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
잘 폴 몽쟁(글), 로랑 모로(그림) / 박아르마 / 함께읽는책 / 2012 / 76쪽
(2018. 3. 5.)


  "우리는 매일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본다. 마치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말이다. 그러나 바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
  그는 하늘의 변회를 그저 지켜만 보고도 천체의 움직임을 그리고 계산하였다. 흔히 그럴 법한 경험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주로 하여금 문제에 답하도록 만들었다. 판사가 증인을 진술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연으로 하여금 자신이 만든 생각의 규칙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자연을 연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그 스스로 과학의 대상을 세운 것이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다. 의식의 중심은 객체가 아니라 나의 정신이다...... 이 같은 혁명이 어디에 있겠는가!”
(P.18)


  “인간의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뱀장어 수프의 독특한 맛처럼 경험을 통해 알수 있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 수학이나 철학에서처럼 이성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그것입니다. 나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명백한 정의, 즉 방정식 등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철학으로는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수많은 질문을 합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 먹는가?...... 결국 철학이 정의하려고 애쓰는 것은, '나의 이성 그 자체를 어떤 목적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가'입니다. 철학은 마지막 목적, 즉 인간 이성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학문입니다. 말하자면 철학은 '완전한 지혜란 무엇인지 사유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철학'이 아닌 '철학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P.28)


“아! 우리의 경이롭고 가혹한 주인인 이성...... 여러분의 이성은 기부할 수 없는 질문들 즉 신은 존재하는가, 우리의 영혼은 영원불멸한가, 우 리는 자유로운가 등에 관한 질문들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나는 신이 존재함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나는 또한 신이 존재하지 않음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혼란스럽다고 솔직히 말해 보세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와 같은 문제에 접근하기 전에 이성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즉 학문은 법정에 출두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학문은 그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바를 보이고 그 한계 또한 드러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학문이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내가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를 공간과 시간 속에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공간과 시간은 조건이자, 나의 정신이 일제의 경험을 하게 되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을 공간과 시간 속에서 연구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왜 우리가 신앙에 골몰할 필요가 없는지 이해했을 것입니다. 혹 여러분이 아무것도 이해 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를 쾨니히스베르크의 위대한 중국인(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지요......"
(P.30)


  “내 마음을 늘 새롭게,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가슴속에 있는 도덕법칙이다.”
(P.66)
​​

  자연과학자들은 외부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 다음 사물의 법칙과 원리를 만들어 지식 혹은 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자에게 외부의 사물이나 대상은 지식 혹은 진리를 얻기 위한 재료에 불과하며 경험을 통해 받아 들인 외부의 대상으로 지식과 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인간 개개인의 주관적인 이성이 된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받아들인 지식은 이성과 어떻게 작용하여 철학적 진리가 되는 것일까? 칸트는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은 경험과도 관계없고, 심리적인 의식 작용과도 관계없는 순수이성이라고 말한다. 즉 선천적인 이성의 기능이 바로 순수이성이며, 이는 이성이 그 자신 스스로를 비판할 때 주어진디는 것이다. 이렇듯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추리하는 이성이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고, 이 선척적 이성이 정당한 판단과 추리를 할 때 인간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칸트의 생각은 이후 철학에서 이성을 중요시하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P.71)


  소크라테스는 “거짓말하지 말라”, “빌린 물건은 꼭 돌려 주어라" 등 절대적인 도덕을 강조했으나, 살다보면 우리는 거짓말도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빌린 물건을 돌려주지 못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의 상대성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누군가 좋은 동기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였지만 결과가 나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탓할 수 있을까? 칸트는 탓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도덕적인 행위는 동기가 중요하지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칸트는 이런 관점에서 모든 인간에게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의 '선의지'를 주장한다. 이 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선의 가치가 있으며 사람들은  이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선의지를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으므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선의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다. 칸트는 실천하지 않는 도덕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도덕적 행위를 의무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의지가 아닌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에 따른 행위가 '의무에 맞는 행위'라면, 실천해야 한다는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은 '의무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로, '거짓말하지 말라', '부모에게 효도해라'. '약속을 지켜라'와 같은 의무가 바로 후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므로 이런 행위를 실천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정언적 명령'이다. 즉 '돈 많이 벌면 부모에 게 효도하겠다'와 같이 어떤 조건이나 상황 아래에서만 타당한 그런 행위가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무적인 도덕법칙인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의무적인 도덕법칙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결과가 아닌 동기에 중요성을 두는 칸트의 도덕철학이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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