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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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문학 선생님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책은 대학생이 되서 읽어보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너무도 읽고 싶은 마음에 읽었다. 그리고 공지영이란 작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 후, 그녀가 내 놓은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빌어 쓴 소설 분위기가 너무 풍겨서 그럴까? 예전 소설이 옆에서 큰 무게감 없이, 하지만 너무도 나직하게 이야기를 건네면서 마음 속에 조용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번 소설은 누군가가 내게 '이야기를 해 줄테니 자세 잡고 앉아봐'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너무도 피곤하고, 내일 당장 해야 할 일도 떠올라 누군가의 이야기가 귀에 잘 안들려올 뿐 아니라 자꾸 피곤하다는 생각만 들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십년 전에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했던 진실이 이제는 지루해진다. 사명은 팔자가 되어버리고 운명은 개그로 바뀌어버린다.
=이 말을 보면서 난, 십년 전에는 공지영 이란 작가에 푹 빠져 무조건 변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면, 왜 이리 그녀의 소설이 이렇게 지루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 그녀의 소설이 변할걸까? 내 취향이 변할걸까?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난 후 이때 느꼈던 다소간의 실망감을 조금은 보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보다도 작가의 말이 지금까지 계속 뇌리에 남는다.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가, 왜 묘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가, 왜 저 사람의 웃음 뒤에 울음이 차오르고 있다고 느끼고야 말았던가? 나는 그런 통찰력을 받았던가?
= 누군가의 웃음 뒤에 차오르고 있는 울음에 나 역시 생각을 많이 했다. 그건 아마 내가 보이는 웃음 뒤에 이미 차오르고 있는 울음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느낌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가끔씩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멍해 있으면,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건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 나의 감각을 인화해내고, 나의 경험을 완성해주어서, 내게 삶을 삶으로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었으니까. 잘못되었을 경우 내 탓이라고 하면 되니까, 책임의 실체가 있고 능력의 부재가 뚜렷한 거니까. 최소한 운명이나 배신은 아닌 거니까...... 그러니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두 개가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 실은 처음부터, 갈라놓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모든 인생길이 나침밤처럼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새삼 내가 작가라는 일이 감사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러는데, 진심 감사하다.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단함에... 다소간 멍한 기분이었다. 이때의 기분은 유명 작가의 지나친 자신감을 아니꼽다고 느끼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나를 배반하지 않는 글쓰기, 자신의 삶을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는 글쓰기란 작가 자신에게 과연 어떠한 기분을 안겨다 줄까?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나 역시 언젠가 꼭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갈망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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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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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막 출간되자마자 읽고 싶었다. 책 소개보다 단순히 책 제목에 끌렸던 것도 사실.
이 책은 지하철을 탈 때, 혹은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 누군가를 기다릴때 읽으면 더없이 좋을 책 일듯 하다.
참고로 난 침대에 누워 이리 뒹글 저리 뒹글 하면서 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주 유쾌하지는 않고 중간 중간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오고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책과 바람이 났다기 보다는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여자인 듯하다. 그럼 책과 바람난 거 맞는가? 아님 평생 함께 사는 여자이니 책과 결혼한 여자인가?

35-36p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서관을 드나든다. 그건 금전적인 여건과 공간의 문제다. 일주일에 한 권에서 일곱권의 책을 읽는다면, 돈 많은 사장으로 넓은 집에 살거나, 아니면 출판사에서 일하거나-언론 홍보용 책자를 공짜로 주거나 직원에 한해 '할인'을 해주니까. 그래도 공간의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아니면 도서관에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점점 더 넓은, 하지만 점점 더 가난한 동네에 있는, 나중에는 교외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거나.우리집처럼 말이다.

정작가의 말: 맞다. 하지만 금전적인 여건과 공간의 문제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책이 되면 '언제든 시간 날때 읽어야지'하는 생각때문에 책의 소중함이 덜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자주 애용한다. 반납 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책을 술술 잘 읽게 된다. 이것도 병인가? <책과 바람난 여자>도 내 돈으로 산 내 책이 되니 읽는 속도가 느렸다. 후..

99p
독서에 빠진 사람의 반응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목에 살짝 입을 맞추는 것으로도 그를 천장까지 펄쩍 뛰어오르게 만들 수 있다. .... 푹 빠져있는 소설을 마저 읽지 못하게 방해해보라. 아무리 순한 사람이라도 야만인으로 돌변하고 말 것이다. 스스로 책을 놓지 않는 한, 독자는 잠재적으로 아주 위험한 사람이다.

정작가의 말: 이 부분을 보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 지하철에서 책에 푹 빠져있던 날이었다. '저는 어떤 어떤 병이 걸렸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파 누워있고...단돈 1000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비슷한 내용의 종이를 나눠주는 사람이 내 책 위에 그 종이를 놓는 순간 난 뱀이나 지렁이 혹은 개구리가 내 책으로 튀어들어온 것처럼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실체를 확인하고 어찌나 쪽이 팔리던지..

115p
최근에 읽은 것 중에 뭐가 좋았어?"라고 질문을 하면 무슨 조화인지 나는 완전한 건망증 속을 헤매게 된다.

정작가의 말: 주변 사람들이 오랜만에 나에게 전화해서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요즘 읽을 만한 책이 뭐냐?와 요즘 볼만한 공연이 뭐냐?이다. 그러면 난 내 머리속의 이리저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질문자가 어떤 부류에 관심이 있는지, 아님 단순히 인기있는 책에 관심이 있는지등을 물어본다. 그래서 대강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던 중 아예 내가 읽은 책 리스트를 만들어 건네주기도 했다. ㅋㅋ

하지만, 이러한 질문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 였다. 요샌 책도 많이 못 읽고 공연도 많이 못보니 말이다. 거의 매일 내 가방 속엔 책이 들어있었고. 일주일에 최소 5권에서 15권까지 365일 내내 읽었던 사람이 이젠 일주일에 2~3권 읽는다. 그래서 허기지다. 책에 목마르다.

209p
고령화 사회가 도래한 지금, 광학 산업이 세상을 똑바로 보기 위해 안경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이 근시인 것에 만족하는 근시들을 위한 안경을 만들기로 결심한다면 성공할 거라고 나는 예상한다. 특히 7세부터 77세까지의 독자가 읽는 책을 문학적 난이도가 아니라 노안의 정도에 따라 분류하여 제안하는 총명함을 가진 출판사의 앞날은 무척이나 밝을 것이다.

정작가의 말: 오!! 이런 생각을.. 60이 다된 어머니가 책을 보고 싶어도 무거운 안경을 쓰고 힘들게 책을 봐야 되기 때문에 독서를 하지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더욱 그런 생각에 동감이 되었다. 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출판사가 어디 없을까??


213p
맛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책이 있고, 배부른 독자가 있는가 하면 굶주린 독자가 있다.

정작가의 말: 맛 있는 책?? 감각의 박물관/사람 vs 사람/ 고래/식구/ 가족/ 떨림/새의 선물/향수....
             소화가 잘 안 되는 책?? 신경숙의 거의 모든 책 (그중 j 이야기만 빼고)
             혼자만의 책 맛을 음미해봤다. 그럼 난 배부른 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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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3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픈 독자인 듯 하네요. ㅋㅋ
배부른 독자는 맛있는 책을 저렇게 늘어 놓지 않거든요.
신경숙이 소화 잘 안되는 건 저도 그래요. 이 책 읽어 보고 싶군요.

정작가 2006-03-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읽고 싶은 책이 큰 방에도 있고, 작은 방에도 있고, 거실에도 있고, 식탁위에도 있고 이런면 너무 배가 불러요. 워낙 동시다발적으로 다채롭게 책을 읽는 체질이라.. ㅋㅋ// 배고픈 독자 글샘님. 신경숙 글 읽다보면 소화불량 걸려요. ^^' 그래도 새책 나올때마다 안 읽으면 왜 그리 걸쩍지근한지..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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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룩 뒤룩 살찐 여인이 아니라 뭔가 위엄이 느껴지게 살이 찐 여인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때면 <고래>의 춘희가 느껴진다. 그리고 춘희를 책 속에서가 아닌 실제로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져본다.

이 책은 한장 한장 읽어나가는 독자들의 손과 가슴을 끌어당긴다. 그 결과 고통도 잠시 잊게 해준다. 아이가 나오려는 신호를 보내 산부인과로 향하던 중에도 손에서 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산부인과로 함께 동했했던 이 책은 출산의 강렬한 고통이 끝난 후 병원에서 마저 끝까지 다 읽었던 책이다. 춘희, 금복, 걱정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나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시골 장터에서 혹은 여행지에서 거짓말을 기막히게 잘하는 사기꾼에 홀려 비싼 약을 나도 모르게 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나래이터가 등장해, '이건 거짓말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계속 이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줄 것인가?'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 때문인가?? 얼마전 제주도에서 본 코끼리 쇼에 등장하는 거대한 코끼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코끼리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엄청난 거구의 사람이 헐렁한 청바지를 입은 채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 옆엔 남편까지 속인 쌍둥이 자매가 걸어가고 있다.

책 속에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란 말이 나온다.
인생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지를 끊임없이 닦아내듯 어찌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반복적인 하루 하루로 점철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이야기꾼에 한번 홀려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성석제의 비슷 비슷한 이야기에 질린 독자라면, 김애란의 다소 가벼운듯 의미심장한 문체보단 끊임없이 뿜어져나오는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추천할만하다.

소설을 소설의 작법에 따라서만 쓰려고 했던 내 자신에게 뜨끔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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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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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텔레비젼에 유영철이 저지른 살인으로 형제가 연이어 죽은 집안이 나왔다. 그 집안에 감도는 암울하고도 우울한 분위기.. 그리고 막가파 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사람이 나왔다. 화면변조도 하지 않은 채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80이 다 된 할머니가 다녀가시면서 운다. 갑자기 그 사형수가 불쌍해진다. 이미 죄를 뉘우친 지금에서야 후회해봤자이겠지만...

또, 유영철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 부인, 자식까지 잃은 아버지가 나와. 유영철을 사형시키지 말라는 탄원서를 냈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정신병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유영철을 살인시킨다고 해서. 어머니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라는 말을 했다..

과연, 내가 그러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이미 자기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아는 사형수라고 해도 자신이 곧 죽는 줄을 알지만 언제 죽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공포가 있다고 한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사람과. 병으로 죽을 날짜를 받아논 사람. 사형수로서 건강한 몸이지만 죽어야만 하는 사람. 그들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사형수 그들의 심정에 워낙 관심이 많은 나는 그와 관련된 도서를 잘 읽는 편이다. 이 소설 역시 그러하다. 공지영이란 작가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지 않으면서도 잘 읽히는 소설이다. 논픽션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사형수들의 성장기록에 불편한 마음도 함께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분노로 뒤틀린 소음으로 그들이 저지르게 되는 살인.. 그들의 살인에 대해서 미친*이라고 쉽게 말 할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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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 - 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김별아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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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김별아 씨가 쓴 글과 제 글을 조합했습니다. 어느 부분이 김별아씨 글이고 어느 부분이 제 글인지는는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알겠죠.. ㅋㅋ

출산 2개월 정도 후에 봤던 책이라 상당히 공감히 크게 되었답니다..

아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먹는 것 하나 걸음걸이 하나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아무거나 잘 먹던 내 입맛이 본능적으로 까다롭게 변하면서 내 몸 속의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걸 참으로 신기롭게 바라보면서 ‘입맛이 예민하다는 것이 이러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발을 삐끗해 넘어져도 본능적으로 배부터 보호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 몸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님으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기분을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모유수유가 다른 그 어떤 노동보다 대단한 24시간 노동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의 나와 이후의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미친 듯이 바빠졌고 손목은 편할 날이 없었다. 그와 더불어 팔뚝은 점점 굵어져 갔다.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았던 이전의 삶은 지나치게 한가한 것이었다. 시도때도 없이 젖을 찾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을 동경하기도 했다. 심심하면 어떨까? 아이가 크고 내 손이 조금 덜 필요하게 ‰瑛?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안본, 아니 못본 공연이 하나 둘 늘어갈 수록 기운이 꺽이기도 했지만 아직은 공연보다는 아이가 먼저여야 겠지...

 

하지만 내가 객쩍은 공상에 빠져 몸을 떼는 찰나가 어린 것에겐 곧 생존의 위험이었다. 내 품안에서 땀을 흘리면 젖을 빨고, 내 팔에 안기지 않으면 잠들지도 못하고, 내 눈길, 손짓. 표정, 몸짓에 울고 웃는 내 아가. 나로 인해 존재하는 내 사랑스럽고도 무시무시한 불멸의 징표! 그를 배반할 수는 없었다. 내가 스스로 나를 배반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더욱 몸을 바씩 붙였다. 말랑말랑한 복숭아 같은 그의 살갗이 새근 새근 고른 숨결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우린 함께 살아있어야만 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청각이 그토록 예민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것도 어머니가 되기 전엔 한밤중에 세상 모르게 자던 사람도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 뒤적거리는 소리에 감긴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상황에서 아이 앞으로 다가가 아이의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듣기엔 다 똑같은 울음소리일지라도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는 아이의 울음소리만으로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은 건지, 놀아달라는 건지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잠든 잠깐의 시간도 마음 편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아이가 정말 잘 자고 있는가 두 번째로 체크하지 않으면, 아이는 작은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딸꾹질을 하면서 울지도 못한 채 힘들어 하고 있었다. 딸꾹질과 울음은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가 알아서 체크하는 수 밖에...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누군가를 먹이고 어르기 위해 한밤중에 꿀 같은 잠을 억지로 밀쳐내며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스스로 잠들지 못해 부대끼는 아이를 안고 밤새도록 좁은 집 안을 뱅뱅 도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펄펄 끊는 불덩이를 안고 새벽에 응급실로 뛰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새벽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고 환자들 사이에서 염치없게 의사의 가운을 움켜잡고 제발 눈길을 건네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우리 주변에 그토록 많은 턱과 계단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유모차를 밀고 장애물을 헤쳐가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지, 그런 장애물들 앞에서 언제나 무력했을 장애인과 약한 자들의 분노와 슬픔을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빙그레 머금는 웃음에 온 세상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까맣게 잊고 누군가에게 맹목적으로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을, 그토록 회의를 품어옴 ‘사랑’이라는 말의 실체가 이토록 엄연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말 한마디를 처음 내뱉을때까지 얼마나 긴 기다림과 설렘이 있고, 그 어눌하게 터져 나온 불분명한 발음의 외마디 소리가 얼마나 신비롭게 들리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무심코 터지는 아이의 투정과 비난에 부모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나 때문에 가족들이 얼마나 조심하며 발끝으로 걸어야 했는지도 끝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이를 잃은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통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상실감과 절망감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몸 어느 한구석이 뭉텅 끊겨 나가는, 그 생생한 실제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내 기억 속에 까마득히 묻힌 어린 날들을 다시 한 번 살아보는 경이로운 체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여린 추억들이 지금의 나를 키웠음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내 어린 날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엄마도 이렇게 늦은 밤에 나를 안고, 업고 잠을 못잔 채 다를 달랬겠지. 나의 베넷 웃음에 같이 웃었겠지. 쉴 새 없이 싸고 먹는 날 보기 위해 한시도 눈길을 뗄 수 없었겠지. 날 목욕 시키기 위해 물 앞에 겁 먹은 자식의 손을 꽉 잡아준채 조심 조심 물을 끼얹어 주셨겠지. 그런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자식도 혼자 자신이 큰 것처럼 엄마의 고마움을 쉽사리 잊어버리겠지...... 

 

아이가 아니었다면, 부모님과 형제, 햇살과 바람과 바다와 공기... 나를 키운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 몰랐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 무릇 자연에 귀속되어 있음을. 스스로 살고 누군가를 살리고자 끊임없이 역동하는 순환과 질서의 신비를 몰랐을 것이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이기심과 욕망, 아집과 편견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대단히 특별하지도 않고 선인은 더더구나 아니라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길들여진 방식으로 결코 제압되지 않는 아이 앞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내 숱한 단점들 때문에 스스로 당황하며 쩔쩔매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간혹 아이가 엄마가 모르는 이유로 몇시간 째 칭얼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엔 내 인내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때이기도 하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많은 시간의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불편한 양육과 번거로움이 내게 가르쳐 주는 숭고한 희생의 진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영예로운 일은 부와 명예와 지위와 업적을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한 잎으로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되고 한 알의 밀알로 고요히 묻혀 새싹을 틔우는 것이라는 진리를..

 

그는 앞으로 더 많이 나를 가르칠 것이다. 나를 부정하고 내게 반항하며 마침내 나를 뛰어넘는 그 순간까지,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 새로이 만날 그때까지 나는 기꺼이 그에게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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