도움에 힘입어 선과 악 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다. 칸트는 그렇게 확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다소 과장된 것처럼 들린다. 이러한 평범한 눈이 칸트 저서를 읽 어 나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쓰여졌다. 칸트가 발견한 도덕 법칙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과제이자 목표였다.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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