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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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문학 선생님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책은 대학생이 되서 읽어보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너무도 읽고 싶은 마음에 읽었다. 그리고 공지영이란 작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려놓게 되었다.

그 후, 그녀가 내 놓은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빌어 쓴 소설 분위기가 너무 풍겨서 그럴까? 예전 소설이 옆에서 큰 무게감 없이, 하지만 너무도 나직하게 이야기를 건네면서 마음 속에 조용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면, 이번 소설은 누군가가 내게 '이야기를 해 줄테니 자세 잡고 앉아봐'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너무도 피곤하고, 내일 당장 해야 할 일도 떠올라 누군가의 이야기가 귀에 잘 안들려올 뿐 아니라 자꾸 피곤하다는 생각만 들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십년 전에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야 했던 진실이 이제는 지루해진다. 사명은 팔자가 되어버리고 운명은 개그로 바뀌어버린다.
=이 말을 보면서 난, 십년 전에는 공지영 이란 작가에 푹 빠져 무조건 변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면, 왜 이리 그녀의 소설이 이렇게 지루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 그녀의 소설이 변할걸까? 내 취향이 변할걸까?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난 후 이때 느꼈던 다소간의 실망감을 조금은 보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보다도 작가의 말이 지금까지 계속 뇌리에 남는다.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가, 왜 묘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가, 왜 저 사람의 웃음 뒤에 울음이 차오르고 있다고 느끼고야 말았던가? 나는 그런 통찰력을 받았던가?
= 누군가의 웃음 뒤에 차오르고 있는 울음에 나 역시 생각을 많이 했다. 그건 아마 내가 보이는 웃음 뒤에 이미 차오르고 있는 울음 때문이었을까? 이러한 느낌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가끔씩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멍해 있으면,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건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 나의 감각을 인화해내고, 나의 경험을 완성해주어서, 내게 삶을 삶으로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었으니까. 잘못되었을 경우 내 탓이라고 하면 되니까, 책임의 실체가 있고 능력의 부재가 뚜렷한 거니까. 최소한 운명이나 배신은 아닌 거니까...... 그러니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두 개가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 실은 처음부터, 갈라놓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모든 인생길이 나침밤처럼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새삼 내가 작가라는 일이 감사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러는데, 진심 감사하다.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단함에... 다소간 멍한 기분이었다. 이때의 기분은 유명 작가의 지나친 자신감을 아니꼽다고 느끼는 단순한 기분이 아니었다. 나를 배반하지 않는 글쓰기, 자신의 삶을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는 글쓰기란 작가 자신에게 과연 어떠한 기분을 안겨다 줄까?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과 나 역시 언젠가 꼭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갈망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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