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기사 1
히노 마츠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 그 다음으로는 작가의 필력이다. 만화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이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림체.

 얼마나 그 그림이 아름다운가에 따라서(물론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만화를 그냥 한번 읽고 지나치느냐, 소장하고 싶어지느냐가 결정이 되는 것이다. 난 내용이 아무리 재밌어도 그림 자체에 매력을 못 느끼면 소장하고 싶어지는 욕구가 눈꼽 만큼도 안 생기는, 약간의 탐미주의의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여성들은 대부분은 그런 경향이 있긴 한다지만 말이다.

 이 히노마츠리라는 작가의 그림체는 정말로 멋지다. 환상이다. 아름답고 섬세하며 강렬하고 섹시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특히나 남자가 아주 무지막지하게 멋지다. 멋지다. 멋지다.(감동의 눈물) 이 사람의 전작의 그림도 좋았지만, 난 이 뱀파이어 기사라는 만화를 접하고 '부라보~!!!!'를 외쳐버렸다.

 뱀파이어. 그것도 미국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괴물딱지들 말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녔는데다가 위험한 매력이 폴폴 풍기는 뱀파이어. 무슨 액션영화 찍으면서 맞고 때리고 찌르고 이런 뱀 파이어가 아니라 뭐랄까, 절제된, 그들이 등장한 순간 대기가 멈춰버린 듯, 시간이 숨을 죽인 듯, 모든 것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안그래도 이쁜 그림체인데, 뱀파이어를 그릴 때는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이 보일 정도이다.

 다시 돌아가서 뱀파이어다. 피를 마시고 살아가는 존재,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이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워서 홀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 실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몬스터이긴 하지만, 이 만화 속에서의 뱀파이어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 멋진 존재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카나메와 제로. 뱀파이어들을 다스리는 존재인 순혈종 뱀파이어 카나메, 인간출신의 뱀파이어이자 뱀파이어 헌터였던 제로. 그리고 여주인공인 유우키. 정말로 멋진 남자(뱀파이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자격이 있는 강하고 다부지면서도, 무엇보다 정말 환상적이고 맛있는 피를 가진 아이. 유우키의 과거 역시 뭔가 심상치 않는 듯도 싶지만, 아직은 밝혀진 바가 없다.

 대부분의 만화나 영화에서는 뱀파이어가 피를 빠는 장면은 아름답기보다는, 뭐랄까 혐오스럽다. 아니 두렵다. 당장이라도 그들이 뛰쳐나와 내 피를 빨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이 만화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피를 빠는 행위는 섹스와 같다,라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앤라이스의 뱀파이어연대기에서도 그랬었고. 그래서인가.

 맹수의 이빨이 가녀린 목을 뚫고 피를 빠는 모습은, 정말로 섹시하다. 두려움이나 혐오보다는,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하다. 덕분에 그 부분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봤다. 뱀파이어가 나온다는 것 자체도 황홀한데(그렇다. 내가 뱀파이어물을 좀 많이 좋아한다) 거기에다 아름답고 강하고 지고지순한 감정을 지닌데다가, 흡혈장면도 섹시하다니..(각혈)

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자고로 만화는 그림이 이뻐야 한다.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사람 많겠지만, 다 소용없다. 무엇보다 그림이 이뻐야 하고, 장면 장면이 이뻐야하며, 눈을 사로잡는 강렬함이 있어야 한다. 정말 근래에 나온 만화 중에 단연, 단연, 최고!!!!!!!!!!!!!!!!!!!!!!!!!

 흔한 주제이긴 하지만, 뭐랄까. 어두운 과거를 가진 멋진 남자를 여주인공이 사랑이나 그 자신의 선량함으로 구원시킨다는 주제는, 왠지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래서 후르츠바스켓도 좋아하는 것이고. 여하튼, 물론 약간 마이너기질이 있는 나의 취향이긴 하지만, 이쁜 그림 좋아하고, 뱀파이어 나오는 것을 좋아하며, 어두운 과거를 가진 남자 주인공들이 지고지순한 애정을 보이고, 거기에다 여주인공이 씩씩하고 약간은 둔한데다가, 용감해서 멋지기까지 한 만화를 좋아한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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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너굴; > 반지의 제왕과 비교해 본 나니아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머리말

  1997년 영국 전국의 독자들이 20세기 최고의 영문학으로 선택한 『반지의 제왕』은 2002년 12월 문학의 범주를 넘어 영화로 개봉되었고, 그 흥행은 가히 소설의 흥행과 견줄만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흥행이 예외는 아니었으며, 더 나아가 국내에서 저급 문화로 취급되던 판타지 문학의 위치까지 격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양에서는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판타지 문학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온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국내에서는 『반지의 제왕』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판타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니아 연대기』의 첫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2005년 크리스마스 개봉을 목표로 영화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뻐할 수밖에 없었고, 다시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다.

  사실, 이번에 읽으며 주목한 점은 『나니아 연대기』 곳곳에 나타나는 비유들이었으나, 그 비유들이 『반지의 제왕』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몇몇 소재들도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였기에 이 리뷰에서는 그러한 연관성을 좀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했다.

 

2. 본문

가. 『나니아 연대기』란?

  20세기 3대 판타지 문학의 하나로 꼽히는 『나니아 연대기』는 1950년 그 첫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출간되었으며, 이후 1년마다 한권씩 총 7권의 시리즈가 출간되어 다양한 독자층의 사랑을 받았다. 1957년에는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마지막 전투』가 영국 도서관 협회로부터 ‘카네기 상’을 받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판타지 문학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반지의 제왕』과는 20세기 3대 판타지로 손꼽히기도 하는데, 사실 『반지의 제왕』과 짝을 이루는 C.S. 루이스의 작품은 『나니아 연대기』라기 보다는 『우주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니아 연대기』를 읽는 동안에도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하였고, 두 작품 모두 판타지 세계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비교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나. 각 권의 줄거리

  1) 『사자와 마녀와 옷장』

  피터, 수잔, 에드워드, 루시는 옷장 안에 들어갔다가 '나니아 나라'에 가게 된다. 그곳은 크리스마스가 없는 영원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하얀 마녀가 마법을 걸었기 때문이다. 나니아의 모든 생물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아슬란이라는 사자로, 그는 나니아의 원래 주인이었다. 에드워드는 하얀 마녀에게 속아서 일행을 배신하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슬란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런데, 먼 바다의 황제(아슬란의 아버지)가 만든 법에 의하면 배신자의 목숨은 하얀 마녀가 취할 수 있다. 그래서 하얀 마녀는 에드워드의 목숨을 요구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슬란이 에드워드 대신 죽게 되지만, 마녀가 모르는 마법으로 인해 아슬란은 부활하게 되고 결국 나니아를 되찾게 된다.

 

  2) 『캐스피언 왕자』

  캐스피언은 나니아 나라의 왕자이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숙부가 대신 나니아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자식이 없던 숙모에게 아기가 생기자 목숨에 위협을 느낀 캐스피언은 궁전에서 도망을 치게 된다. 그리고 숙부에 맞서 싸울 동지들을 찾게 되는데, 그 동지들이 바로 옛 나니아의 '말하는 동물들'이다. 하지만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 커서 전투에서 계속 패하게되고 캐스피언은 마지막 방법으로 '마법의 뿔나팔'을 불게 되는데, 그로 인해 피터와 수잔과 에드워드와 루시가 나니아로 돌아와 캐스피언을 돕고 결국 나니아를 되찾게 된다.

 

  3) 『새벽 출정호의 항해』

  유스터스네 구석진 방에 걸려있던 '바다 위의 배' 그림을 보고 있던 에드먼드와 루시와 유스터스는 그 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배의 주인은 '캐스피언 왕자'로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돕던 7인의 영주를 찾기 위해 항해를 하던 중이었다. 항해 도중 노예 상인에게 잡히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7인 중 한 명의 영주를 만나 도움을 얻고, 론 제도의 무너져가는 통치권을 바로잡기도 한다. 그 후 다섯 개의 섬을 거치면서 여러 모험을 하다가 바다의 동쪽 끝에 닿게 된다.

 

  4) 『은의자』

  유스터스와 질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아이들 때문에 아슬란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그 결과 나니아로 오게 된 유스터스와 질은 캐스피언 왕의 아들인 릴리언 왕자를 찾기 위한 네 가지 명령을 아슬란에게 받게 되고,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퍼들글럼과 일행이 되어 여행을 하던 중 여러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명령 네 가지 중 세 가지를 어기게 된다. 그 와중에 난쟁이들에게 잡혀 지하세계로 끌려가 되는데 거기서 릴리언 왕자를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명령을 생각해 낸 그들이 릴리언 왕자를 구해내자 이번에는 녹색 옷의 마녀가 그들을 가로막는데 퍼들글럼과 유스터스의 용기로 마녀를 물리치고 나니아로 돌아오게 된다.

 

  5) 『말과 소년』

  나니아 남쪽에 있는 칼로르멘이라는 제국에 살던 샤스타는 자신을 팔아버리려는 양아버지에게서 탈출하여 나니아로 가고자 한다. ‘브레’라는 말과 귀족신분인 ‘아라비스’, 그녀의 말인 ‘휜’과 동행하며 칼로르멘을 탈출하고자 하는데, 마침 칼로르멘의 왕자인 라바다슈는 나니아를 침공하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샤스타는 나니아와 칼로르멘의 중간에 위치한 아첸렌드에 그 사실을 알려주게 되고, 아첸렌드와 나니아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편 샤스타는 원래 아첸렌드의 왕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어른이 된 후에 아라비스와 결혼하게 된다.

 

  6) 『마법사의 조카』

  디고리는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런던으로 이사오게 된다. 디고리는 옆집에 사는 폴리와 친해지는데 어느날 삼촌의 방에 잘못 들어갔다가 삼촌의 계략으로 인해 다른 세계로 가게 된다. 멸망 직전의 ‘찬’이라는 세계에서 마녀를 데리고 오게 된 그들은 또다시 창조가 시작되고 있던 ‘나니아’로 가게 된다. 나니아에 마녀를 데리고 온 책임 때문에 디고리는 서쪽정원에서 자라고 있는 사과나무의 사과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받게 되고, 마녀의 유혹을 이겨낸 디고리는 결국 나니아를 지키게 될 뿐 아니라 어머니의 병까지 고치게 된다.

 

  7) 『마지막 전투』

  교활한 원숭이 쉬프트는 폭포에 떠내려오던 사자 가죽을 발견하고는 어수룩한 당나귀 퍼즐을 이용하여 가짜 아슬란 행세를 한다. 쉬프트는 퍼즐을 마굿간 속에 숨겨두고, 자신은 아슬란의 대리자 행세를 하며 나니아의 동물들을 호되게 부려먹는다. 당시 나니아의 왕이던 티리언은 그것을 저지하려다가 오히려 잡혀버리고 꿈 속에서 나니아의 옛 왕들을 만나 도움을 청하는데, 그들 중 유스터스와 질이 가장 먼저 나니아에 도착한다. 이들은 쉬프트가 끌고 온 칼로르멘 사람들에 대항하여 나니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마굿간 안으로 잡혀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그들은 또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쉬프트와 칼로르멘 사람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티리언과 그 일행은 아슬란과 함께 나니아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다. 『반지의 제왕』과의 비교

  1) 묘사의 사실주의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수와 잘못들을 저지름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사실적으로 보인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인 에드워드는 아슬란을 배신했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전투에서 누구보다 용감히 싸우며 더 이상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끔씩 예전의 나쁜 버릇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캐스피언 왕자와 항해 도중 발견한 ‘죽음물 섬’에서는 황금의 유혹에도 잠시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 처음 등장하는 유스터스의 모습은 이기적인 사람에 대한 탁월한 묘사인데, 그가 쓴 일기를 통해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얼마나 잘 합리화시키는지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새벽 출정호가 폭풍우를 만나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틈을 타 몰래 물을 마시려고 했던 유스터스가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 한밤중에 열이 나서 물 한 잔을 꼭 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깨어났다. 어떤 의사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을 깨워서 물을 달라고 할 생각이었으나 밤중에 남을 깨운다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동 같았다. 그래서 … 캐스피언과 에드먼드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

  『은 의자』에서는 질과 유스터스가 땅에 새겨진 글자들을 찾지 못하고 헤메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바로 글자들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만 그것이 글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 글자들이 너무 크고 명확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인데, 이것은 『반지의 제왕』에서 모리아 광산 입구의 암호를 -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은 - 간달프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떠오르게 했다.

  이러한 묘사들이 독자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나니아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과의 괴리를 조장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니아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의 부족함에 대한 묘사들을 통해, 현실을 더욱 현실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2) 성경의 반영

        가) 창조와 노래

  두 작가 모두 자신들의 작품에서 창조의 도구로 ‘노래’를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법사의 조카』에서는 나니아를 창조하는 중심에 ‘아슬란의 노래’가 있다.

  •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이 소리들은 별을 부르는 노래이며 그 굵직한 첫 번째 소리가 별을 불러내어 노래 부르게 한 것임을 알 수 있었으리라. … 사자의 노래는 노랫말도 없고 가락도 없었지만 계속해서 바뀌면서 나니아의 이곳저곳을 창조하고 다녔다.

  『반지의 제왕』에는 창조를 묘사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지만 『반지의 제왕』의 배경 신화격인 『실마릴리온』에서 그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 일루바타르가 아이누족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아 그들에게 위대한 선율을 알려 주었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었던 선율로써 너희가 위대한 음악을 조화롭게 만들기를 명하노라. … 그리고 너희를 통해서 위대한 아름다움이 노래로 깨어나는 것을 기뻐하리라.”

  『  마법사의 조카』에서 아슬란의 노래가 별들의 노래를 불러내고 별들의 노래와 조화를 이룬것처럼, 『실마릴리온』에서도 일루바타르는 아이누족에게 노래를 알려주며 조화를 이루라고 명한다. 그리고 아이누족의 노래가 세계를 만들어 낸다.

  한편 ‘노래’외에도 창조 묘사에서 비슷하게 등장하는 것은 ‘악의 개입’이다. 『마법사의 조카』에서는 나니아가 창조된 지 다섯 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악마가 들어온다. 그 악마는 바로 디고리를 ?아온 마녀인데 그녀는 나니아의 경계에 들어오지 못한 채 오랫동안 북쪽 땅에 머무르게 되며, 이후 힘을 키워 나니아를 영원한 겨울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사용하여 나니아의 불법적인 통치자가 된다. (이런 배경에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시작한다.)

  『실마릴리온』에서는 ‘멜코르’라는 악의 세력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의 능력과 영광을 더 한층 높여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결국 ‘발리노르’에서 추방되어 중간계의 북쪽에 머물며 ‘사우론’을 그의 부관으로 삼게 되는데, 그 ‘사우론’에 의해 재앙이 닥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반지의 제왕』이 시작한다.)

 

        나) 그림자 땅

  C.S. 루이스에게 있어 이 땅은 천국의 복사판이나 그림자 혹은 청동거울에 비친 흐릿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나니아 연대기』의 곳곳에 나타나는데 특히 나니아의 멸망을 다룬 『마지막 전투』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 하지만 그건 진짜 나니아가 아니란다. … 그것은 언제나 여기 이렇게 있고 앞으로도 영원할 진짜 나니아의 복사판이나 그림자에 불과해. … 물론 다르기야 하겠지. 진짜 물건이 그림자와 다르고, 삶이 꿈과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란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중간계를 떠나는 모습에서 중간계는 회색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 프로도는 메리와 피핀에게 입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샘에게 입을 맞춘 다음 배에 올랐다. 돛이 펼쳐지고 바람이 불자 배는 천천히 긴 회색의 강어귀를 미끄러져 갔다.

  이런 장면은 두 작가에게 영향을 끼쳤던 조지 맥도날드의 『북풍의 등에서』에도 나타나며, 조지 맥도날드 역시 기독교인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묘사들이 히브리서와 고린도전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으며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부분은 바로 예수의 생애,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장면일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며, 거기에서 느끼는 감동은 기독교인들이 복음서에서 느끼는 감동과 외형적으로는 다르지만 내면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에드워드의 배신에 대한 결과로 아슬란이 죽는 장면은 그것이 예수의 죽음에 대한 비유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읽는다 하더라도, 다른 이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다는 사실만으로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예수의 부활 장면에 대한 묘사라고도 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죽은 줄 알았던 간달프를 다시 만났을 때 아라곤 일행은 그의 머리칼과 옷이 햇빛에 반짝이는 눈처럼 하얗고, 눈은 햇빛처럼 꿰뚫어보듯이 빛남을 느끼게 된다.

  J.R.R. 톨킨이 묘사한 ‘빛남’의 이미지는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부활한 아슬란을 수잔과 루시가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묘사되는데 이것은 성경 속 예수의 부활 장면에 대한 묘사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3) 악에 대한 관점

        가) 반지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소재는 바로 ‘반지’일 것이다. ‘절대반지’는 신비한 힘을 지녔지만 동시에 ‘악의 유혹’이기도 하다. 비록 그 속성은 조금 다르다하더라도 『마법사의 조카』에서 등장하는 반지역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반지에 대한 두 작품의 묘사를 살펴보자.

  •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반지를 바라보는 보로미르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 그 반지들은 … 크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지 금방 눈에 확 띄었다. … 게다가 그 눈부신 반지들에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두 작품 모두 반지를 묘사하는 부분에 사람의 탐욕을 묘사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나) 유혹

  『마법사의 조카』에서 ‘반지에 대한 탐심’에 넘어간 폴리가 여자아이라고 해서 그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원죄 과정에서의 하와의 잘못’을 의미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차라리 곧이어 묘사하고 있는 디고리의 ‘호기심으로 인한 잘못’과 더불어 일상적인 유혹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반지의 제왕』에서 거의 모든 유혹의 요소가 ‘반지’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다양한 유혹들이 등장하며 그 장면들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인간의 심리 변화를 잘 나타내준다. 『마법사의 조카』에서 디고리가 겪었던 사과를 먹고 싶어지는 유혹을 살펴보면, 잘못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정문에서 읽었던 경고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바뀌는지 보자.

  과연 한번쯤 맛을 본다고 해서 그렇게 나쁜 짓일까? 어쩌면 정문의 경고문이 꼭 명령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그저 충고일지도 모른다. 누가 충고에 신경을 쓰겠는가? 설사 그것이 명령일지라도 사과를 먹으면 꼭 그 명령을 어기는 짓이 될까?

 

  4) 도피주의라는 비난

  비평가들이 판타지 문학을 평가절하 할 때 가장 손쉽게 쓰는 말은 ‘도피주의(비현실적)’일 것이다. 이것은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런 비난에 대해 C.S. 루이스와 J.R.R. 톨킨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C.S. 루이스의 경우 판타지 문학이 독자들을 비현실적인 세계로 도피시켜 현실세계와의 괴리를 조장한다는 비난에 대해, 판타지에도 사실주의가 존재함을 밝혔으며 또한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소위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오히려 독자들을 ‘잘못된 사실’로 인도한다고 말하였다.

  J.R.R. 톨킨은 ‘도피’라는 단어가 자주 경멸이나 안쓰러움의 어조로 사용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감옥에 갇힌 사람의 예를 들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그것을 깨닫고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못할 때 교도관과 감옥 담장이 아닌 다른 문제를 생각하고 말할 때에라도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쪽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C.S. 루이스 역시 ‘어디로의 도피인가?’라는 질문을 함으로써 ‘도피주의’에 대한 비난 자체를 반박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두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이 ‘도피주의’ 혹은 ‘비현실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이 된다고 생각한다.

 

3.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나니아 연대기』에 나타나는 『반지의 제왕』과의 비슷한 점이었다. 두 작품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두 작가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C.S.루이스와 J.R.R.톨킨은 옥스퍼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인클링스라는 모임에서 같이 활동했으며, C.S.루이스가 불가지론을 떠나 기독교 신앙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를 톨킨이 마련해주기도 했다. 또한, 서로 간의 신앙에 다소 차이가 있었음에도 ‘신화와 복음서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작가의 생각이 일치했으므로, 작품에서도 비슷한 점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 아닐까?

  끝으로 작품에 담긴 내용이나 형식, 작품의 문학성에 있어서도 『나니아 연대기』가 『반지의 제왕』에 비해 모자라다고 느낀 부분은 없었기에, 『나니아 연대기』가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리뷰를 마친다.

ps. 웹의 한계상 각주는 달지 않았으며, 대신 참고문헌을 올립니다.

 

참고 문헌

송태현, 『톨킨, 루이스, 롤링의 환상 세계와 기독교 판타지』, 살림출판사, 2003
Clyde S. Kilby, 양혜원 옮김, 『C.S.루이스의 기독교 세계』, 예영커뮤니케이션, 1999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자와 마녀와 옷장』,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캐스피언 왕자』,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새벽 출정호의 항해』,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은의자』,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말과 소년』,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마법사의 조카』,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햇살과나무꾼 옮김, 『마지막 전투』, 시공주니어, 2001
C.S. Lewis, 허종 옮김, 『문학비평에서의 실험』, 동문선, 2002
C.S. Lewis, 강유나 옮김, 『예기치 못한 기쁨』, 홍성사, 2003
George MacDonald, 김옥수 옮김, 『북풍의 등에서』, 웅진닷컴, 2003
Humphrey Carpenter, 이승은 옮김, 『톨킨전기』, 해나무, 2004
Joseph Pearce, 김근주·이봉진 옮김, 『톨킨-인간과 신화』, 자음과모음, 2001
J.R.R. Tolkien, 김번·김보원·이미애 옮김, 『반지전쟁 2』, 예문, 1991
J.R.R. Tolkien, 강주헌 옮김, 『실마릴리온』, 다솜미디어, 1997
J.R.R. Tolkien, 김번·김보원·이미애 옮김, 『반지원정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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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17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후르츠 바스켓에서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다 상처가 있다. 그것도 보통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깊고 깊고 너무 깊어서, 손을 내미는 것조차 두려워지는 그런 상처들.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고 보듬어보지만 여전히 힘겹기만 하다. 그리고 그 상처의 중심에는 아키토가 있었다.

난 아키토가 가장 싫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십이지들에 대한 집착, 그것도 십이지남자들에게만. 자신은 사랑을 주지 않는 주제에 십이지들에게는 맹목적인 애정을 강요하고, 성에 차지 않는다고 화풀이하고 상처를 주며 즐긴다. 아키토라는 캐릭터보다 훨씬 더 나쁘고 싸가지 없으며 밥맛 없는 캐릭터는 다른 만화에서는 많이 있지만, 아키토는 그냥 나쁜X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꼬여 있었다. 대체 어떻게 자라면 이렇게 되는지. 그래서 후르츠바스켓 애니에서 나온 것처럼, 죽음으로 치닿는다는 것을 보고 아 그렇구나, 납득하기도 했다.

그리고 17권을 보고 아키토가 왜 그 따위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수상하기 짝이 없는 그의 행동들이, [그녀]로 바뀌었을 때. 왜 십이지 남자들에게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고, 또한 시구레와의 그 미묘한 대화들이나, 이해할 수 없었던 시구레의 표정이나 대사, 독백들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결국 사랑의 결핍. 모든 것은 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토오루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께 잠시간이나 버림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로인해 아버지를 모방하며 사랑을 얻으려고 애썼지만, 어머니는 일찍 죽어버리고 혼자 남겨졌다. 필사적으로 웃고 밝게 행동하고 있지만 그 어둠은 그녀의 마음 속을 좀 먹어 들어간다. 유키는 아키토에게 학대받은 것보다는, 부모님이 자신을 버렸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상처를 받았고, 시구레 역시 그렇게 매사에 불일치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 실없이 웃다가도 문득 무섭도록 싸늘해지는 이유는, 제멋대로인 아키토에 대한 애증때문이었다. 그외의 다른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 아키토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은 아마도 다 나오지는 않았지만 맛간 그녀의 어머니 때문일테고.

모든 이의 상처는 사람으로 부터 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는, 사람으로인해 치유된다. 이 모순을 후르츠 바스켓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치유받고, 조금씩 일어서기 시작한 십이지들이 있는 반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십이지들. 초반에 후르츠바스켓을 보며 주인공인 토오루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십이지의 저주를 풀어줄 것인가 궁금했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이 만화의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 저주를 풀어나갈 것인지도.

후르츠바스켓은 판타지가 아니다. 십이지라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 그것이 해결되는 데는 방법은, 비현실적인 것에는 있지 않다. 그들이 십이지가 되어 받은 상처들은, 누군가를 통해서 치유를 받을 것이고, 언젠가는 그 저주에서 풀려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처들과 악화되어 가는 듯한 이 아픔들은, 이 후르츠바스켓의 끝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내가 이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한 캐릭터들, 그것도 단 한명도 마냥 행복한 존재가 없다. 모두 다 큰 상처를 가슴에 지고 살아가고, 눈물을 삼키고 웃는다. 그 웃음이 더욱 더 자신의 상처를 짖이겨놓는지도 모르면서. 하지만 감추지 않고 숨기지도 않고, 그대로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며 마음껏 아프게 한다.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몸이 두동강이나는 것같이 아프지만, 그래도 그 아픔 뒤에, 그 아픔을 이겨낸 뒤에 올 진정한 미소를 위해. 가면같은 미소가 아닌 눈물이 맺혀 있더라도, 희망이 있는 미래를 비추는 미소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결국 이 만화의 주제는 이것이다. 극복.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이 만화가, 나는 정말로 좋다. 읽으며 내 모습을 본다.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나만의 아픔들을, 나만의 생각들을. 그렇지만 그에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눈부시다. 후르츠바스켓. 각기 다른 종류의 과일들이 한 바구니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후르츠바스켓이라는 만화 속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후르츠바스켓인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세상은 정말 과일바구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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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3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19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캣 스트릿 1
카미오 요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꽃보다남자의 작가의 작품이어서, 솔직히 집어들때부터 상상했던 것은, 꽃보다 남자와 같의 류의 순정만화였다. 단순하고 진부하지만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 신데렐라 스토리. 뭐 그 정도를 예상하고 펼쳤는데, 내용은 전혀 틀렸다.

아무래도 순정만화이기에 사랑이야기도 다루긴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우선되었던 것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은둔형 외톨이인 여자 주인공. 얼굴은 이쁘지만 사고방식이나 정신연령은 아이나 다름없다. 원하지 않았던 아역배우 생활을 하다,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완전히 닫혀져 버린 그녀의 마음의 문은, 7년간 전혀 열리지 않았다. 웃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하던 케이토. 그런 케이토에게 다가온 한 수상쩍어 보이는 남자가 권해준 프리스쿨이라는 학교에서 만나게 된 개성넘치는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내용에 어울리게 칸의 배열이나 그림체나 표정들이 굉장히 세련되면서도 건조하게 그려져 있었고,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그림체였다. 여자들의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남자들의 생김새가 굉장히 개성적이고, 굉장히 깔끔하면서도, 전형적인 미남이 아닌 그런 평범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쉬는 동안 그림체를 많이 연습한 것인지 일취월장한 그림체에도 한표.

꽃보다 남자는 굉장히 전형적인 이야기에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나왔다면, 이 캣스트릿에는 제목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들고양이 같은, 평범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어떤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데서 1권은 끝이 났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기대되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만화작가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인기를 끌면, 그 다음 작품과 이와 비슷한 아류작들을 그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요코 카미오는 그렇지 않았다. 1권밖에 나와있지 않아 뭐라 말할 순 없지만, 그냥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어보이는 만화책이다. 앞으로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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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나크의 장 9 - 즉위-완결
최정연 지음 / 청어람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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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착하고 모든 이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어 사랑을 받던 아이. 어느 순간 그 아이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이 씌워지고, 그 순간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그의 말빨과 재능도,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운 미소와 착한 마음도 그들을 유혹해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가증한 모습으로 돌변해버린다.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어떻게 보이냐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보이느냐에 달렸다. 그를 모함하는 자들이 준 비뚤어진 안경으로 보면, 그 아이는, 가식적이며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인간이지만, 그의 마음의 진실을 보면(독자인 내게 속속히 보이는 그 마음을 보면) 그는 더없이 착하고 따스하며 마음이 약한 가여운 아이일 뿐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떤 친구, 다른 이들은 다 손가락질하는, 도둑질을 했다던 아이.나 역시 그를 믿기가 어려웠지만, 그냥 믿었다. 믿어주었다. 말도 안되는 그 변명도, 수없이 늘어놓는 허풍도 그냥 웃으면서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줬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그 친구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중에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들을 볼때, 사람들과 말을 나눌때, 그 사람들이 가식없이 다가오느냐, 아니면 가식덩어리로 비춰지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어떤 눈을 가지고 그들을 보느냐에 따라,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쪽으로 보고자 해도 가끔씩 나쁜 점이 보이는데, 하물며 나쁜 쪽만 보고자 한다면 어떨것인지. 결국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파헤치려 들면, 피곤한 것은 나, 힘든 것도 나, 무의미한 것도 나이다.

사람이 어떤 코너에 몰렸을때, 그 사람을 어떻게 보기로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틀려진다. 카류리드 왕자를 쫓기로 결정한 아르디예프 마법사, 에르가, 세미르, 딜트라엘 등처럼, 내가 좋아하던 이가 어떤 코너에 몰렸을때, 난 그를 따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시작은 그냥 즐기고 재밌고자 했던 글이었는데, 중반에 돌변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순간부터 난 울었다. 변해가는 카류가 안타깝고 그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해서, 믿었지만 배신당하고, 또 믿었지만 배신당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그만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초반의 무작정 착하기만 하던 카류는 그 많은 배신 속에서 살아남아, 더더욱 이기적이 되어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서라도 살아남는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 처절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몸부림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대체 어느 누가 죽기를 바란단 말인가. 그리고 또한 책속의 인물이라고 해도, 주인공이 죽음으로 치닫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대체 누가 있을까. 불완전하더라도 고통의 연속이라도, 나라면 절대 극복하지 못할 아픔 속에서 일어나 앞을,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그 모습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얻길 바란다.

8권 중반, 세미르가 죽고, 아르디예프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드래곤인 카이를 붙잡고 나를 떠나지 말라고 하던 그 카류의 이기심과 약함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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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오랜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