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걸

호프 자런 / 김희정 / 알마 / 412쪽
(2018.3.20.)
  내 비위를 맞취준다 셈 치고 잠깐만 창밖을 보자.
  무엇이 보이는지? 아마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 자동차, 건물, 인도 등이 있을 수 있겠다. 단 몇 년 동안의 고안, 설계, 채굴, 벼림, 굴착, 용접, 벽돌쌓기, 창문내기, 메꾸기, 배관, 배선, 페인트칠을 거치면 사 람들은 100층싸리 고층 건물을 지어 300미터짜리 그림자를 드 리을 수 있다. 정말이지 인상적이다.
  이제 다시 창밖을 보자.
  초록색이 보이는지? 보았다면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사람 들이 만들지 못하는 몇 남지 않은 것들 중 하나를 본 것이다. 당신의 시야에 들이온 그것은 적도 근처에서 4억 년 전에 발명된 물건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어쩌면 나무를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무는 3억 년 전에 고안된 물건이다. 대기 중에서 필요한 물 질을 빼내서, 세포 쌓기, 밀랍으로 틈 메꾸기, 배관하기, 페인트 칠하듯 색소 먹이기 등을하는 작업은 길어야 몇 달 정도면 끝나고 그 결과 이파리라는 거의 완벽한 물질이 만들어진다. 나무에 달린 이파리의 숫자는 우리 머리에 난 머리카락 숫자와 비슷하다. 정말이지 인상적이다.
​(P.9)​
  이제 시선을 이파리 하나에 집중해보자.
  사람들은 이파리를 만들 줄은 모르지만, 파괴할 줄은 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50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었다. 한때 지구 육지의 3분의 1이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매 10년마다 우리는 이 숲 전체의 1 퍼센트를 파괴하고, 그렇게 파괴한 숲을 다시는 복구하지 못한다. 땅 넓이로 치면 프랑스 전체에 해당하는 크기다. 매 10년마다 프랑스 크기의 숲이 지구에서 사라져갔다. 말하자면 날마다 1조 개도 넘는 이파리들이 영양 공급원으로부터 찢겨나갔다는 이야기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언가를 돌보고 관심을 갖는 바로 그 기본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지 않아야 할 생명이 죽어가기 때문이다. 누가 죽었다고?​
​(P.10)
​​
  우리 정원에 대한 가장 선명한 기억은 그곳에서 맡은 향기나 본 모습이 아니라 거기서 들은 소리였다. 환청이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는 정말로 식물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절정기에는 옥수수가 날마다 하루에 1 인치(약 2.5센1티미터)씩 자라고, 그 빠른 성장에 맞추기 위해 여러 겹의 껍질이 조금씩 움직인다. 바람이 불지 않는 조용한 8월 에 옥수수밭 한가운데 서 있으면 그렇게 움직이는 껍질들이 계속 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엄마와 정원 흙을 파면서 나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비틀거리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게으른 벌들의 웅웅거리는 소리, 우리 집 새모이함을 흉보느라
 짹찍거리는 홍관조들 소리, 흙을 파는 우리가 내는 모종삽 소리, 그리고 매일 정오에 권위 있게 울리는 공장의 호각 소리 등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P.27)
  십 대의 관점에서 볼 때 어른 나무들은 바보 같으면서도 무한한 미래를 의미했다. 50년, 80년, 어쩌면 100년을 쓰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존재, 날마다 아침이 되면 전날 떨어진 바늘 잎을 대신할 새잎을 만들고, 밤에는 효소 분비를 중지하는 것으로 일과를 끝내는 존재. 땅 밑 새로운 영역을 정복한 후 갑작스레 영양소가 쏟아서 들어오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고, 지난겨울에 새로 난 틈으로 믿음직하고 오래된 곧은 뿌리가 살짝 세력을 늘리는 일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 나무는 매년 허리가 조금 더 두꺼위지는 것 말고는 수십 년이 흐르도록 별다른 변화가 없다. 가지에는 어렵사리 얻은 영양소가 늘 배고픈 젊은 세대의 코 앞에 자린고비의 굴비처럼 걸려 있다.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깊고 풍요로운 곳,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인 햇빛 가득한 좋은 동네에 사는 나무들은 타고난 잠재력을 백분 발휘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조건이 나쁜 동네에 사는 나무들은 좋은 동네 나무들 보다 키는 반도 못 크고, 쑥쑥 크는 십 대 시절도 없이 생명을 부지하는 데 집중하면서 운이 좋은 나무들이 자라는 속도의 절반도 안 되는 속도로 자란다.
  내 나무는 팔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아마도 몇 번 아팠을 것이다. 나무를 은신처와 식량 공급원으로 이용하려고 공격을 멈추지 않는 동물과 곤충들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도망갈 수 없으니 나무는 뾰족한 가시와 독이 있고 먹을 수 없는 나무 진으로 무장해서 그들의 공격을 예방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썩어가는 식물 조직에 갈 데 없이 덮여서 취약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뿌리다. 방어 장치를 유지하는 비용은 내 나무가 더 희망찬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 놓았던 저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진액 한 방울을 홀릴 때마다 씨앗 하나가 열리지 못하고, 가시 하나를 만들 때마다 이파리 하나를 만들지 못한다.
(P.47)
  씨앗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 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 그 기회를 타고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듯 싹을 틔우려면 그 씨앗이 기다리고 있던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씨앗은 살아 있다. 300년 동안 우뚝 선 떡갈나무가 살아 있듯 그 아래 떨어져 있는 도토리도 모두 살아 있다. 씨앗도, 나이 든 떡갈나무도 자라지 않고 있다. 둘 다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둘의 기다림은 다르다. 씨앗은 번성하기를 기다리지만 나무는 죽기를 기다린다.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자란 큰 나무들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러나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드물다. 발 자국 하나마다 수백 개의 씨앗이 살아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그 씨앗 중 절반 이상은 모두 자기가 기다리던 신호가 오기 전에 죽고 말 것이고, 조건이 나쁜 해에는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죽음은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머리 위로 우뚝 솟은 자작나무 한 그루당 매년 적어도 25만 개의 씨앗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제 숲에 가면 잊지 말자.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P.50)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P.52)
  인간이 먹이 사슬의 맨 위에 군림하는 현 시대에는 가장 강한 식물들이 더 강해지고 있다. 덩굴 식물들은 건강한 숲을 장악 할 수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모종의 혼란이 벌어져야 한다. 숲에 뭔가 큰 상처가 나서 땅에 공간이 생기거나, 텅 빈 나무 둥치, 해가 뜨는 땅뙈기가 있어야 덩굴이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런 상처를 내는 데 인간만큼 능숙한 존재는 없다. 우리는 갈고, 포장하고, 태우고, 베고, 판다. 우리가 사는 도시 환경에서 번창 할 수 있는 식물은 단 한 종류밖에 없다. 바로 빨리 자라고 공격적으로 번식하는 잡초들이다.​
​(P.181)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거기서 사는 것이다. 물은 너무 적고, 빛은 너무 많고, 온도는 너무 높은 상태. 사막은 이 모든 불편한 조건을 극대화해서 가지고 있는 곳이다. 생물학자들은 사막을 많이 연구하지 않는다. 식물이 인간 사회에 가지는 의미는 세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식량, 의약품, 목재.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사막에서는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막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정말 흔치 않고, 그렇게 하는 과학자는 종국에 가서는 자기 분야의 비참함에 이골이 나고 만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고통을 날마다 견뎌낼 자신이 없다.
(P.203)
  살아남기 위한 제일 중요한 열쇠가 얼어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다지 놀라운 팁이 아니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고, 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나무를  이루는 모든 세포는 기본적으로 물이 든 상자이고, 물은 정확히 섭씨 0도에 일어붙는다. 물은 또 얼면서 팽창한다. 대부분의 액체와 반대인 이 특징으로 인해 물을 안에 함유하고 있는 것들은 물이 얼면서 터질 수 있다. 냉장고 안쪽이 너무 차가위졌을 때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약간만 서리가 껴도 그 안에 있던 샐러리는 축 처지고 시들어 버린다. 세포 안에 들어 있던 물이 얼면서 세포벽이 터지기 때문에 채소가 먹을 수 없게 돼버리는 것이다.
(P.274)

  전체가 하나로 기능을 하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은 모듈로 만들어져서 전체는 모든 부분의 합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무  전체를 모두 벗어던진 후 대체할 수 있고, 몇 백 년에 걸쳐 나무 들은 평생 그 일을 되풀이해왔다. 결국 나무는 살아 있는 것이 너무 값비싸질 때 죽는다. 해가 떠오르면 언제나 이파리는 물을 분해하고 공기를 더해서 그 모든 것을 당으로 전환하고 그것을 줄기를 통해 아래로 내려보내 뿌리가 힘들게 뽑아올린 희석된 영양분과 만나도록 한다. 식물은 이 모든 보물을 새로운 목재 형성에 써서 등치나 가지를 강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무는 그것 말고도 다른 데 이 영양분을 써야 할 곳이 많다. 늙은 이파리들을 대체하고, 감염된 곳을 치료하는 약도 만들고, 꽃고 씨앗도 생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동일한 원자재를 사용해서 이루어지기 대문에 자원이 남아도는 일이라고는 없다. 그런데 이 자원을 찾기 위해 위로 아래로 뻗는 데엔 한계가 있다. 결국 충분히 높이, 충분히 깊게 뻗지 못한 가지와 뿌리는 그 영양분들을 확보하기 위해 쓰는 자원보다 얻을 수 있는 자원이 더 적이지는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 일단 환경의 제한을 넘어서게 되면 나무는 모든 것을 잃는다.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줘야 나무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지 피어시(미국의 소설가, 페미니스트)가 말했듯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질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 로 만들어야 한다.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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