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경군 1
스모토 아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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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이런 순정만화는 처음 봤다. 항상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붉히는 얼굴과 다른 사람눈에서는 눈꼴시는 닭살로밖에 안보이는 수 많은 행동들과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인공은 착하다는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많으면서, 먼저 참는다는 그런 것만 보다가, 이 나의 안경군이라는 것을 봤을때, 신선했다. 나름대로. 주인공들은 음침하다. 그렇게 음침할 수가 없다. 서로에 대한 독점욕, 흔히 말들을 하는 의부증, 의처증 환자들이다. 니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싫어!라고 외치는 정도가 아니다.

여주, 남주 둘 다 상대방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 여주는 남주를 욕하고 헐뜯음으로 남주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하고, 남주는 자신의 라이벌(여자라면)을 자기한테 반하게 만듬으로써 여주를 고립시킨다. 참, 음침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다.-_- 사람들은 누구가 독점욕이 있다. 하다못해 가족들끼리도, 친구들끼리도 그러한 독점욕을 다 가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가장 소중했으면 한다는, 내가 제 1위여야 한다는 그런 욕심들 말이다.

보통 다른 만화에서같으면 '난 정말 못된 애야'라면서 한 두번 그러다가 그냥 말 텐데, 이 만화에서는 아니다. 여주도 그렇지만 남주는 더한 놈이다. 좋아한다면 그만큼 말로, 혹은 몸으로 여주한테 실감을 보여주는 게 차라리 더 낫지, 다른 여자들을 자기한테 반하게 함으로써 여주를 왕따시키게 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냐!!!! 뭐, 그래서 재밌긴 하지만 말이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나왔던 만화가 있었을까. 아직 1권이기 때문에 이리 강렬한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뜨뜻미진해질지도.

사랑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는 보기에도 추한 독점욕이 숨어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착하고 이쁘고 잘생기고 순진한 남주,여주만 나오는 것이 질렸다면 한번 쯤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음침한 녀석들은 싫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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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르츠 바스켓 11
타카야 나츠키 지음, 정은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낯선 사람은 당연히 두려워하지만 아는 인물들 중에서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매번 후르츠를 볼때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아, 젠장할!!!! 그냥 다 엎어버려!!! 그까짓 당주가 뭐길래 쩔쩔매는 거야!!! 성질같아서는 확!!!!! 이렇게 말이다.

나의 상식선에서는 정말 이해가 안되는 것이 바로 이 아키토라는 왕재수싸가지다. 애니를 보니 십이지의 저주를 받고 수명이 짧다나 어쨋다가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다른 십이지한테 하는 행동들, 그 중에서도 특히 쿄우한테 하는 짓!!! 도저히 용납이 안된다. 하긴 내가 용납을 안해봤자 작가 맘이긴 하지만서도.-_-

나는 그만한 고통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이리 쉽게 말하는 지도 모른다. 아키토도 그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겠지..... 하지만!!! 그 행동들, 나의 사랑하는 쿄우와 울 착한 토오루와 이쁜 유키를 괴롭히고, 다른 십이지들한테도 모두 한번씩 괴롭히고, 또 괴롭히던 짓. 어른도 아닌 아직 어린애인 주제에 당주라는 핑계로 모두를 자기의 손아귀에서 넣고 뒤흔들어야 속이 시원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주제에 행복해하는 꼴은 못보는 그 못된 심보!! 내 동생이었다면 당장에 싸대기를 후려치고, 몽둥이로 두들겨패고, 정신차릴때까지 교육을 시켰을 거다.-_-+

이번 11권을 보면서 느낀 것이 바로, 저 제목이다. 그의 언어는 독이다. 날카로운 혀를 가진 정도가 아니라, 하는 말마다 듣는 이의 가슴 속에 박혀 피를 흘리게 하고 서서히 썩어 곪게 만든다. 더구나 나만 불행할 수 없어! 다 불행해야돼!라는 못된 심보로 이번에는 나의 쿄우군을 상처입혔다. 어떻게 그런 녀석이 있을 수가 있을까.. 뭐 고작 만화인물에게 이렇게 열을 올릴 필요는 없지만, 정말 한숨이 나온다.

대체 어떻게 끝날까. 이 후르츠 바스켓이란 만화는. 토오루가 돕고 싶어라고 결심을 했다고 해도, 그녀에게 그 십이지의 저주가, 아키토의 저주를 풀 정도의 힘이 있을 것인가. 물론 있으니까 주인공을 시켰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풀어질 것인가. 그 배배꼬인 아키토놈과 그에게서 떠나지 못하는 가엾은 십이지들을. 빨리 완결이 나왔으면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도 연재중인지 엄청 더디게 나와 속이 터질 따름이다.

ps. 쿄우놈. 골방에 가둔다고 해서 순순히 그런다고 하는 거냐!! 근성이 부족해!!!! 그럴때는 '헹 내가 미쳤냐, 메롱!'이러면서 도망가는 거다. 지네들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언제까지 쫓아올 수 있을 것 같으냐! ....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하면 갇힌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란 말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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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 1
이수영 지음 / 뉴티칭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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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은, 이수영이라는 이름 하나로 구입한 책이었다. 이수영의 소설은 다소 매니아적인 면이 있기에 여느 책방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정말 큰 맘 먹고 거금을 들여 구입했었다. 본래 책을 볼때, 소개라든지 목차는 안 보고 무작정 첫페이지부터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소개한 글 정확히 말하면 소개문구를 본 건 5권을 밤 12시부터 새벽5시까지 거의 읽었을 때 봤었다.

로맨스판타지. 정말 재밌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사실 판타지는 로맨스적인 요소가 정말이지 거의 없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로맨스라는 이름이 절대 어울리지 않는 작가가 바로 이수영이다. 내가 봤던 어떤 소설 중에서도 담대하고 시원시원하고 무뚝뚝한 문체를 가지고, 사랑이라는 것을 다룰 때도 어찌나 담백한지. 처음에 주인공이 느닷없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로맨틱하기는 커녕, 약간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 잘난 인간에게 빠지는 건 당연하다고 쳐도 그 어디가 로맨틱하단 말인가. 실로 그 문구를 쓴 사람이 누군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쿠베린 9권을 봤을때 가슴을 쥐어뜯은 적이 있는 나로서는,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귀환병에서부터 보여온 이수영의 그 언해피엔딩. 물론 나름대로 해피이긴 하지만, 그의 문체와는 달리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상황들에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도 쿠베린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쿠베린이란 놈은 정말 그런 놈이니까, 그렇게 죽는 게 가장 쿠베린다우니까.

그런데, 그래도, 이 수호자는 정말이지. 작품의 완성도나 구성에 대해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면서 숨겨져 있던 비극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아아, 젠장. 탄식이 흘러나오고 어떤 내용이 그 다음에 이어질까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나서 정말 멍했다. 새벽까지 읽어서 피곤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해피지상주의자인 나로서 해피한 결말, 달착지근하지는 못해도 덤덤한 해피라도 원했었는데, 그걸 완전히 빗나간데다가, 예상했던 극적인 충돌도 없는 허무한 결말.
내가 왜 이걸 밤을 새가면서 봤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이지 억울했다. 재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너무 슬퍼서 억울했다.

나는 책을 보면서 슬프고 싶지 않다. 차라리 신파가 더 낫지 이런 식으로 마음을 쥐어뜯게 만드는 건 정말 심장에 안 좋다. 신경을 갉아먹는다. 나는 주인공이 어떤 안 좋은 상황에 있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다는 후르츠바스켓 류의 내용을 좋아한다. 비록 만화적이고 말도 안되는 것일지라도, 그런 내용을 통해 희망을 가지고 위안을 얻고 싶다.

대체 왜 읽었을까, 대체 왜 샀을까. 그냥 환상을 가진 채로 놔둘 것을, 이렇게 슬플 줄 알았더면 그냥 말 것을. 후회해보지만, 난 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수영이라는 작가를 원망하면서도, 또 다시 그의 소설이 나오면 보게 될 거라는 걸. 그러면서 지치지도 않고 기대할 것이다. 이번에는 행복한 결말이길, 슬프지 않기를.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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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1
소다 마사히토 지음, 장혜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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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만화를 본 것은 원래 만화도 좋아하고, 특히 연극이라든지 발레라든지 하는 소재의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단지 발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어들었고, 또 그 이전에 봤던 '환상의 프리마돈나'를 재밌게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환상의 프리마돈나 식의 순정틱하고 이쁘고 아름다운 선, 솔직히 처음에는 그런 것을 기대하고 이것을 봤는데, 갑자기 턱 하니 보여지는 굵직굵직한 선에 이쁘다고는 할 수 없는 그림체, 뭔가 뒤틀어진 내용, 아름답고 황홀해지는 발레가 아닌 살기위한, 살아남기 위한 전투같은 발레였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대단해서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잡아먹고 빛을 보이지 않게 해버린다. 편하게 배워나가는 것 같지만 항상 치명적인 어려움은 계속해서 생기며 하나를 극복하면 또 하나가 문제가 생겨버린다.

기타 다른 어떤 장르에서도 당연히 그렇지만, 작가의 그림체에서 주는 느낌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치열하고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고 소름마저 끼치게 만드는 그 극복과정들은, 단지 투명하고 아름다운 타고난 재능만으로 이루어지는 천상의 발레가 아닌, 땀흘리고 피흘리고 싸워서 쟁취해내야하는, 천상이 아닌 인간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재능은 그냥 주어진 재능이 아닌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을 직면한 상태에서 깨어난 본능이었다. 재능은 갈고 닦아지는 것이지만, '본능'은 그것을 깨어나게만 하면 되는 것. 얼핏 쉬워보이지만 주인공의 천재성이 발휘된 것은 항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였다. 마치 이 작가의 또 하나의 작품 '911'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

막연히 하고 싶다는 바램이 아닌, 해내고야 말겠다는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도 아닌, 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육식동물에 쫓기는 노루처럼, 그저 푸릇푸릇한 정열이 아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두다 살라 태워버리는 치열한 불꽃처럼, 스바루가 하나하나 이루어내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냥 대면대면하고 싱거워서 보고나면 어딘가 모르게 허무한 내용이 아니라 보고나면 자신도 모르게 진이 빠져버려 한동안 눈을 감고 몇십분이나 떨림을 멈출 수 없게 만든, 스바루는 나에게 있어 이런 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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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ryticket 2005-06-2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다 댄싱도 재미있어요^^
 
시귀 1 - 죽음의 마을
오노 후유미 지음, 임희선 옮김 / 들녘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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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권을 읽었을때는, 정말이지 오싹했다. 공포소설이라는 것을 읽으면서도 단, 한번도, 무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는데(사실 그동안 내가 심취해있던 공포소설은 차라리 공포소설이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웠나보다) 이 시귀는 오싹-하면서 신경을 긁는 듯한 불쾌함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2,3권까지 계속해서 읽는 것을 중단하고 일단 잠을 잔 다음 아침에 다시 일어나 시귀를 읽었다. 그리고 덮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들던 물음. 시귀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불쌍하고, 사람들이 일어나 시귀들을 공격하는 것은 왜 잔인한 일인가. 시귀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사람들이 다른 동물들을 먹는 것과 똑같이 비교하면서, 마치 굉장히 가엾다는 듯 불쌍하다는 듯 구구절절 늘어놓더니 결국 승자는 시귀.

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건가. 그 지겨울 정도로 흔하고 진부한 '악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일본 소설을 보다보면 가장 단골 메뉴가 흔히 일컬어지는 '선'과 '악'을 뒤바꿔 보여주면서 '진정한 선이란, 진정한 악이란 무엇인가, 결국 선도 악도 없는 것이 아닌가'였다. 그러더니 이것도 결국은 그런 걸 말하고 싶었던 거였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시귀를 공포의, 미지의 대상으로 보여주더니, 그 다음에는 시귀들의 생각들을 보여주고, 그런 다음에는 시귀들의 '인간성'을 보여주면서 '불쌍하지? 불쌍하지? 너무 불쌍해서 못 견디겠지?'라고 외치는 꼴이라니. 불행히도 난 작가가 의도하던대로, 혹은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의도하던 대로 '새로운 시각'내지는 '시도'는 전혀 발견하지 못한채 그 나물에 그 비빔밥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여러 불쾌함을 덮고 찬찬히 생각해볼때, 이 작품은 수작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뛰어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마성의 아이에서도 그랬지만 군중심리가 어떻게 변화되어가는지를 기막히게 포착하고 서술해나가는 솜씨는 분명 탁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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