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셰익스피어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덕수 옮김 / 형설출판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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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더프가 나는 여자에게 태어나지 않았다 라고 밝힐 때는 띠리리리리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어설픈 구성으로도 글을 있나 싶다가도 문제를 내고 거기에 어떻게든 끼워 맞추며 절정을 만들어내고 그런 식으로 하면서 대사로 먹고 들어가는 셰익스피어의 방식에 찬사를.

멕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거나 조잡하다는 욕을 많이 먹긴 했다지만 그래도

어떤 대사는 훌륭하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이후로 맥베스 연극을 몇 편 보았다. 그리고 희곡을 보는 것과 연극을 보는 것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절정으로 치달을 때의 긴장감, 미친 레이디 맥베스와 맥베스의 고뇌들이 가득한 무대, 여전히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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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문학과지성 시인선 156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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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추워서 이불 속에서 비어져 나오기 싫었지만 결국 나와 적는다. 진형준의 평까지 읽고 나와 적다 뒷표지에 적힌 말까지 눈으로 삼켰다. -장석남 시를 보면 어휘력이 함빡 는다. 물론 봤을 때만 이다. 눈에서 멀어지고 맘에서 멀어지면 다시 부박한 어휘로 돌아온다. 한때는 어휘와 사람이 같은 것인 알았는데 정말 그럴까? 어느 정도는 그렇기도 하겠지. (그렇담 저렴한 어휘만 쓰는 사람은 저렴한 사람인가요? 글쎄.)- 문지 시집은 어쨌든 뒷말이 제일 좋다. 이성복 시집도 그렇고 어느 시집이건, 대부분 뒷표지에 적힌 말이 가히 절창이다. 그래서인지 이번도 그렇다.

서른 살에 써낸 시집이다. 첫장은 옛노트에서. 이제는 가깝다. 예전에 봤을 멀기만 하더니. 가까워졌나보다. 부럽기도 하다. 서른에 이런 시편을 써내다니. '공터' '버스 정류장 송월전파사' 같은 시는 부럽다. 부러운 시가 '송학동 1'이랑 '한겨울 목련나무', '꽃밭을 바라보는 '. 차라리 이런 시선 자체가 부럽다 해야 겠다 .깊고 멀어서 부럽다. 지금 나는 얼마나 부박하고 범박한가. 薄은 얇을 박字다. 나는 얇아 세상 둥실 떠다니느라 정신 잃은 평범한 안목밖에 없는 같아 속상하다. 넓고 깊어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허허허.

그러다가 뒷편 시들 생각하면 여러 시인들 흉내도 내고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고 했던 게야 하면서 위안도 얻는다. 그러면서 이런 것도 시집에 엮이고 하며 불평불만도 늘어놓고.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구나.

요새 장석남 시집이 좋아 보고 있는데. 그는 꽃밭의 장관 같다. 돌보느라 여념이 없다

 

장석남 시집을 읽다 이름이 궁금해졌다. 꽃을 때마다 갸륵해진다. 작은 것이 피어난 내력의 무궁무진함.

담쟁이덩쿨에 가을의 붉은 같은 보인다. 홍제천에 쑥부쟁이들은 누가 심었을까. 손길을 속에서 본다. 상상이라 아름답지만 때로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지 않을까. 때로 그런 간격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매일 나의 속된 마음이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때로 꽃은 음악보다 아름답다. 한때 정원사나 식물원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것은 도서관 사서를 꿈꾼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 없는 세상에 대한 , 비속함 없는, 아니 비속하다는 의식조차 없었으면 좋겠다는 . 거짓과 진실 사이를 거닐다 길을 잃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 그래, 이루어질 없는 이유다.

그래, 식물에 관련한 책을 샀다. 꽃의 내력이라.




--

꽃밭을 바라보는

 

 

,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있었으면,

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 도망온 몇을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같네.




2010년 9월 3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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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 라틴어 원전 번역,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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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속에는 모든 장르가 있다. 6권은 잔인한 장르극이다. 현대 영화보다 훨씬 더하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예수 이전 인간 의식을 보여준다. 거기서 신은 자연이 의인화된 형태를 취한다. 인간은 신에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없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만하다 그러는 경우도 많다. 결국 자연을 깔보지 말라, 자연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는 아닐까?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심이 여기 깔려 있지 않을까?

 

200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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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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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방법론

끊임없이 웃기기, 웃기면서 존재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이상한 모순을.


20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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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서함 문학과지성 시인선 357
박라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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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라연 시집을 보고 잠시간 멈췄다가, 생각은

남과 여다.

처음으로 남과 여에 대해 깊이 사유했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시 워크숍 시인은 남자였다. 다들 아셨던가요? 싶지만

그러니까 예전부터 사람들이 화성남자 금성여자인지 금성남자 화성여자인지 하는 책을 읽으라고

내게 강추하던 이유를 여기서 알았다.

 

어쩌면 작년까지 몰랐다가 이제 알게 사실이

남과 여는 뇌의 구조, 사고 작용,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과 해석(물론 해석을 통해 말이 나온다)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20 초반에는 아수라백작에 대한 소설을 적이 있다. 나는 나름대로 소설 아이디어나 상상력 면에서는 최고봉이라고 생각하는(그러나 치졸한 묘사와 서사력으로 그만 내용은 없는) 소설인데, 아수라백작은 남과여를 얼굴에 가진 존재다. 그러니까 20 초반에는 그에 대해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같다만,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남자나 여자나, 그냥 살면 되지, 깐딴히 말하면 그렇다.

그러니까 약속은 지키고 내가 하기로 일은 하고 그렇게

하다가도 되는 어리석은(혹은 현명한) 날이 오고 만다. 웃긴 일이다.

그러면 다시 그러다 그러다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날들의 연속을 보내다가

그만

이제 다시 옹알이를 배우는 아이처럼

남과 여는 다르다고 알았고(정말 작년까지는 괘념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에 대해서)

시집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느낀다.

 

그러니까 엄마라고 해야 할까.

말이 품고 있는 함의란 얼마나 큰가만은…

 


<불면> 밥을 지어먹인다, 허공에게

두번째 <상황 그릇> '뻔히 알면서도 져줄 때의 형상이 가장 좋았다' 한다. ' 품은 간장 종지에 불과'할지라도

<배호>에서는 미안하고 감사하다.

<아는 사이>에서는 뜨거운 눈시울을 빨대를 꼽고 빨아마신 떨이로 팔아넘길 뻔한 허기를 본다.

마지막 <순간 의자>에서는 '그저 앉게 해주'

 

이것을 여성성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동물적 여성의 본능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벗고 싸우면, 어떤 남자에게 맞아 죽는다.

진화론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그냥 인간인걸, 그러니까 내가 죽인 개미와 다를 없어서

라고 종종 생각하므로 반신반의만 한다.

(믿음이 최고로 뇌를 활발하게 굴린다는데 이러니 뇌는 어느 순간 정지하는 건가? 아니 정지하고 싶은 건가? 정지할까봐 두려운가?)

 

우리가 여성성이라고 명명하는 어떤 속에는 약자의 미덕이라고 해도 좋고 엄마의 미덕이라고 해도 좋을 무언가가 있다. 승패로 보면 패자일지도 모를, 그러나 종족보존이란 연장선상에서 보면 승자일지도 모를, 어떤 반신반의 상태의 무엇. 팔아먹고 팔아먹히는 세상에서 여분의 것들에 젖주고 싶은 어떤 마음들.(그것은 물론 생물학적 본성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만)

 

이전 시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이것을 나약하다고 말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201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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