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1
F. 스콧 피츠제럴드 / 공진호 / 시공사 / 312쪽
(2018. 5. 16.)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녀를 인도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 이것은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서 드문 일은 아니지만, 엘시 스피어스 부인의 경우는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기 위해 그런게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했다. 그녀에겐 인생살이에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나 한이 없었다. 두 번의 결혼은 만족스러웠고 두 번 미망인이 되었지
만. 그때마다 그녀의 쾌활한 극기심은 더 깊어졌다. 한 남편은 기병대 장교였고 다른 남편은 군의관이었다. 그들은 둘 다 그녀에게 무언가 남겨주었고 그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로즈메리에게 전해주려고 애썼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게 키움으로써 딸을 냉철하게 만들었고, 그녀 자신의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딸의 마음속에 어떤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자라게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이상주의적인 생각은 그녀 자신에게 돌려졌고 그녀는 그것을 통해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리하여 스피어스 부인은 '단순한' 아이인 한 로즈메리가 자신의 갑옷과 엄마의 갑옷으로 이루어진 이중 덮개의 보호를 받았지만 - 그녀는 시시함과 손쉬움과 천박함에 대한 어른스러운 불신을 품고 있었다 - 영화배우로 일약 성공을 거둠에 따라 정신적으로 젖을 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활기차고 숨 가쁘고 절박한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스피어스 부인 자신 말고 다른 무언가에 집중되기만 한다면 로즈메리는 젖을 떼는 것을 아파하기보다는 기뻐할 것이다.
(P.31)
이 세 남자는 달랐다. 바르방은 다른 두 남자에 비해 교양이 모자라고 더 회의적이고 조소적이었으며, 그의 예절은 격식을 차린 것으로 심지어는 기계적이기까지 했다. 에이브 노스의 수줍음 이면에 있는 극단적인 기질은 그녀로서는 우스웠지만 영문을 알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진지한 천성 때문에 그에게 최고의 인상을 줄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딕 다이버- 그런 점에서 그는 아주 완벽했다 그녀는 묵묵히 황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피부색이 붉고 햇볕과 바람에 그을었으며 짧은 머리칼도 그랬다 - 팔에 난 많지 않은 털이 손등까지 이어졌다. 눈은 밝고 선명한 파란색이었다. 코는 약간 뾰족했으며, 그가 누구를 보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언제나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이러한 주의 집중은 상대방의 기분을 으쓱하게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우리를 그렇게 쳐다보겠는가?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들의 시선은 상대를 흘끗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언가 아일랜드의 선율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목소리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하는 것이었지만, 그녀는 그에게서 자신의 장점이기도 한 냉철과 자제와 자율의 층을 감지했다 오오, 그녀는 그를 선택했다. 니콜은 고개를 쳐들다가 로즈메리가 그를 선택하는 것을 보았고, 그는 이미 임자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그녀가 내쉰 작은 한숨 소리를 들었다.
(P.43)
어떤 일에 대한 그의 흥분은 일의 중요도와는 걸맞지 않게 강렬해져 어떤 분야에 대가가 영향을 끼치듯 사람들 사이에 실로 놀라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에게는 쉽게 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영원히 의심 많은 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무비판적인 사랑을 하도록 자극하는 힘이 있었다. 그 반작용인 우울은 흥분에 따르는 낭비와 사치를 실감했을 때 나타났다. 비인간적인 살인 충동을 충족시키기 위해 명령한 대량 학살을 나중에 바라보는 군사령관처럼 . 간혹 그는 호의로 베푼 흥청거림을 두려운 마음으로 뒤돌아보곤 했다.
하지만 얼마 동안 딕 다이버의 세계에 포함된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오랜 세월에 걸친 현실과의 타협 속에 파묻힌, 자신들만의 독특한, 자부심이 깃든 운명이 있음을 알아보고 자기들을 위하여 특별히 자기들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판단을 유보한다고 믿었다. 그는 섬세한 배려와 정중함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금방 사로잡았는데, 그러한 배려와 정중함은 그것이 끼친 영향을 보고서야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고 직관적으로 발휘되었다. 그러고 나면 딕은 그 관계가 피운 최초의 꽃이 시들지 않도록 아무런 경고도 없이 그의 재미있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한 그들의 행복은 그의 주요 관심사였지만, 거기엔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 조금이라도 비치는 순간 그는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그 어떤 기억도 남기지 않은 채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P.58)
그곳에서 45분가량 서성이다가 느닷없이 어떤 사람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가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분일 때 생기기 마련인 바로 그런 종류의 만남이었다. 이따금 그는 자신의 노 출된 자의식을 너무 엄격히 억제하려다가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소극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가 관객의 흥미, 즉자극된 관객의 감정적인 관심을 촉발해서. 자기가 벌려 놓은 간격을 다른 배우들이 메울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았다. 동정을 필요로 하고 동정을 구하는 사람한테는 별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이런 동정심은, 우리의 추상적인 동정심의 기능을 다른 수단으로 발동시키는사람들에게 쓰려고 아껴두는 것이다
(P.177)
그녀는 그저 멋모르고 천진스레 편리를 위해 그를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탁은 딕이 그녀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 효과를 냈다. 기차 여행은 끔찍하거나 우울하기나 우스운 것일 수 있다. 시험 비행일 수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여행의 예시일 수 있다. 아침에 서두르는 맛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배가 고파 함께 식사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이르기까지, 친구와 함께 있기로 약속한 날이 길 수 있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 여행의 열기가 식어 시들해지는 오후가 오지만, 여행이 끝날 때가 되면 다시 활기를 띠게 되는 것이다. 딕은 니콜의 초라한 기쁨을 보는 게 슬펐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아는 유일한 집으로 돌아왔디는 데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들은 그날은 사랑을 나누지 않았지만. 취리히 호숫가 요양소의 칙칙한 문 앞에 그녀를 데려다주고 그녀가 들어가기 전에 돌아서 그를 바라보 는 순간, 그는 그녀의 문제가 이제는 영원히 두 사람의 문제가 되었음을 알았다.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