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 김정매 / 민음사 / 474쪽 ​
(The rainbow 1915)
(2018. 2. 18.) 



  최대 다수의 행복이 중요한 모든 것이었다. 집단적 인류 모두에게 최대의 행복이 되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최대의 행복이었다. 그러므로 개인 각자는 국가를 지지하는 데 헌 신해야 하며 모든 사람의 최대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했다. 간혹 개인이 국가의 상태를 개선하기도 하지만, 그건 언제나 국가를 손상시키지 않고 보존한다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공동사회의 최대 행복이 개인의 영혼에 진정한 성취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개인의 영혼이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개인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한도 내에서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공동사회의 최대 행복이 평범한 개인에게 최대의 행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했으며, 또 천성으로 깨달을 능력이 없었다. 공동사회가 수백만 명의 인구를 대표하므로 그만큼 개인보다 수백만배 더 중요한 것이 틀림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공동사회가 많은 사람의 추상제이지 결코 많은 사람들 자체가 아니라는 점을 잊었던 것이다.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말은 하나의 추상적인 공식이 되어버려서 보통 사람들에 대한 호소력이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니 '공동의 행복'은 보통 사람들을 괴롭히는 말로 변해 버렸고, 낮은 차원에서 저속하고 보수적인 물질주의를 나타낼 뿐이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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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슐라는 잉거 선생 곁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밤, 승객들로 북적거리는 기차역에 들어서니 기뻤다. 불빛이 밝게 비치고 사람들이 붐비는 기차간에 앉아 있으니 기뻤다. 그러나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얘기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그녀는 붐비는 사람들에 면역이 된 채 홀로 앉아 있었다.
  환한 불빛 아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 광경은 내면에 있는 커다란 암흑과 공허의 가장자리 지대에 불과했다. 어슐라는 북적거리고 부분적으로 불빛이 비치는 이 가장자리 지대에 있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캄캄한 공간이란 공허한 실체만이 있기 때문이었다.
(P.155)


그들은 종교를 택했으나, 허위적인 교리는 빼버렸다. 잉거 선생은 종교를 완전히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어슐라는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종교가 결국은 인간의 열망에다가 특별한 옷을 입힌 것이란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열망은 진실한 것이었다. 그런데 입힌 옷은 거의 국가적인 취향이나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발가 벗은 아폴론 신을 섬겼고 기독교인들은 흰옷 입은 그리스도를, 불교도들은 싯다르타 왕자를, 이집트 사람들은 오시리스 신을 섬겼다. 갖가지 종교는 지역적인 것이나 종교 자체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기독교는 지엽적인 분파였다. 아직은 지엽적인 여러 종교들이 하나의 종교로 동화되지는 못했다. 종교에는 공포와 사랑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동기가 있었다. 공포의 동기는 사랑의 동기만큼이나 위대했다. 기독교는 공포에서 도피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한 예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P.156)


  어슐라는 종교에 관해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글에서 요점을 파악했다. 철학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진리와 모든 선의 기준이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진실은 인간을 초월해서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산물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두려위할 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없었다. 종교에 있이 공포의 동기는 저열한 것이며, 그러므로 공포는 몰록신을 숭배하던 고대 힘의 숭배자들에게나 주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계몽된 정신의 소유자이기에 힘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힘이란 금전과 나폴레옹 식의 우매함으로 퇴보한다.
(P.157)


  어슐라는 브런트 선생, 하비 선생, 스코필드 선생과 다른 모든 교사들이 마지못해 못할 짓을 하는 걸 보았다. 그들은 많은 아이들을 반항이 허락되지 않는 기계적인 틀 속에 억지로 집어넣고, 이 전체의 틀을 복종과 주목만이 통하는 기계 상태로 만든 후, 잡다한 지식의 파편들을 받아 들이라고 명령하는 수치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첫 번 째로 중요한 과업은 예순 명의 아이들을 하나의 마음, 하나의 존재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태는 학생들의 의지 위에 군림하는 담임교사의 의지와 학교 당국의 의지를 통해 자동적으로 조성되어야 했다. 요점은 교장과 교사들이 하나로 통일된 권위 있는 의지를 보여야 하며,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하나의 의지로 통합되어 이를 추종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P.235)


  매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슐라에게 있어서 여성의 해방이란 진실하고 깊은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어슐라는 어딘가에서, 그 어떤 점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일단 자유롭게만 되면 그 어딘가에 갈 수 있으니까. 아! 자신을 초월한 그 경이롭고 진실한 어딘가. 마음속 깊이에서 느끼는 어딘가에 말이다.
  부모에게서 떨치고 나와 자신의 생활비를 마련함으로써 어슐라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일을 향해서 강력하고 잔인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전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니까, 자유가 더 필요함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많은 것을 하고 싶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서적들을 읽고 풍요하게 되길 바랐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고 또 이것들을 영원히 즐기고 싶었다. 훌륭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알고 싶었다. 그러고도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욕구가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P.281)


  “세상에는 사랑할 만한 남자들이 많아요. 단지 한 사람 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어슐라가 말했다. 내심으로는 스크레벤스키를 생각하고 있었다. 위니프레드 잉거를 생각하면 가슴이 공허했다. 
  “그렇지만 애정과 욕정을 구별해야 돼요.” 매기가 말했다. 그리고 다소 경멸하는 투로 덧붙여 말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쉽게 욕정을 품겠지만, 그렇게 쉽게 사랑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요." 
  어슐라가 강렬한 어조로 힘주어 대답했다. 거의 광분한 것 같은 괴로운 표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욕정은 애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요. 그리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굉장한 것으로 보여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욕정만으로는 절대로 행복하지 못하지요,” 
  어슐라는 인생에 있어 기쁨과 행복, 영원성을 확고하게 바라보며 살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매기는 비애와 사물의 불가피한 사멸을 쳐다보고 살았다. 어슐라는 삶의 손아귀 속에 혹독하게 고통을 겪었으나 매기는 언제나 홀로 초연해 있었다. 그래서 깊은 생각에 애잔하게 잠겨 있으면서 이를 즐기다시피 했다. 어슐라가 성 필립스 초등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동안 두 선생 사이의 우정은 절정에 이르렀다.
  바로 이 겨울 동안에 어슐라는 매기가 근본적으로 홀로  담을 쌓고 외롭게 살아가는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괴로워 했고, 또 이를 몹시 즐겼다. 매기는 어슐라가 자신의 삶의 한계에 대항하며 투쟁하는 것을 즐기면서 또한 괴로워했다. 그다음에 이들은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매기가 담을 쌓은 채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삶의 형태에서 어슬라는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P.290)


  한 해 동안 대학의 매력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교수들은 인생과 지식의 심오한 신비를 전수받은 사제가 아니었다. 결국 교수들이란 아주 몸에 배어버려 그 존재조차 망각해 버린 상품을 취급하는 중개인에 불과했다. 라틴어란 무엇인가? 아주 많은 지식이라는 잡화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라틴어 시간은 일종의 상점에 불과했다. 그 곳에서 학생이 골동품을 사고 골동품의 시장가를 알아보는데 전반적으로 별 매력 없는 골동품이었다. 어슐라는 골동품 상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골동품에 진저리가 난 것처럼 라틴 골동품에도 싫증이 났다. '골동품', 바로 이 말만 들어도 혼이 나가고 생기가 쏙 빠지는 것 같았다.
  왠지 몰라도 학업에 대한 활력이 싹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가짜고 겉치레로만 보였다. 겉치레뿐인 고딕 양식의 아치, 걸발림뿐인 평화, 겉치레뿐인 라틴어 어법, 겉치레 뿐인 프랑스의 위엄, 또 겉치레뿐인 초서의 소박성,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고물 상점으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장비를 구입하는 곳이었다. 이런 것은 시내의 큰 공장들과 비교해 보면 하잘것없는 유흥장에 불과했다.
  차츰 이런 생각이 어슐라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대학이란 종교적인 수도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 학문의 도장도 아니었다. 그곳은 작은 양성소로 학생이 장차 돈을 벌기 위해서 훈련을 더 받는 곳이었다. 대학 자체는 공장을 위해서 있는 자그맣고 불완전한 실험실에 불과했다.
  어슐라는 또다시 냉혹하고 흉측스러운 환멸을 맛보았다. 이와 같은 암흑과 비통한 침울에서 절대로 완전하게 벗어 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의 밑에는 흉측스러운 밑층이 영원히 깔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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