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이종인 / 열린책들 / 320쪽

(2018.7.3.)

<노인과 바다>

그는 곧 잠이 들었고 소년 시절에 갔던 아프리카 꿈을 꾸었다. 그는 기다란 황금빛 해안과 하얀 해안들을 보았다. 해안은 너무 희어서 눈을 찔렀다. 높이 솟은 갑과 우뚝한 갈색 산도 보았다. 그는 매일 밤 그 해안에서 지내며 꿈속에서 파도가 노호(怒號)하는 소리를 듣고 원주민들의 배가 그 파도를 뚫고 달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갑판의 타르와 뱃밥 냄새를 맡았고, 아침마다 내륙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가져다주는 아프리카의 냄새를 맡았다.

그는 내륙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냄새를 맡을 즈음이면 으레 잠에서 깨어나 옷을 입고 소년을 깨우러 갔다. 그러나 오늘 밤에는 바람 냄새가 너무 일찍 불어왔고. 그는 자신의 꿈이 아직 한창 진행 중임을 알고서 계속 꿈을 꾸었다. 그는 바다에서 우뚝 솟은 하얀 산봉우리들을 보았고 카나리아 군도의 여러 다른 항구와 정박소들을 꿈꾸었다.

그는 폭풍우, 여자들, 대단한 사건들, 거대한 물고기, 사람들 사이의 싸움, 힘겨루기 시합, 그의 아내 등에 대해서는 꿈을 꾸지 않았다 그가 다녔던 곳과 해변에 나타난 사자들에 대한 꿈만 꾸었다. 사자들은 해질 무렵 어린 고양이들처럼 뛰어놀았고 그는 소년을 사랑하듯 사자들을 사랑했다. 소년의 꿈을 꾸지는 않았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열린 문으로 달을 내다보다가 바지를 다시 펴서 입었다. 그는 오두막 밖에서 오줌을 누고 소년을 깨우러 길을 나섰다. 아침의 한기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렇게 떨고 나면 몸이 따뜻해질 것이고 곧 노를 저을 수 있을 것이다.

(P.24)

그는 언제나 바디를〈라 마르la mai〉라고 생각했다. 그건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할 때 스페인어로 부르는 말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험담을 하지만, 그런 때에도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말한다. 부표를 낚싯줄의 찌로 사용하고 또 상어 간(肝)을 많이 팔아 번 돈으로 사들인 모터보트를 타는 젊은 어부들은 바디를〈엘 마르el mar〉라고 남성형 명사로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 하나의 정복 장소 혹은 적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바다를 언제나 여성으로 생각했고, 엄청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거두어 가기도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거칠고 사악한 짓을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달이 여성에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바다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P.28)

난 아주 정확하게 깊이를 유지하지. 그는 생각했다. 단지 지금껏 운이 없었을 뿐이야. 앞날을 누가 알아? 어찌면 오늘은 운이 좋을지 몰라. 모든 날은 새로운 날이니까. 행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먼저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해. 그래야 행운이 찾아올 때 그걸 잡을 수 있지.

(P.31)

왜 물 밖으로 튀어 올랐을까. 노인은 궁금했다. 마치 내게 자신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보여 주려고 그런 것 같아. 아무튼 이제는 놈의 덩치를 알았지. 이번엔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저놈에게 보여 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저놈은 쥐가 난 손을 보게 되겠지. 저놈이 나를 실제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야겠는데. 그리고 난 그렇게 될 거야. 내가 저 물고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나의 의지와 지능에 늠름하게 맞서는 저놈의 모든 자질을 그대로 갖춘 채 말이야.

(P.60)

물고기야, 넌 나를 죽이고 있어.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넌 그럴 권리가 있어. 난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놈을 평생 본 적이 없어. 형제여, 어서 와서 나를 죽여라. 나는 누가 누구를 죽이든 신경 쓰지 않겠다.

이봐 영감, 이제 당신의 머리가 혼미해지고 있어. 그는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사람 답게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알아야 해. 혹은 물고기답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머리야, 맑아져라.」그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 다.「맑아져라.」

그 후 두 번이나 더 되풀이된 회전에서 전과 똑같은 결과 가 발생했다.

난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물고기가 회전할 때마다 기절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한 번만 더 시도해 볼 거야.

그는 한 번 더 시도했고 그러면서 기절할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고기는 또다시 몸을 곧추세우고 멀리 헤엄쳐 갔다. 커다란 꼬리가 공중에서 흔들거렸다.

좋아. 또 한 번 시도하는 거야. 노인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양손은 이제 무감각했고 눈도 순간적으로만 잘 보일 뿐이었다 또다시 시도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시작하기도 전에 기절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 더 시도할 거야.

그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 채 남아 있는 힘과 오래전에 사라진 자부심을 다 짜내면서 그 힘으로 물고기의 고뇌에 맞섰다.​

​(P.86)

물고기의 몸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노인은 더 이상 고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고기가 공격당했을 때, 마치 자신이 공격 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고기를 공격한 상어를 죽였지. 그놈은 내가 지금껏 본 중에서 가장 큰 덴투소였어. 내가 전에 본 덴투소들도 상당히 컸는데, 저놈은 정말 크군. 너무 좋은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더라면. 저 고기를 낚지 않고 차라리 신문지를 깐 침대 위에 그냥 누워 있었더라면.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

(P.96)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그는 생각했다. 희망이 없다는 건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하고 그는 생각했다. 죄악 말고도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아. 게다가 나는 죄악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해.

난 그걸 잘 모르고, 또 그걸 믿는지 어떤지도 불확실해. 어쩌면 물고기를 죽이는 건 죄악일지도 모르지. 생계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더라도 그건 죄악일 수 있어. 그렇다면 모든 게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그런 걸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세상에는 돈 받고 그런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어. 그런 자들이나 죄악에 대해 생각하라고 해.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 난 것처럼 너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P.98)

「영감. 자낸 너무 생각이 많군.」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넌 덴투소를 죽이는 건 즐겼잖아. 그는 생각했다. 그놈도 당신처럼 살아 있는 물고기를 먹고 살지. 그놈은 쓰레기를 먹는 놈이 아니고 또 일부 상어들처럼 움직이는 식귀(食鬼)도 아니야. 그놈은 아름답고 고상하고 도무지 겁이 없는 놈이지.

「난 자기방어를 위해 그놈을 죽였어」노인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아주 멋지게 놈을 죽였지.」

게다가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죽이고 있다고. 낚시는 나를 살리지만 그만큼 나를 죽이기도 해. 하지만 소년은 나를 살리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스스로를 너무 기만하지는 말아야겠군.

(P.99)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

「오늘 밤 우리는 사자 포획을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뜨릴 겁니다.」윌슨이 말했다.​

「낮에는 더무 덥군요」​

「아, 사자.」마고가 말했다.「그 사자를 잊어버렸네요!」

그래. 로버트 월슨은 생각했다. 저 여자가 남편을 엿 먹이고 잇군. 이런 식으로 엿 먹이는 게 저 여자가 좋은 외양을 유지하는 방식인가? 남편이 영 형편없는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여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저 여자는 정말 잔인하군. 하지만 여자들은 모두 잔인해. 여자들이 세상을 통치하지. 그리고 통치를 하려면 때때로 잔인해져야 해. 난 말 이야, 여자들의 그 빌어먹을 잔인한 테러를 질리도록 보아 왔다고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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