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전혀 엉뚱한 고민을 한다. 아버지의 병환과 겹쳐 인생의 문제를 저울질한다. 


  나의 문제는 이렇다. '혼자 사는 고통이 클까, 원하지 않는 짝과 사는 고통이 클까?' 벌써 무시무시한(?) 나이에 접어들고 말았다. 청춘이라 부르는 나이대를 끝머리에 두고서 저 질문이 머리를 괴롭힌다. 평소 같으면 자신있게 후자의 고통이 크다고 말할 나이지만 왠지 요즘엔 쉽사리 결정을 못한다. 


 나는 가족과 산다. 아버지, 어머니, 동생. 아버지가 시한부인생을 통고받고 어머니 또한 병을 앓으면서 혼자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깨졌다. 언젠가 가족은 해체된다. 나나, 동생이나 자신의 인생을 살 거다. 이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비로소 저 문제가 등장한다. 


 사람은 변한다. 예전에 나는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의 아버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믿었다. 내가 보기엔 그 이유의 상당부분이 아버지에게 있다. 책임질 수 없는 자가 결혼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러나 고독에는 장사가 없다. 물론 나는 안다. 결혼이 외로움을 반드시 날려버리지 않는다는 진실을.  결혼한 절친 하나는 인간은 혼자 태어나, 살다, 혼자 간다고 이야기한다. (내겐 그냥 결혼한 이의 푸념 정도밖에 그의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 힘들어서 그러겠지.) 그런데 내겐 '살다', 이 부분의 문제다. 살려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잘 사는 방법의 하나로 나는 배우자를 만나는 일을 꼽는다. 문제는 바로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가 나이가 들수록 힘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있다. 우문이긴 하지만 나는 이 질문을 주변 몇몇에게 던지고 싶다. 적당한 짝을 만나 결혼하라는 조언부터, 어차피 늦은 거 맘이라도 맞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귓가에 들린다. 


 답을 안다. "네 욕망에 귀기울여라."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는 이가 어찌 짝을 찾을까. 그러나 마음이 간사하다. 혼자 사는 두려움이 클까, 좋은 짝을 만나지 못하는 고민이 클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