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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 1
이수영 지음 / 뉴티칭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이 책은, 이수영이라는 이름 하나로 구입한 책이었다. 이수영의 소설은 다소 매니아적인 면이 있기에 여느 책방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정말 큰 맘 먹고 거금을 들여 구입했었다. 본래 책을 볼때, 소개라든지 목차는 안 보고 무작정 첫페이지부터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소개한 글 정확히 말하면 소개문구를 본 건 5권을 밤 12시부터 새벽5시까지 거의 읽었을 때 봤었다.
로맨스판타지. 정말 재밌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사실 판타지는 로맨스적인 요소가 정말이지 거의 없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로맨스라는 이름이 절대 어울리지 않는 작가가 바로 이수영이다. 내가 봤던 어떤 소설 중에서도 담대하고 시원시원하고 무뚝뚝한 문체를 가지고, 사랑이라는 것을 다룰 때도 어찌나 담백한지. 처음에 주인공이 느닷없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로맨틱하기는 커녕, 약간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 잘난 인간에게 빠지는 건 당연하다고 쳐도 그 어디가 로맨틱하단 말인가. 실로 그 문구를 쓴 사람이 누군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쿠베린 9권을 봤을때 가슴을 쥐어뜯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귀환병에서부터 보여온 이수영의 그 언해피엔딩. 물론 나름대로 해피이긴 하지만, 그의 문체와는 달리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상황들에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도 쿠베린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쿠베린이란 놈은 정말 그런 놈이니까, 그렇게 죽는 게 가장 쿠베린다우니까.
그런데, 그래도, 이 수호자는 정말이지. 작품의 완성도나 구성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면서 숨겨져 있던 비극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아아, 젠장. 탄식이 흘러나오고 어떤 내용이 그 다음에 이어질까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나서 정말 멍했다. 새벽까지 읽어서 피곤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해피지상주의자인 나로서 해피한 결말, 달착지근하지는 못해도 덤덤한 해피라도 원했었는데, 그걸 완전히 빗나간데다가, 예상했던 극적인 충돌도 없는 허무한 결말.
내가 왜 이걸 밤을 새가면서 봤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이지 억울했다. 재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너무 슬퍼서 억울했다.
나는 책을 보면서 슬프고 싶지 않다. 차라리 신파가 더 낫지 이런 식으로 마음을 쥐어뜯게 만드는 건 정말 심장에 안 좋다. 신경을 갉아먹는다. 나는 주인공이 어떤 안 좋은 상황에 있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다는 후르츠바스켓 류의 내용을 좋아한다. 비록 만화적이고 말도 안되는 것일지라도, 그런 내용을 통해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얻고 싶다.
대체 왜 읽었을까, 대체 왜 샀을까. 그냥 환상을 가진 채로 놔둘 것을, 이렇게 슬플 줄 알았더면 그냥 말 것을. 후회해보지만, 난 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수영이라는 작가를 원망하면서도, 또 다시 그의 소설이 나오면 보게 될 거라는 걸. 그러면서 지치지도 않고 기대할 것이다. 이번에는 행복한 결말이길, 슬프지 않기를.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