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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구
이강훈 지음 / 동문선 / 2010년 7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 ‘앨리스’는 어떻게 연구될까?
‘앨리스’ 연구는 근래 판타지 동화의 유행에 맞춰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연구의 초점은 문학의 테두리에 한정된다. 이 소설을 소재로 우리나라에서 다른 영역에서 관심이 이루어진 적이 있던가.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은 문학작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동화로서만 아우라를 지닌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선 ‘앨리스’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수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홀대받는다는 사실은 이상하기 까지 하다. 대중문화에서 활발히 소비되지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저주의 작품이다. ‘앨리스’는 그저 어린이가 읽고 소비하는 동화일 뿐이다. 어린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화에서 아니면 에니메이션 한 장면으로 스치듯 기억될 뿐이다.
문학에서도 ‘앨리스’는 비주류의 신세이다. 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여전히 읽히지만 우리나라에선 문학텍스트로서 연구는 활발하지 못하다. 단행권의 형태로 ‘앨리스’ 연구서가 출판된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논문으로 발표된 연구물을 합쳐도 얼마 안 된다. 게다가 그 연구의 관점은 대체로 몇 갈래로 모아진다. 가장 큰 갈래는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앨리스’를 다룬다. ‘무의식’은 가장 큰 관심사이다. 텍스트는 항상 징후로서 읽힌다. 게다가 꿈을 소재로 다룬 동화니 ‘앨리스’만큼 매력있는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작품속에 소녀의 꿈은 뒤죽박죽이니 해석을 묘하게도 충동질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모두가 한 작품을 한 가지 시선으로 재단하는 일은 이 소설의 매력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다른 관점으로 이 어린 소녀의 꿈을 해석할 수 없다니 슬픈 일이다.
정신분석학의 굴레
이강훈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구>도 큰 줄기는 정신분석학의 테두리에서 ‘앨리스’를 다룬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개념은 프로이드의 ‘친숙함과 낯섦 속에 두려움(uncanny)’이다. 그 개념을 가지고 작품을 해석하려는 동기는 하나이다. 이상한 나라는 어린이의 의식과 언어로 가득 채워진 장소라는 전제이다. 아이의 눈에 이상한 나라는 신비한 마술의 힘이 바로 나타나는 공간이다. 꿈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현실과 꿈, 현실의 언어와 애니미즘 언어의 경계에서 소녀는 모험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앨리스는 현실을 지배하는 어른의 의식과 꿈을 떠도는 아이의 인식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까지 매력을 행사하고 환영받는 드문 작품이 된다. 이게 ‘앨리스’의 매력의 원천이다.
무의식의 심연뿐만 아니라 그 연장선상으로 이 연구서에선 ‘앨리스’가 지닌 무의미의 바탕을 초점을 갖고 연구한다. 무의미의 발생은 기표가 과잉되고 기의가 고정되지 않아 발생한다. 기표는 기의에 닻을 내리고 있지 않으니 해석은 열려있다. 언어표현이 지닌 뜻이 의미를 결정하지 않는다. 논리학과 같은 인공언어에 비해 일상언어는 애매성과 모호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기에 문학이 추구하는 진실은 고정된 해석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문학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작품은 열린 해석의 영역에 놓여있다. 다만 ‘앨리스’는 무의식을 반영한 독특한 소설이기에 그 정도가 과잉에 이른다. 이 동화의 ‘상호텍스트성’도 그 연장선에 있다. 계속해서 고쳐쓰기가 이루어지고 현실과 성호관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가치있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판타지 언어의 문학적 효용성’ 그리고 ‘동화와 놀이’ 등도 마찬가지로 분석되고 연구된다. 이 연구서에 실린 ‘문학과 영화의 연계성’과 ‘동화 번역의 실제적 문제’ 그리고 ‘비평과 창작으로서의 패러디’을 제외하면 모든 논문은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나 같은 일반 독자가 보기에 이 연구서는 지루하다. 특히 저자 스스로 고백하듯이 2장과 3장은 자기표절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서 본래 논문이 실린 출처가 생략되어 있다. 한 권의 책으로 기획되지 않았다면 본래 논문이 들어있는 저널을 명시해야 하지 않나 쉽다. 저자의 ‘앨리스’의 작품관심의 변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본래 발표된 출처를 기록해야 온전한 연구서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연구서는 종래 ‘앨리스’에 관해 연구물을 성과를 묶어 드물게 내놓은 유일한(?) 책인 듯 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앨리스’에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 싶은 독자에게 유용하다. 특히 다양한 번역서를 평가해놓은 ‘동화 번역의 실제적 문제’는 우리나라 동화번역의 문제점과 개선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