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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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며 세상을 살고 있다. 오해를 하고 아무런 말도 안하고 표시도 안하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맺음이 기본이 되는 이 세상에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있을까? 인간은 어느 방식으로든 서로를 해석하고 이해한다. 인간의 존재조건이기도 한 관계맺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평화는 나의 여행」을 읽는 동안 내가 세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몇 가지가 깨져갔다.

임영신 님의 여행은 오해를 넘어서 수많은 상처를 서늘하게 간직한 장소를 밟아나가며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행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레바논, 필리핀의 민다나오.... 임영신 님은 기아와 죽음, 전쟁, 테러로 기록되고 알려지는 곳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그리고 사랑을 살려낸다. 먼 타국에서 온 여행자가 한 밤중에 보이지 않자 다급한 마음으로 밤거리를 헤매었을 수아드 아주머니, 이라크를 떠나지 못해 주저하고 안타까워하는 저자에게 열두 살 먹은 이라크 소년 로네는 서투른 영어로 우리는 괜찮다며 걱정을 해준다. 그들에게 타국의 여행자는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다. 지은이는 이라크사람들의 숨결과 표정과 체온을 나눈 경험을 전한다. 멀리서 책을 읽어가는 나에게도 수아드와 아하메드, 사바는 더 이상 뉴스의 1단짜리 기사에서 단지 사망자, 부상자로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라크사람들’이 아니다.

‘평화’라는 낱말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생각해봐도 그 의미가 잘 안 떠오른다.  나에게 평화는 항상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핏빛 참상을 내뿜는 뉴스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곤 한다. 얕은 고민이지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들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죽음과 죽음이 얽혀 들어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점에서 더욱 짙어지는 폭력과 학살에 대해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전쟁의 서늘한 기운이 차오르는 이라크의 저녁 강가에서 젊은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전쟁이 온다 해도,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이 강가에 와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실 거예요.” 시급을 다투는 앰뷸런스의 앵앵거림 속에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는 이슈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이 있다는 것 평범한 진실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의 사회는 돈이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것을 살 수 있는 사회다. 돈이 지위와 안정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금의 사회에서 평화여행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지은이가 프랑스의 어느 공정무역 가게주인 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실마리가 된다. “.......하루에 손님이 열다섯 명쯤 오는데, 물건을 사가지요. 손님이 많지 않고 머무는 시간이 기니까 제품에 대해서,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누가 만드는지 이런 걸 설명해 드릴 수 있어 좋아요. 저도 손님도 인간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손님들이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구요.” 어쩌면 공정무역이 지향하는 것과 평화여행이 지향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올바른 관계성을 세우려는 노력인 것 같다. 물건 하나에 그것을 만든 사람의 삶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면 그건 더 이상 단 돈 얼마내고 책임이 끝나는 ‘상품’일 수는 없다. 내가 먹는 음식이 대부분은 외국산이고 입는 옷의 원료도 사는 집의 재료도 외국산이 많다고 한다. 나는 생각을 못해왔지만 이렇게 세계의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온 것이다. 이렇게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러한 관계를 모르는 것이 어쩌면 내가 보기 싫고 외면하는 그런 현실이 바뀌기 어려운 원인이 아닐까?

 

 

 

 

 

***  '책 읽기 모임' http://cafe.daum.net/nbychungsan 의 1월달 책인데. 저자가 오셨습니다. 저자(임영신 님) 앞에서 저의 '낭랑한'(사실 좀 쇠소리, 갈라지는 소리가 있었지만...^^;) 목소리로 읽은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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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카페에 가보았습니다. 종종 들를 것 같아요.
발제문, 역시 진솔하니 깊은 맛이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7-02-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님 글도 참 평화로와요.

푸하 2007-02-0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진솔하게 약점을 드러낸 것 같아 올려놓기 망설였습니다.^^; 제 발제문 보다는 그 카페의 존재를 아시게 되고 종종 들리신다니 저도 좋습니다. 멀리 계셔서 실제 모임에서 만나기 어렵겠지만 족적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유 님, 제가 위 책을 읽을 때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때거든요. 우연히 집어든 책인데 어려운 가운데 잠시 여유와 평화를 느끼게 해주었던 책입니다. 저의 독후감이 평화롭진 않은 것 같은데, 평화를 발견하셨다니 아마도 평화로운 관점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