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 김재범 / 책세상 / 248쪽

(2018. 1. 31.)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발판 삼아 더 넓은 세계로 나가겠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어느 선배의 밀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갇히고 말았다. 문제가 보이는가 싶다가도 흐려지고 깜깜한 방 안에 갇히는 것이 되풀이되었다. 명쾌하지 않은 맨 처음의 원리와 원인=실체=본질. 어떤 사림들은 이것을 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뮌스터 대회에서 만난 한 지인은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형이상학은 더 이상 철학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같기도 하다. 그러나 철학의 핵심은 본질에 관한 탐구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많은 학생들이 철학을 공부하려 한다. 무엇 때문일까? 철학은 신학 없이 있다. 그러나 신학은 중세 시대 이래로 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해왔으며, 그러는 한 신학은 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본질 탐구는 신학이 아니라 철학, 특히 형이상학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의 문제에 빠져 있어도 될 것이다. 내가 있다는 것과 내가 산다는 것 때문에.
(P.8)


  개별자가 무엇을 위해서 행해져야만 하는지를 아는 학문이 학문들 중 최고의 학문이며 또한 지배를 당하는 것보다는 지배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는 개별자의 착함이며, 일반적으로 모든 자연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탐구된 이름이 언급된 모든 것들에 의해서 같은 학문에 붙여진다. 왜냐하면 맨 처음 원리들과 원인들의 학문은 이론 학문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착함과 무엇을 위해서는 원인들 중의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P.23)


  맨 처음에 있는 것과 어떤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히 있는 것은 실체일 것이다. 그러므로 맨 처음의 것은 다양하게 일컬어진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서, 개념에서도 앎에서도 시간에서도 실체는 맨 처음의 것이다. 왜냐하면 실체는 다른 틀들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념에서 실체는 최초의 것이다(왜나하면 실체의 개념이 개별자의 개념 속에 필연적으 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 양, 혹은 장소가 무엇인지를 알 때보다는 인간 혹은 불이 무엇인지를 알 때, 이때에 개별 사물을 가장 잘 이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질 혹은 양이 무엇인지를 알 때, 이때에 이러한 틀들의 각각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전에 그리고 지금 항상 탐구되고 질문된 것은,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P.30)


  실체는, 만일 여러 가지 의미로 이야기되지 않는 다면, 오히려 대개 네 가지로 언급된다. 즉 무엇임(본질)과 보편적인 것(보편자) 그리고 유가
개별자의 실체인 것으로 여겨지며, 밑바탕(기체)이 네 번째 로 간주된다. 그러나 밑바탕은 자신에 의해서 다른 것들을 언급하지만, 밑바탕 자체는 결코 다른 것들에 해서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먼저 밑바탕에 관하여 규정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밑바탕이 실체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32)
​​

(생성에에 관하여)
  생성되는 것들 중 한 가지는 자연에서 한 가지는 기술에서, 한 가지는 자발적인 것으로부터 생성된다. 그러나 모는 생성되는 것들은 어떤 것에 의해서, 어떤 것으로부터 그리고 무엇이 생성된다. 그러나 나는 이 무엇을 각각의 틀 지음에 따라서 생각한다. 왜냐하면 무엇은 여기 이것 혹은 양 혹은 질 혹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생겨남 자체들은 자연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들이며, 질료라고 부르는 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고, 자연에서 있는 것들 중 어떤 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며, 그리고 인간 혹은 식물 혹은 이러한 종류들의 다른 어떤 것, 물론 특히 우리가 실체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 그러나 자연에서 혹은 기술에서 생성되는 모든 것들은 질료와 관계한다. 왜냐하면 생성되는 것들 각각은 있음도 있지 않음도 가능한데, 이러한 것은 개별자 안에 있는 질료 때문이다. -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것이 생성될 때 무엇으로부터와 무엇에서는 자연이며(왜냐하면 생성되는 것은, 예를 들면 식물 혹은 등물처럼, 자연과 관계하기 때문에), 무엇에 의해서는 형상에서 일컬어지는 같은 종의 자연이다(그러나 이 자연은 다른 개별자 안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 의미에서 자연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들은 생성되지만, 다른 생성들은 만듦들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모든 만듦들은 기술에 의해서 혹은 기능태에 의해서 혹은 사유에 의해서 일어난다. 이것들 중 어떤 것들은 자발성에 의해서 그리고 우연에 의해서 생성되는데, 자연에서 생성되는 것들과 유사하게 생성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몇몇은 씨앗으로부터 또는 씨앗 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에 관하여나중에 탐구해야만 하지만, 형상이 영혼 안에 있는 것들은 기술에 의해서  생성된다(그러나 나는 형상을 개별자의 무엇임이며 맨 처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P.45)


 지금 우리는 고도화된 기술 문명 덕에 편리함과 쾌락에 길들어 있다. 어려운 것은 기피하고 쉬운 것만 추구한다. 그러는 동안 생각하는 힘은 약해져간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에 따르면 “높은 가치는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어서 행하면 행할수록 더 많이 생겨난다". 이에 빗대어 말해본다면, 역설적인 말이지만, 어려운 것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 쉬워질 것이고 쉬운 것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어려운 것을 행하다 보면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되어 모든 것이 점점 더 쉬워질 것이다. 반면에 쉬운 것만을 행하다 보면, 우리의 생각하는 힘이 더욱더 약해져서 아무리 쉬운 것이 주어져도 어려워질 것이다. 생각의 단순화가 오늘 날 인문학의 위기를 몰고 오지 않았나 싶다.
(P.2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