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담이다
김중혁 / 민음사 / 2016 / 244쪽
(2018. 3. 8.)
슬픔에 대한 질량 보존의 법칙(p.190) 표현이 너무 좋다
화성이라는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는 길은 무척 멀게 느껴지겠지만 돌아오는 길은 훨씬 가까울 것이다. 수개월이 걸린다고 해도 떠날 때보다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클 때는, 떠나 온 곳이 몹시 그리울 때는, 돌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의 슬픔이다. 송우영은 그런 슬픔이 어떤 종류의 슬픔일지 궁금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자의 슬픔은 이제 잘 알게 됐다.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알게 됐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으로는 이제 돌아 갈 수 없고, 어머니의 부재는 그 시간을 통째로 뒤덮을 것이다. 곧 기쁨으로 변할 수 있는 슬픔이란 온전한 슬픔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곧 슬픔으로 변할 기쁨 역시 온전한 기쁨이 아닌 것은 아닐까.
(P.30)
송우영은 술기운이 깊어지면서 자신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세미에게 관심을 얻고 싶어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병 속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송우영이 일부러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는 중 인지도 몰랐다. 굳이 꺼낼 필요가 없는 이야기도 있고, 병 속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이야기도 있다. 코미디를 할 때도 그런 혼동이 자주 있었다. 웃긴 이야기들은 이미 그 자체로 웃긴 이야기들인지, 아니면 자신이 하면서 웃겨지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송우영은 웃긴 이야기를 더 웃기게 할수 있다. 웃기지 않은 이야기도 웃기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송우영이 웃기지 못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웃기지 않았던 이야기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P.123)
강차연은 찻잔을 비우고 집을 나섰다. 비는 그치고, 오후의 하늘에 무지개가 펼쳐져 있었다. 어떤 색이라고 말하기 힘든 수많은 색의 모임이었다. 공기와 물방울들과 빛이 허공에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복잡한 것들이 때로는 단순하게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다는 걸 강차연은 예전에 배웠다. 마음이 썩어 들어가도 겉모습은 평온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걸 강차연은 예전에 알았다. 강차연은 자동차 안에 가만히 앉아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갈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남아 잃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자신이 계속 부풀어오르는 것 같다고 강차연은 느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위아래로만 움직였다 낙하하고, 다시 계단을 오르고, 다시 떨어지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다시 뛰어내리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 하니까 계속 팽창하기만 했다. 이러다가 펑 하고 터질지도 몰랐다. 몸이 팽창하니까 마음과 마음의 결속도 느슨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몸속의 모든 장기들도 밀도가 없어지는 것 같 았다 하나하나 옅어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강차연은 자신의 팔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옅어지고 있지 않은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P.183)
“누군가 슬퍼할 거 라는 이유 때문에 그걸 얘기하지 않으면 슬픔이 사라질 거 같아? 절대 아냐. 세상에 슬픔은 늘 같은 양으로 존재해. 슬픔을 뚫고 지나가야 오히려 덜 슬플 수 있다고."
“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힘들어요.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기쁠까, 대체 얼마나 아플까."
“당연하지, 바보야. 당연한 거야. 그걸 이해할 수 있다고 떠느는 놈들이 사기꾼이야. 감정은 절대 전달 못 해. 누군가가 '슬프다'라고 얘기해도, 그게 전달되겠어? 각자 자기 방식대로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진짜 아픈 사람은 자신이 아픈 걸 10퍼센트도말 못 해. 우린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각자 알아서들 버티는 거야. 이해 못해 준다고 섭섭할 일도 없어. 어차피 우린 그래. 어차피 우린 이해 못하니까 속이지는 말아야지. 위한답시고 거짓말하는 것도 안 되고, 상처받을까 봐 숨기는 것도 안 돼. 그건 다 위선이야.”
(P.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